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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ch foot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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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21.10.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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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40)
전성훈 변호사
전성훈 변호사

하라다 가나메라는 일본인이 있다. 그는 1941년부터 4년간 2차대전에 참여한 일본의 전투기 조종사이자 전쟁 영웅이었다. 그는 탁월한 실력과 더 탁월한 운에 힘입어 전쟁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일본 청소년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강연을 해 왔다. “나는 전쟁을 증오한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는 말한다. “전쟁 중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고들 말하는데, 난 그런 전우는 단 한 명도 보질 못했어요. 모두가 죽기 직전에 ‘어머니’를 외쳤습니다.”
  
그렇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위대한 조국의 명예를 외치는 노인들과, 전쟁을 직접 수행하고 죽어야 하는 청년들은 분리되어 있다. 후방의 자존심 높은 의사결정권자들은, 전방에서 죽음의 공포에 영혼이 잠식되어 가는 병사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을 통일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조차도, “전투를 앞둔 병사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하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외치며 죽어가는 스무 살 군인의 심정을 우리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평화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전쟁을 말한다. 이는 승리의 영광을 기억하기보다는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인류가 치른 수많은 전쟁 중 가장 참혹했던 전쟁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1차대전을 꼽는다. 1차대전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 나라의 국력을 총동원하는 총력전이었다. 게다가 기술과 무기가 크게 발달했음에도 변화에 둔감했던 고루한 군 수뇌부 덕분에 ‘군인만’ 2,0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전쟁이었다.
  
1차대전을 상징하는 것은 ‘참호전’이다. 참호란 적의 총알을 피해 숨기 위해 땅을 U자로 깊게 판 것이다. 1차대전 초기 독일군의 쾌진격이 저지되고 전선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독일군은 전선을 돌파당하지 않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참호를 팠다. 프랑스군은 독일군 참호 앞으로 ‘닥치고 돌격’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돌격 한 번에 수천 명씩 죽어나갔다. 프랑스군은 철조망과 기관총으로 보호받는 참호의 위력을 절감한 뒤, 경쟁적으로 맞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양측의 이 전설적인 땅파기 시합은, 스위스에서 북해까지 연결되는 760㎞의 엄청난 참호를 만들고서야 끝났다.
  
이렇게 참호가 완성된 후에는, 독일 소설가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묘사된 것처럼, 전선은 완전히 교착되었다. 그러면 병사들의 희생이 없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전선 돌파를 위한 양측 군 수뇌부의 고루한 돌격 명령은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왔고, 그 때마다 기관총 앞에 병사들은 수천 명씩 죽어나갔다. 그러나 양측 병사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아군의 돌격 명령도, 적군의 기관총 세례도 아니었다. 그것은 ‘참호족(trench foot)’이었다.
  
땅을 파면 나오는 지하수와 주기적으로 내리는 비로 인해, 배수시설이 거의 없었던 참호 바닥에는 항상 차가운 물이 발목까지 차 있었다. 저온에 노출된 병사들의 발은 모세혈관 수축으로 혈액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고, 홍반, 청색증, 감염과 창상이 발생했으며, 결국 괴사하여 발가락이나 발을 절단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를 참호족이라고 불렀다.
  
수많은 병사들의 발을 뜯어 먹으며 4년간 지속되었던 참혹한 참호전은, 전차(탱크)의 등장으로 종말을 맞았다. 전차에는 철조망을 뚫고 기관총을 막을 수 있는 두꺼운 장갑과, 참호를 타고 넘어가 버릴 수 있는 무한궤도가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전차는 부실했지만, 순식간에 개량되었고, 참호를 손쉽게 돌파하여 참호를 무력화시켰다. 양측 군 수뇌부는 전차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이것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임을 알았지만, 양측 모두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참호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현위치 사수’를 명령했다. 하지만 전차 앞에 참호는 무용지물이었고, 전선이 돌파되자 참호를 지키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고립되었다. 고립된 병사들은 시간차를 두고 각개격파당했고, 죽거나 항복했다.
  
최근 서울시의사회는 원격의료연구회를 구성하고, 설문조사를 시행키로 했다. 연구회는 원격의료의 장단점, 의료계가 준비해야 할 사항, 설문조사 항목 등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서울시의사회는 ‘의협 대의원총회의 위임사항도 ‘원칙적으로 원격의료에 반대하지만, 의협 집행부가 방향성 등을 논의하라’는 것이다. 반대만 하다가 이끌려 가느니 사전에 연구해 보자는 것’이라고 연구회의 활동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회원들은 이러한 서울시의사회의 행동에 해명을 요구하면서 의료계의 내부검토나 논의 자체를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물론 의료계가 ‘원격의료 반대’를 외치며 사수해 왔던 참호는, 상당한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IT기술의 발전은, 1차대전에서의 전차와 같은 ‘게임 체인저’이다. IT기술 자체를 폐기해 버리지 않는 한, 비대면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나라‘만’ 제외한 세계 각국들은 비대면진료를 의료 시스템에 편입시키고 있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이미 IT기술이라는 전차는 한참 전에 우리의 머리 위로 참호를 ‘패싱’하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논의 자체 금지’를 외치며 현위치를 사수하려 한다면, 결국 각개격파당할 운명이 된다.
  
필자가 만나본 의료계의 여러 오피니언 리더들도 ‘원격의료 자체를 언제까지고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깊은 참호 안에서 ‘현위치 사수’를 외치며 논의 자체를 터부시하는 일부 회원들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원격의료’라는 단어는 의료계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19 상황을 틈타 독버섯처럼 올라오는 스마트폰 앱을 통한 비대면진료 서비스들을,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듯이 의협 차원에서 뒤쫓아 대응하고 있는 현 상황은,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위드 코로나’와 함께 재택치료가 논의되고 있는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선제적 논의와 영리한 협상을 통해 전선을 재구축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에 관한 논의를 남들이 주도하도록 맡겨 놓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박에 가깝다.
  
의료계에 ‘참호족’은 이미 시작되었다. ‘다 죽는다’는 말로 논의 자체를 막고 있는 일부 회원들의 사고에 전향적 변화가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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