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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소년, 대한민국 자동차보험
네덜란드 소년, 대한민국 자동차보험
  • 의사신문
  • 승인 2021.11.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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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143)
전 성 훈변 호 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둑을 막은 네덜란드 소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시골에 사는 한 소년이 읍내에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둑에 작은 구멍이 나서 물이 새는 것을 보았다. 소년은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흙을 뭉쳐서 막았지만, 물은 또 터져 나왔다. 구멍이 점점 커지자 소년은 돌로, 주먹으로, 팔뚝으로 계속 막으면서 누군가 어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소년이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년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온몸으로 둑을 막다가 실신해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이렇게 소년이 둑의 구멍을 막아서 둑이 터지는 것을 막았고, 결국 마을 사람들을 다 살렸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에는 이 소년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소년의 영웅담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 이야기는 허구이다. 그 이유로, 첫째 수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고압분사되는 물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를 자를 정도이다. 그래서 둑에서 물이 새 나오는 작은 분출구를 연약한 사람의 손으로 막을 수는 없다. 둘째 저체온증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겨울부터 여름까지 10°C에서 25°C를 오가는 북해의 찬물에 한쪽 팔을 넣고 있다면, 그리고 성인이 아닌 소년이라면 한두 시간이면 의식을 잃을 것이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수압을 이기면서 둑의 구멍을 팔로 막을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영웅담을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둑 소년’ 이야기는 매리 맵스 닷지라는 미국의 여성동화작가가 1895년에 출판한 ‘한스 브링커: 또는 은빛 스케이트’라는 동화의 18장에 수록된 ‘하를렘의 영웅’이라는 액자소설에 수록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19세기에 이미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번 출판된 것이었고, 작가는 이를 재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18장의 말미에 ‘이 이야기는 물론 사실이다. 엄마가 나에게 말해주었거든’이라고 써놓았고, 이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린 덕분에, 졸지에 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네덜란드에 동상이 있다는 것도 허구인가? 아니다. 네덜란드에는 동상이 실제로 있고, 그것도 마두로담, 할링겐, 스파른담 세 곳이나 있다. 이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이야기를 듣고 자란 미국인 관광객들이, 네덜란드를 방문할 때마다 하도 ‘소년이 둑을 막은 곳이 어디냐?’라고 물어서, 네덜란드 정부가 미국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에 아예 동상을 만들어서 관광자원으로 삼은 것이다. 한참 뒤인 1950년에 말이다.

이같이 허구이지만 유명한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첫째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예찬하는 것이다. 물론 이 소년의 행동은 영웅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유도된/강요된 희생(예를 들어, 학도병이나 가미가제)은 예찬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열심히 선전되었던 것 자체로 뭔가 꺼림칙하다.

하지만 둘째 주제, 즉 ‘초기에 대응하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주제에는 매우 동의할 만하다. 필자의 직업상, 초기에 귀차니즘의 주술에 홀려 말로 때웠다가 큰 사고 후에 후회하는 경우를 자주 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특히 그것이 법이나 제도에 관한 것이라면, 상황이 정상일 때에 미리 위험요소를 확인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전체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아니면 ‘뭔가 이상하다’라고 느껴질 때라도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운다면 차선은 된다. 하다못해 ‘상황이 심각하니 대책을 세우라’는 아우성이 나올 때라도 대책을 세운다면 최악은 면한다.

지난해 자동차보험의 ‘한방’ 진료비가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①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 자보 의과 진료비는 1조 1500억 원 남짓에서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 한방은 같은 기간 2600억 원에서 1조 1600억 원으로 330% 증가했다. 또한 ② 자보 의과 청구건수는 2014년 869만 건에서 2020년 803만 건으로 줄었지만, 한방은 같은 기간 446만 건에서 1155만 건으로 159% 늘었고, ③ 자보 의과 입내원일수는 1669만 일에서 1300만 일로 줄었지만, 한방은 같은 기간 497만 일에서 1353만 일로 172% 늘었다.

한마디로, 자보와 관련하여 의과에서 제공하는 진료의 내용에는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한방에서는 뭔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서비스’가 뭘까? 그것은 ‘호텔형 1인실’, ‘첩약 폭격’, ‘비급여 패키지’ 등이다.

현행법상 10병상 이하의 의료기관에는 일반병상 의무보유율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많은 소규모 한의원들이 모든 병상을 1인실로 운영하면서 이를 ‘호텔형 입원실’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한방병원의 상급병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자보 한방 진료비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첩약인데,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첩약을 처방받은 교통사고 환자들 중 75%가 첩약을 전부 버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약침, 추나, 한방물리요법 등과 같은 비급여항목들에 대하여 횟수 제한이나 인정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환자 본인부담금 역시 없어 과잉진료 우려가 높다. 의과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수천 억 원의 보험금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보험회사들은 한방과의 머리 아픈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기보다는 금융위원회의 로비를 업고 손쉬운 보험료 인상을 시도했고, 결국 2020년 평균 3.5%의 보험료를 올렸다. 국회의원들은 기사에 이름 올리기 좋은 허섭쓰레기 같은 의과 규제 입법에는 열을 올리지만, 정작 이런 중요한 개선입법에는 관심이 없다. 이 모든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정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실상 손 놓은 지 오래다. 자보 한방 진료비가 의과의 1/4에 이른 2014년부터 ‘상황이 심각하니 대책을 세우라’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전문가들은 ① 한방 1인실 설치 제한, ② 첩약 적정처방기준 설정, ③ 한방물리치료 시술 횟수.시간 기준 마련, ④ 한방 경증환자 진단서 교부 의무화, ⑤ 한방 비급여비용 명확한 산정기준 마련, ⑥ 심평원 내 별도 심사기구.조직 설치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는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이러한 대안을 지금이라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네덜란드 소년처럼 초기에 대응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이미 글렀지만, 이제라도 대책을 세워야 둑이 터지는 최악의 상황이라도 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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