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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모순(矛盾)
[서울시의사회 제35대 상임진 칼럼] 모순(矛盾)
  • 의사신문
  • 승인 2021.10.1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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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서울특별시의사회 부회장
    김성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한비자에 실린 유명한 중국 고사다. 전국시대 초나라에 무기를 파는 한 상인이 있었다. 그 상인은 자신의 창을 들어 보이며 ‘이 창은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소!’ 라고 선전했다.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이면서는 ‘이 방패는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소!’ 라고 선전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한 사람이 상인에게 “당신이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다고 말하는 창으로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질문을 던지자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모순(矛盾)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많은 순간 이 모순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상황 역시 많은 모순을 느끼게 한다. 환자, 보호자들은 병원을 방문할 때 환자의 병이 잘 진단되고 회복되기를 바란다. 진료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형성과 신뢰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시작하기도 전에 환자는 의사를 의심하고 의사는 진료실에서 스마트폰의 녹음기능을 활성화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면서 방어적인 자세가 되는 경우가 보인다. 좋은 수술 결과를 기대하고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는 미리 잘못될 것을 걱정하고 수술실 CCTV를 달아서 보기를 원한다고 한다. 모순이다.

코로나 상황이 발생한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의료진의 헌신, 국민의 희생적 협조, 방역 정책을 통해 지금까지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썩 괜찮은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곧 ‘위드 코로나’ 상황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정도까지 와있다. 그런데 꽤나 시간이 지난 지금도 환자를 전담해서 치료할 수 있는 전문병원을 설립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공공병원으로는 병상이 부족해서 다른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 치료받는 민간병원의 병상을 행정명령이라는 이름으로 확보하고 있다. 전시상황에 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충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시상황에 준한다면 이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괜찮은 전담병원, 전담인력을 확보해야 하거나 적어도 이를 위한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는가? 

의사들은 환자를 위해 늘 고민하고 성실히 진료하고 있으니 의료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않기를 바란다. 의료문제에 연관돼서는 의사 이외의 모든 상대방을 문외한으로 취급하고는 한다. 의사는 전공인 분야에서 전문가일 뿐이지 모든 의료행위, 의료정책에 전문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사들이 전문가로 대접받고 싶어 하면서 다른 전문가들을 전문가로 대접하고 있는가 돌아볼 일이다. 

지역의료, 공공의료의 질적, 양적 발전은 당연한 방향이다.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소요되고 특히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전문인력의 공급 계획은 필수적이다. 정부, 민간, 의료계 모두 방향성에는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이 걸리니 정부는 민간의료에 여전히 기대고 있고 비용은 투입되지 못하고 있으며 인력계획은 무계획적이다. 의료계라고 다를 것은 없다. 공공의료부문을 확충하라고 하면서 공공의료 분야나 지역병원으로 향하는 의사는 극소수다. 단순히 급여 문제가 해결되면 상황이 바뀔 것인가? 이러한 모순이 진정성을 훼손시킨다. 

필수의료 부분이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수가가 인상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보다 수가가 얼마가 인상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수가가 올라가도 생명을 직접 다루고 당직 근무가 필수적인 임상과는 젊은 의사들의 선택을 받기는 당분간 계속 어려울 것이다. 업무 부담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필수과의 전공의 수가 증가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전문의의 수요를 생각한다면 답이 아닐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어렵다는 이야기와 의사 인력이 모자란다고 하는 이야기가 동시에 나오는 것도 모순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이 의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위의 누가 의대를 들어갔다고 하면 많은 축하를 해주고 또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의사들은 돈만 중시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부류로 치부하곤 한다. 이런 모순이 있을까? 한편으로는 의사들은 세상의 냉소적인 반응들을 보면서 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 자녀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 역시 자식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고 지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역시 모순이다.  

우리 의사들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모순된 상황이 있다. 이런 모순들은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한다. 하지만 다양한 이러한 모순을 ‘타당(妥當)’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 때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모순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냉정하게 우리 내부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그건 그렇고 초나라 상인이 가지고 있는 창과 방패가 부딪혔다면 뭐가 이겨야 ‘타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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