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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외과의사회, 의학적 판단 외면한 의사 실형 선고···심각한 우려 표명
의협·외과의사회, 의학적 판단 외면한 의사 실형 선고···심각한 우려 표명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1.12.24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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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 모든 책임 전가, 방어진료 초래할 것”
의협, 심각한 우려 표명과 함께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촉구
외과의사회 "중대한 과실이 아닌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 배제해야"

최근 법원이 소장폐색환자의 수술 지연에 따른 악결과를 이유로 외과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의료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외과의사회는 지난 23일 의학적 판단을 외면한 의사 실형 선고와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번 선고는 의사에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방어진료를 초래할 것”이라며 의료특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의협 등에 따르면, 외과 전문의 A씨는 지난 2017년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 B씨를 진찰한 뒤 장폐색을 의심했지만 B씨의 통증이 호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인해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을 감안해 우선 보존적 치료가 적절하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7일 후 B씨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A씨는 응급수술을 시행해 소장을 절제했고, B씨는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하자 결국 2차 수술을 하게 됐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당시 환자의 상태를 감안하면 즉시 수술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방법이었고, 주의의무 위반으로 수술이 지연됐다”며 A씨의 과실로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괴사 등이 발생했다고 인정해 금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의협은 “의학의 오랜 역사와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수술 여부 및 그 시기 결정에 있어 명확한 임상 지침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연구와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직접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종합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으므로 현장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학적 원칙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며, 이후 발생한 악결과를 이유로 당시 의학적 판단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사건에만 국한해 보더라도, 환자와 의사가 모두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수술에 앞서 보존적 치료를 우선 시행해보기로 합의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법원이 사후에 그 악결과만을 문제 삼아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협은 “환자의 치료방법 선택에 대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부정되고 추후 환자의 상태 악화에 대해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면, 우리나라 모든 의사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방어 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그러면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이 같은 판결이 반복된다면, 우리나라의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유사한 판결이 반복됨으로써 의사의 소신진료가 위축되고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가 붕괴되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분쟁으로 입은 국민의 피해를 신속하게 보상하고 의료인에게 안정적 진료환경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더욱 튼튼하게 보호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가칭)의료분쟁특례법 제정에 즉시 나서라”고 촉구했다. 

외과의사회 역시 성명서를 통해 “의료과실의 문제를 일반적 범죄행위와 동일한 선상에서 일의적(一義的)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의료행위 도중 불가피하게 상해와 유사한 인체 침습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행위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기에 지연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상황을 외과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장 폐색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응급수술을 필요로 하는 상태로 판단하지 않은 여러 변화와 증상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환자의 상태를 다소 늦게 지연 진단했다는 이유로 형사상 주의위반에 해당하는 의료 과오로 판단해 의사를 단죄하면 의료시스템에 또 다른 중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의료행위의 최전선에서 최선의 의료를 시행해야 하는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인 방법에만 집중할 것이고, 조금만 의심되더라도 최후의 수단인 개복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의사회는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의문을 제기하기 어려운 명제”라며 “적절한 의료행위를 선택하거나 시행하는 의사 결정하는 과정이 신중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개복수술 같은 최후의 방법을 선택할 때 시간적 지연이 발생한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문화, 검찰·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며 “지속적인 교육, 동료 평가로 통해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두텁게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의사회는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환자는 금고형을 선고받은 외과의사의 적절한 수술을 통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 줘야 하고, 사법부가 의료행위에 형사적 제재가 필요한 의료과실이라는 사법적인 판단을 함에 있어 사법부의 종합적이고 신중하고 명백한 증거에 근거한 지혜로운 판결이 내려져야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위태로운 국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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