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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으로 실신’ 환자에 ICD 삽입술···法 “요양급여 지급 대상 아냐”
‘알코올 중독으로 실신’ 환자에 ICD 삽입술···法 “요양급여 지급 대상 아냐”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1.11.05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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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 “의료급여 감액조정처분 취소해달라” 소송냈지만···원고 패소 판결
“추가 검사·관찰 통해 알코올 금단 증상 살폈어야···심평원 감액처분 적법”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환자에게 이식형 심장박동회복 제세동기(ICD) 삽입 시술을 했다가 의료급여비용 감액조정 처분을 받은 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임상전기생리학적 검사(EPS) 결과만을 근거로 곧바로 ICD 삽입술을 할 게 아니라, 추가 검사나 추적 관찰 등을 통해 알코올 금단 증상으로 환자가 실신했는지 여부 등을 확인했어야 한다는 이유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는 한림대의료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송학원이 “의료급여비용 감액조정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심평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일송학원 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2014년 3월 혈소판 감소증 소견으로 일송학원이 운영하는 A병원에 입원한 B씨는 입원한 다음날 병원 주차장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B씨는 알코올 중독과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우울장애, 발작·실신 등의 기왕력이 있어 A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였다.

B씨는 “입원 전날까지도 약 15일 동안 하루에 소주를 5~6병씩 마셨고, 입원 전에도 소주 3병을 마시고 왔다”고 의료진에게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A병원 의료진은 B씨에 대해 뇌 컴퓨터단층촬영(brain CT), 뇌 자기공명영상촬영(brain MRI), 뇌파검사(EEG), 근전도검사, 기립경 검사, 관상동맥조영술, 심장초음파검사를 시행했지만 모두 정상으로 확인됐다. 이에 의료진은 EPS를 실시한 결과, 심실세동에 의한 심정지로 실신이 유발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B씨에 대해 ICD 삽입술을 했다. 

이후 A병원은 의료급여비용을 지급받기 위해 심평원에 심사를 청구했지만, 심평원은 ‘ICD거치술에 대한 요양급여기준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ICD 시술료 등에 대한 의료급여비용 청구를 인정하지 않은 채 1978만원을 감액조정하는 처분을 내렸다. 

A병원은 이의신청을 냈지만 기각됐고,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청구한 행정심판에서도 “B씨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으로 병력상 심장성 실신 가능성은 떨어지고 알코올 금단 관련 증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로, 구조적으로 정상 심장일 뿐만 아니라 A병원이 시행한 EPS는 과도한 자극으로 심실세동을 유발한 것으로서 급여기준 외로 판단된다”며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일송학원 측은 “B씨가 실신한 후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의료진이 각종 검사를 했는데도 모두 정상으로 확인돼 EPS를 시행한 결과 심실세동이 유발돼 ICD 삽입술을 하게 됐다”며 “‘실신에 대한 충분한 평가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신에서 임상적으로 연관되고 혈역동학적으로 의미있는 심실빈맥이나 심실세동이 EPS에 의해 유발된 경우’에 해당돼 요양급여기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고시인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은 ‘실신에 대한 충분한 평가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신에서 임상적으로 연관되고 혈역동학적으로 의미있는 심실빈맥이나 심실세동이 EPS에 의해 유발되고 약물치료는 효과가 없거나 복용을 못하는 경우’를 ICD 거치술의 요양급여 인정기준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EPS에서 ‘임상적으로 연관되고 혈역동학적으로 의미있는 심실빈맥이나 심실세동’이 유발됐다고 볼 수 없다”며 심평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병원 의료진이 EPS를 시행한 것 자체는 정상적인 진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인다”면서도 “B씨는 심장의 구조적 이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련의 검사에서 부정맥을 의심할 만한 아무런 소견을 보이지 않았고, EPS 결과가 부정맥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강도의 전기자극(조기자극 없이 연속적인 자극만을 주거나 조기자극을 주더라도 단일 또는 2중 심실기외수축을 하는 경우 등)에 의해 보다 뚜렷한 부정맥(단일형 심실빈맥 등)이 유발됐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B씨의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심장에 전기자극을 주다가 3회 연속 빠른 간격으로 조기자극을 주는 ‘3중 심실기외수축 검사’에서 심실빈맥이 아닌 심실세동만 유발됐다”며 “기존 검사 결과나 임상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부정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기자극 강도의 증가에 의해 부수적으로 발생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ICD거치술은 시술 및 추적관찰 과정에서 상당한 위험성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B씨가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A병원 입원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다량의 음주를 해 왔던 점 등을 고려하면, EPS 결과만을 근거로 곧바로 ICD거치술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원격 리듬 모니터링이나 이식형 루프 레코더 등 장기적으로 환자의 심장리듬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장비를 이용해 심장성 실신의 다른 원인에 대한 추가 검사를 하거나, 지속적 추적 관찰을 통해 알코올 금단 관련 증상으로 인한 실신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고 보인다”며 B씨에 대한 ICD 삽입술은 요양급여 지급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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