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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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1.07.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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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23)

글 쓰는 사람들은 종종 왜 글을 쓰는지 자신에게 묻곤 한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를 댈 수 있겠으나 대개는 조지 오웰이 정리한 네 가지 범주로 귀결된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에서 글을 쓴다. 잘난 척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다. 둘째, ‘미학적 열정’ 때문이다. 이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성정과 닮았다. 셋째는 ‘역사적 충동’으로 인해 기록을 남기려 한다. 후세를 위해 진실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다. 넷째로는 ‘정치적 목적’에서 남을 설득하기 위함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난다. 보통은 이 네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오웰 자신도 <동물농장>을 쓴 동기로 두 번째와 네 번째 이유를 들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담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쓰고 싶었다는 말이다.
 
나 또한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이유로 여기저기에 잡문(雜文)을 끄적인다. 다만 글에 꼭 담아내고 싶은 콘텐츠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재미’와 ‘의미’, 그리고 ‘진심’이 그것이다. 감사하게도 이런 의도를 알뜰히 파악하고 격려를 보내주시는 분들 중에는 나에게 책을 한번 내보라고 권하는 이들이 있다.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뜻밖의 행복을 선물해 주었던 두 도시 이야기를 한때 원 없이 글로 쏟아내 보고 싶긴 했다. 해군 군의관 첫해를 보냈던 경남 진해와 미국 연수 시절 1년 동안 머물렀던 샌디에이고.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아 화사한 연분홍 벚꽃 동산에서, 그리고 보랏빛 자카란다꽃 터널 아래서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느낌을 글로 한번 옮겨보겠노라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책을 낸다는 것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범람하는 책들 속에 하잘것없는 것을 또 하나 보탠다면 이 얼마나 큰 죄악이겠는가!” <성문종합영어> 머리말에 나오는, 저자 고(故) 송성문 선생의 일갈이다. 팔순의 나이에 최근 시집 <터무니>를 출간한 유안진 시인은 “등단 56년에 겨우 시인 지망생이 되는 듯한데, 시집(詩集) 공해 보태는 짓만 또 한다”라고 서문에 쓰고 있다. 물론 겸양의 표현이겠지만 대가들조차 책을 낸다는 것이 자칫 ‘죄악’이고 ‘공해’가 될까 싶어 이토록 경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의 수필 가운데는 이런 문장도 등장한다. “나는 내 소설을 읽었다는 분을 혹 만나면 부끄럽다 못해 그 사람이 싫어지기까지 한다.” 이 또한 과장만은 아닐 것이기에, 책을 내는 일이란 어쩌면 인간관계를 포기할 용기까지 갖춰야 하는 두려운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단단히 주눅이 들어있던 나의 마음속에 혹시 기회가 되면 글을 써서 출판까지 해볼까 하는 갈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건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란 일본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다. 영화는 사람이 죽은 다음 일주일간 머무는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월요일에 그곳에 도착한 한 무리의 망자(亡者)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들이 선택한 순간은 그곳 직원들에 의해 짧은 영화로 만들어져 토요일에 상영된다. 이제 망자들은 오직 그 하나의 기억만을 가지고 천국으로 이동한다. 다큐멘터리처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 인생 최고의 순간을 회상하는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준다.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순간을 선택하는 소녀. 어린 시절 빨간 구두를 신고 춤추던 순간을 선택하는 할머니. 고통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었다며 기꺼이 출산의 순간을 선택한 여인. 개중에는 자신의 인생 자체를 아예 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고집쟁이 아저씨도 있고 왜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 강요하냐며 뻗대는 청년도 있지만 이들 역시 고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주마등처럼 지나간 자기 인생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기어이 가장 소중했던 순간 하나를 골라낸다. 나는 똑같은 질문을 죽은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 구체적으로는 우리 병원 시니어 의사들에게 던져보고 싶었다. 이삼십 년 의사 생활을 해 오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영화 속 사후세계 기착지의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망자들의 선택을 영화로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동료들이 고백하는 의사 인생 최고의 순간을 나도 최선을 다해 글로 옮겨보고 싶다는 ‘아이디어’, 아니 느닷없는 ‘충동’이 생겼다. 극도로 어려웠던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냄으로써 환자를 살렸을 때의 기쁨, 난항에 부딪혔던 연구에서 기발하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후련함, 동남아 개도국에 의료기술을 전파하고 현지 제자를 길러냈을 때의 뿌듯함 등등. 뭐 이런 식으로 동료들이 저마다 자기의 의사 경력 중 경험한 최고의 이야기들을 골라내고 그것을 내가 책으로 엮어 출간한다면 왠지 병원 홍보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역시 제법 있었지만.
 
요사이 정년퇴직하는 일반직 직원들이 인사차 내 방에 찾아왔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의사들 말고도 우리 병원에서 수십 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이라면 간호직이건 행정직이건 누구에게나 직장인으로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했던, 절정의 순간이 한 번쯤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또한 글로 옮겨보고 싶고 책에도 담아보고 싶은 매력 넘치는 스토리들 아니겠는가. 그래서 앞으로는 정년을 앞둔 직원들에게 미리 질문과 부탁을 해놓을까 싶다. 직장생활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딱 하나 꼽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내게 부디 그 이야길 좀 들려 달라고.
 
혹시나 이런 책이 만들어진다면 어울릴 법한 제목은 그 또한 <원더풀 라이프>일 것이다. ‘원’자가 원자력병원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도 살짝 있을 듯하다. 오웰식 분류에 따르자면 아무래도 나는 ‘역사적 충동’으로 글을 쓸 때가 많지 않나 싶다. 우리 기관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진실하게 기록하는 것과, 나를 포함하여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삶이 가졌던 의미를 차분히 정리해 보는 것. 그 거대한 작업의 일부가 마치 나의 소명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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