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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in Grimm과 박한희 변호사
Gavin Grimm과 박한희 변호사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1.09.14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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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35)
전 성 훈 변 호 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변 호 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우리 문화는 이제 지구촌 어디에서도 더 이상 소수의 독특한 취향이 아니다. 외국인들이 그 창의성에 찬사를 보내는 우리 문화 중 ‘찜질방’이 있다. 생각해 보면, 찜질방은 단순한 목욕 장소 제공이 아닌 목욕+식사+휴식+놀이를 모두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빔밥을 먹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지난 6월 미국 LA 코리아타운의 찜질방에서 일어난 사건이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성전환자 여성이 여성 탈의실을 이용했는데, 다른 여성 고객이 업주에게 항의한 것이다. ‘어떻게 성전환자인 줄 알았지? 수술한 곳이 티가 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성전환자 여성은 수술을 하지 않아 남성 성기가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업주는 ‘진짜 성전환자와 사기꾼을 어떻게 구별하겠는가?’라고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성전환자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출입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영상은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지난 7월에는 이 찜질방 앞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시위대와 아동과 여성의 보호를 주장하는 시위대가 대치하다가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
  
이와 같이 성전환자의 지위가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특정성별만 이용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약속된 편의시설, 즉 화장실, 샤워실, 탈의실 등을 이용할 때이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성별로서의 편의시설 이용을 거부당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사회가 그 사람의 성별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성전환자 화장실 권리(Transgender Bathroom Right)는 핵심적 쟁점으로서 오랜 투쟁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앞서 본 ‘LA 찜질방 사건’은 직전에 내려진 ‘Gavin Grimm 사건’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단에 영향받은 것이다.

그림은 원래 여성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 시부터 자신을 남성으로 소개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남성 화장실을 이용했다. 학교는 처음에는 그림의 남학생 화장실 이용을 허용했으나, 다른 학부모들이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자 학교 이사회는 학생들에게 ‘생물학적 성(birth or biologocal sex)’과 일치하는 화장실을, 성전환자 학생에게는 학교 내 3개의 ‘성중립 화장실(unisex bathroom)’을 이용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림은 ‘성중립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낙인감과 고립감’을 느꼈고, 때문에 소변을 참다가 요로감염에 걸리기도 했다’고 하면서 이러한 학교 이사회의 정책이 공립학교 내에서의 성별에 기한 차별을 금하고 있는 연방교육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6년간의 소송 끝에, 연방항소법원은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성전환자 남학생에게 남성 화장실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연방교육법과 연방헌법 위반임을 인정하면서 그림에게 15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보수적인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한 것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다. 유명 회계법인 직원이 여성임에도 남성 같은 외모를 하고 남성처럼 행동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직장 내 ‘성 고정관념 강제(gender stereotyping)’는 차별이라고 선언했다. 1989년에 말이다.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계에서도 올해 성전환자 주교(노회장)가 탄생했다. 140만 명으로 추정되는 성전환자들을 미국 사회가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얘기는 바다 건너 미쿡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법원 판결은 사회상의 거울이다. 성전환자에 대한 우리 법원의 판결들을 살펴보자.
  
1996년 성전환수술한 사람을 남성이 강제간음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강간죄의 객체는 ‘부녀’이므로 강간은 무죄(강제추행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보수적으로, 생물학적 성별을 기초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2006년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수술한 사람이 호적상 성별을 남성으로 정정해 달라고 신청하자, 대법원은 이를 허가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선언했다. 이어서 2009년에는 성전환수술한 사람을 남성이 강제간음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강간죄를 인정함으로써 성전환수술한 사람이 법적 여성임을 명확하게 인정했다.
  
이후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여성의 남성으로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고, 2017년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은 반대의 경우도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올해 6월 서울행정법원은 ‘성전환수술한 성전환자 여성의 여성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런 전향적 판결이 있는 반면, 재판부 성향에 따라 보수적 시각에서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2020년 대법원의 지침 개정 이후에도 성전환수술 여부가 성별 정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대한 수술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고, 성별은 수술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며, 개인이나 사회가 누군가의 몸에 대한 질문을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은 무례한 것’이라는 국내 최초의 성전환자 변호사인 박한희 변호사의 지적은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하다.
  
위 LA 찜질방 사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가 적절히 지적한 것과 같이, 성전환자의 사회와의 갈등은 ‘자신이 주장하는 성 정체성을 타인이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예전에는 외모와 신체적 특징으로 쉽게 이를 확신할 수 있었고, 이러한 확신에 기초하여 사회관계와 관습이 형성되었다. ‘예외’는 인정되지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오랜 관습은 이제 도전받고 있고, 사회적 타협점을 찾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 법적 결과물은 앞서 본 것과 같은 판결들이다. 위 판결들과 같이, 이제 우리나라도 20만 명에 이르는 성전환자들을 우리 사회의 일부로 수용해 나가고 있다.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전향적으로 말이다. 이제 의사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오피니언 리더로서 이에 대한 입장을 한번쯤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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