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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6주년 특집]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장기적인 의료정책을 세우자
[창립 106주년 특집]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장기적인 의료정책을 세우자
  • 박종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21.12.06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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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대선-의료백년대계를 위한 의료계의 상생 제안
의사국시 기초의학 역량 함께 평가...우수한 의사 배출 기여
기초의학 연구비 대폭 증액, 관련 스타트업 기업 육성 가능
박종훈고려대 의과대학 교수前 고려대병원장
박종훈고려대 의과대학 교수前 고려대병원장

우리 병원은 2006년 무렵 1500병상으로의 확충을 목표해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의료 시장의 특성상 규모 경쟁은 절대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3차 상급 대학병원으로서 그 정도의 규모는 돼야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으로 이뤄진 잠정적인 결정이었고, 그 후 경영 효율화를 통해 차근차근 10년을 준비해 왔다. 드디어 증축을 시작할 시기가 도래했을 때 갑자기 상급종합병원 병상 총량제라는 암초를 만났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거대한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제도인데, 3차 상급종합병원의 일반 병동의 병상 증설은 일체 불허한다는 것이 골자다.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도 아니고, 충분한 토론의 과정 없이 느닷없이 내려진 제도인데, 한 마디로 영원히 규모의 서열은 고정된 것이다. 장장 10년 계획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어떤 병원은 2000병상 이상을 그리고 어떤 병원은 1000병상만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영원히 유지해야 한다. 법이 그렇단다. 이는 의료기관과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현상에 대한 조처로 나온 제도인 것 같은데 이런 엄청난 제도가 어느날 시행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의료 제도는 예측할 수 있지 않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대개는 한 1~2년 전에 고지는 하니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은 심했다고 할지 모르겠다. 글쎄, 이 정도의 조처는 최소 10년 전에 고지가 돼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 전공의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 조정을 한단다. 주 72시간. 이는 기존 근무시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언제까지나 전공의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구조는 곤란하다. 그런데 문제는 실질적인 인력이 반 토막 났는데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이 제도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제도 시행 이전부터 전공의 인력의 부족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전공의 특별법에 따른 근무시간 단축은 인력 부족 현상을 극대화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의 안전은 더욱 더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근무시간을 법적 기준에 맞추다 보니 병동 관리는 매우 불안해 진 것이다. 입원 전담의를 유치한다느니 하는 보완책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의미 없는 대안일 뿐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유럽의 어떤 나라는 의대생 입학정원을 10년 전에 미리 조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뜻이 아무리 좋으면 뭐 하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하면 그 부작용이 훨씬 심한데. 이런 것이 한국식이다. 도무지 미래의 의료 환경을 예측할 수 있지 않다. 

지금 봐서는 가까운 미래에 3차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만을 진료해야 한다. 재원 기간은 지금보다 훨씬 짧아야 한다. 모든 면을 고려하면 아마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병상은 축소돼야 할 것이고 필요한 의료인력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될 것이다. 이는 OECD의 평균 의료자원 현황을 보면 쉽게 예측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늘 고민하는 지표인데 우리는 OECD 평균의 몇 배에 달하는 급성기 병상을 유지하면서 평균 재원 기간또한 최소 두 배 이상을 보인다. 아마 어느 날 갑자기 상상하지 못한 제도가 나올 것이다. 또 한 차례 우왕좌왕하면서 난리가 나겠지. 

우리 사회는 도대체 어떤 의료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공공의료가 주가 되는 의료를 지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민간 주도의 자유 시장형의 의료 제도를 지향하는 것이지, 그도 아니면 영역 간 구분을 명확히 해서 육성할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으니 경영자로서는 난감할 따름이다. 이 나라 의료가 지향하는 큰 방향이 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단계적인 계획이 있는지를 알고 싶다.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새 정부에서는 10년, 20년 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를 고지해 달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 의료의 모든 문제점의 출발은 도무지 작동하지 않은 진료 전달체계에 있다고 본다. 혹자는 저 수가에 있다고 하지만 내 견해는 그보다는 전달체계의 난맥상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대로 둘 것인가? 외래 중심의 1차 의료기관인 개원가가 있고 비교적 가벼운 질환은 입원 치료할 수 있는 2차 중소 병원이 있고 중증의 질환만을 보는 3차 내지는 대형병원 체계는 있는데 실제는 이 체계가 개원가와 대형병원 체제로 굳어진 지 오래다. 효율적이지 않고 의료자원의 낭비 요소가 심한, 한 마디로 비효율의 극치요 과잉진료를 권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의료정책을 논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현재 의료인력이 적정한가를 고민할 때 현 상황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고민한다면 이 상황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이는 당장은 어찌 되겠지만 결국은 다 같이 망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상한 의료 전달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간호대,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늘린다면 언제가 이 제도가 대대적인 수정을 해야할 상황이 될 때 과잉 인력은 어찌하려는지 모르겠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을 한 두가지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굳이 내 경험을 통해 꼽으라고 한다면 예측 가능한 미래 지향적인 플랜을 세우고 이를 의료인들에게 최소한 방향만이라도 고지했으면 한다.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부분 부분을 개선하는 그런 정책 그만하자. 조금씩 손보다 보니 나중에는 큰 그림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 나타나더라. 

지금의 시스템은 그야말로 누더기가 된 모양새다. 지금까지 그려진 이 그림을 담은 도면을 부욱 찢고 새 장에 새롭게 그려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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