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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咽頭) 소견 없음에 환자는 '휴~' 의사는 '쭈뼛'
인두(咽頭) 소견 없음에 환자는 '휴~' 의사는 '쭈뼛'
  • 강진욱 서울플러스 이비인후과 원장
  • 승인 2021.04.13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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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기획 Ⅱ] 코로나가 바꿔놓은 진료실 안팎 풍경' ④
사라진 소아환자들, '감기'과 의원은 회피·불안의 장소로 전락
둘다 100년만···이른 벚꽃은 지는데 바이러스 광풍은 언제 끝나나

Episode 1. 긴장

‘삐이~!’ 

37.9도. 열이 난다. 

등줄기에서 오싹한 전기가 오른다. 환자분은 초진이고 주소를 보니 이 동네에 사는 분이 아니다. 느낌이 싸하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냐고 물어보니 며칠 전부터 몸살, 오한이 있고 목이 아프다고 하신다. 마스크를 내려 목을 봐야 하는데 두렵다.

짧은 순간 갈등이 교차한다. 마스크를 내릴것인가 말것인가. 목을 일단 봐야 열이 나고 목이 아플 만한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마스크를 내리면 전혀 다른 형국이 펼쳐진다.

만약 이 환자분이 코로나 감염자라면 마스크를 잠깐 내려 목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난 2주간 격리되고 의원은 문을 닫아야 하며, 내가 자가격리자가 되면 연쇄적으로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수 초 간의 갈등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내리고 목안을 들여다 본다.

‘아차…’ 

특별한 소견이 없다. 차라리 편도선염 소견이나 심한 인두염 소견이라도 보이면 오히려 마음이 놓였을텐데 목이 아프고 열이 나고 몸살, 오한이 있을 만한 특별한 인두 소견이 없다. 긴장이 된다. 목이 크게 붓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드리니 반대로 환자는 안심을 한다.

그러더니 환자는 그제서야 내 의원에 오기 전에 '다른 근처 의원을 갔었는데 그 곳에서는 접수에서 열이 있고 목이 아프다고 하니 진료실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목은 이비인후과에서 잘 본다며 이비인후과에 가보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엉뚱한 분통을 나에게 터뜨리신다.

‘음….’

그로부터 3일 후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확진자였다.

이건 마치 지뢰밭을 지나가는 것 같다.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진료실은 물론, 출퇴근 지하철에서조차 연거푸 기침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쭈뼛' 머리카락이 서면서 얼른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의원 대기실에서 연달아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는 환자가 있으면 그 주위의 다른 분들이 슬글슬금 일어나서 대기실을 이리저리 배회하거나 아예 의원 문 밖에 나가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진료실로 들어오는 순간 제일 먼저 진료를 옆에서 도와주는 직원이 하는 말은 "마스크는 벗지 말고 앉으세요"다. 

환자를 보기전에 일단 다시 체온을 진료실에서 재고, 니트릴 장갑을 낀 손을 다시 한번 손소독제로 닦는다. 환자가 일어나면 다시 손을 손소독제로 닦고 직원은 소독제를 묻혀 환자가 앉았던 의자와 손잡이를 닦는다. 열이 나거나 조금이라도 느낌이 안좋은 환자는 보고 나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다음 환자와 직원, 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코로나 19 창궐시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Episode 2. 불안

두리번거리면서 쭈뼛거리는 걸음걸이로 들어온 40대 중년의 여성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기…”

목이나 코는 안 보고 평소에 먹는 비염약만 가지고 갈 순 없냐고 묻는다. 그렇게 하시라 하고 간략한 문진을 한 뒤 약을 처방한다.

이어서 오랜만에 오신 70대 할머님이 천천히 들어오신다.

"아이고…"

그동안 불편해도 무서워서 의원에 올 수가 없었다고 한숨을 쉬신다. '귀가 가렵고 아파도 병원에 오면 코로나인지 뭔지를 옮을까봐 무서워서 올 수가 없었다'고 하시며 그동안 억지로 참았다고 하신다. 

지난 일년이 훌쩍 넘도록 소아환자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엄마와 아이들을 진료하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간혹 가다가 잦은 기침 때문에 힘들어서 오시는 분들도 자기 자신의 불편함보다 지하철이나 버스, 모임하다 기침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마치 자기를 감염자처럼 보는 것 같아, 빨리 낫고 싶어서 왔다고 이야기하신다.  이른 바 감기과라고 불리는 감기를 주로 보는 의원들의 대기실과 진료실은 어느새 회피와 두려움, 불안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2021년 봄날이 왔다. 

서울에서 벚꽃의 개화가 100년 만에 가장 빠르다는 말이 들린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호흡기 괴질이 돌기 시작했을 때 그 소식을 중국의 유일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나 다름없는 '위챗(WeChat)'을 통해 알리다가 중국 공안에 허위사실 유포로 체포되어 곤혹을 치르고 훈계서를 작성하고 겨우 풀려난 사람이 있었다. 우한 중앙병원 안과의사 리원량이란 분이다.

그 분이 환자를 진료하다가 2020년 1월 8일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투병하다 그 해 2월7일 유명을 달리하기 전 중환자실에서 부인과 어린 첫째,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 아이에게 남겼다고 전해지는 유언을 떠올려 본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 )로 봄나들이를 갈 수 없습니다.
 부모님과 우한 대학 벚꽃놀이를 할 수 없습니다
 …..(중략)….
 내 묘지명은 한마디로 충분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하다-"

코로나 19가 전세계를 휩쓸고 의원가를 휩쓸어 버린 지가 일년이 훌쩍 넘어간다. 세상이 바뀌어 버렸고 사람들이 바뀌어 버렸다. 일상의 모습이 바뀌었고, 의사도 환자도, 진료실의 풍경도 달라졌다. 예상치 못한 암울한 현재를 모두가 겪고 있지만 미래 역시 긍정적으로만 예상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100년 만에 가장 빨리 핀 벚꽂과는 달리 100년만에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바이러스는 빨리 끝날 마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작년에 새로운 풍경이 왔듯 올해는 다시 새로운 풍경이 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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