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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숙고할 시간 못가졌으면 설명의무 위반"
"환자가 숙고할 시간 못가졌으면 설명의무 위반"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2.02.14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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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판결서 설명의무 이행 인정했으나 대법원서 파기환송

병원의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1심과 2심은 의무를 다했다고 봤지만 대법원에서는 위반을 인정해 파기환송을 결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원고 A씨는 2018년 6월7일 평택시에 소재한 D병원에 요통 및 근력저하로 인한 파행 등을 이유로 내원했다. D병원 척추센터 의료진은 같은 달 11일 오전 11시쯤 A씨에게 추제한 유합술, 후방기기 고정술, 인공디스크 친환술을 실시했다. A씨는 같은 날 18시30분쯤 회복실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15분 후 A씨가 자발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고 좌측 상하지 근력이 저하된 사실을 확인한 후 18시50분쯤 뇌 CT검사를 시행했는데, 그 결과 뇌경색 소견이 관찰됐다.

A씨는 이후 다른 병원으로 전원됐다. A씨는 현재 뇌경색으로 인한 좌측 편마비로 모든 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고, 인지장애로 인하여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스스로 대소변 조절 및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태이다.

A씨측은 병원을 상대로 4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씨측은 병원 측 과실로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설명의부 위반을 주장했다. 이 사건 수술이 응급을 요하는 수술이 아니었던 반면, A씨는 경동맥 협착 소견이 있어 뇌졸중 위험이 높은 환자였고, 의료진은 수술 전에 경동맥의 동맥경화에 대한 치료를 시행해 뇌졸중 위험을 낮춘 후 수술을 시행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의료진이 수술 당시 A씨를 상대로 관찰 의무를 게을리하여 A씨가 혈전용해술을 받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다른 병원에 전원함으로써 뇌경색 치료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A씨측은 또 의료진이 수술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지 여부 및 합병증 발생의 가능성 등을 자세히 설명하여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여 A씨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A씨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수술을 집도한 병원 척추센터 의사 J씨가 병원의 내과 및 마취과에 수술전 평가를 의뢰한 사실 △이에 대하여 내과의사 K씨가 A씨에 대해 경동맥 초음파 검사 등을 시행한 후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계획대로 수술을 집행하여도 큰 무리가 없다. 경동맥에 동맥경화가 있으나 취약 경화반이 없고 협착이 심하지 않아 마취, 수술의 금기는 아니고, 동맥경화가 없는 사람들에 비하여 뇌졸중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라고 회신한 사실 △진료기록부에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어 A씨도 수술적 치료를 원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미뤄보아 의료진의 수술 결정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선택은 아니었다고 봤다.

병원 측의 설명의무 위반에 관해선 “의료진은 A씨의 보호자인 아들 N씨에게 수술의 목적, 수술의 방법, 발생가능한 예상치 못한 결과 또는 상황(합병증) 등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보이고, 위 합병증에는 신경손상 등도 포함됐다”며 “이와 같은 사실 또는 사정 등을 비추어 보면, 피고병원 의료진이 이 사건 수술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A씨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을 인용하여 항소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제3부, 재판장 이흥구)은 1심과 2심의 설명의무 위반 여부에 대한 잣대를 달리했다.

재판부는 “의사는 응급환자의 경우나 그 밖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할 경우 그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환자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과 부작용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환자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환자로 하여금 수술 등의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지도록 할 의무가 있다”며 “이와 같은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의료행위가 행해질 때까지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고병원 내과의사 K씨가 A씨의 아들에게 A씨가 동맥경화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설명한 시간은 오전 10시30분쯤이었고, 마취과 의사 G씨가 수술을 위한 마취를 시작한 시점은 11시10분쯤이었다. 수술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A씨는 직접적으로 수술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설명을 들은 바가 없었다.

재판부는 “원고로서는 이 사건 수술로 자신에게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 등 위험성을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채 수술에 나아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원고가 이 사건 수술에 응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가 침해된 것으로, 원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피고 병원 의사들에게는 설명의무를 위반한 사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병원 의사들의 설명과 수술 사이에 적절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원고가 숙고를 거쳐 수술을 결정했는지를 심리하여 의사들의 설명의무가 이행됐는지를 판단했어야 했다”며 “원심의 판단은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며 지난달 27일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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