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에게 한국 의료의 길을 묻다
히포크라테스에게 한국 의료의 길을 묻다
  • 이인수 전 구로구의사회장
  • 승인 2021.03.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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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의술의 본질을 간파하고 한마디로 표현한 이 말은 평생 의사로 살아온 내게 오늘도 영감을 준다. 오케스트라 합주를 듣거나 화가의 그림을 보고 감동했을 때, 혹은 축구선수의 멋진 골을 보고서도 우리는 예술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환자를 살려냈을 때 의사는 예술가가 된다.

프로페셔널리스트(이하 프로)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업에 임한다. 아마추어와 다른 전문가인 것이다. 그에 따른 고액 연봉을 받지만 때로는 보상이 없더라도 자기가 할 일을 한다. 스타 프로야구 선수가 고액 연봉 없이도 어린이 야구교실을 맡는다. 대신 요구할 땐 당당히 요구한다. 굳이 막스 베버에게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묻지 않더라도 의사는 마땅히 예술가이자 전문가다. 따라서 의사회는 코로나 지원 일당을 당당히 지금보다 2배 이상 요구해도 된다. 

일반적으로 영문(英文)으로 전문가를 호칭할 때는 어미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어미에 '-ist'를 붙이거나 '-cian/geon'을 붙이는 것이다. 특정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는 피아니스트(pianist), 바이올린니스트(violinist)라고 부르지만 이들이 연주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뮤지션(musician)으로 부른다. 뮤지션은 화음을, 예술을 만들어낸다.

'physician'으로 통칭하는 의사는 전체 질병상태를 보고 지휘할 수도 있는 교육훈련을 받지만 때로는 특정 분야에 특화된 진료를 하는 '-ist'의 역할을 한다. 특히 '-cian/-geon'이 따라붙는 내/외/산/소 의사들은 '-ist'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지휘자의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결국 의료가 오케스트라와 같은 예술이 되려면 동료 전문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의료가 사람을 살려내는 예술이 되기 위해선 협업이 가능한 '의료생태계'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몇년 전, 강진군에 산과의사가 없어 지자체에서 개원 장소와 연간 1억원을 지원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결국 지원자가 없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누구는 의사들이 배가 불렀다고 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의료가 예술이라는 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지역엔 건강한 산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럴 땐 인근에 전원 가능한 상급병원이나 중증의 복합질환을 도와줄 타과 전문의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의료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또 동료의사들간에 소통이 되지 않으면 산부인과 의사 혼자는 제기능을 할 수가 없다. 의사 혼자서는 예술이 되기 힘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도 파피루스연구가들에 의하면 '우안' 전문의와 '좌안' 전문의가 따로 있었다는데 현대에는 더 많은 분야의 의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현대의 기술 발달로 인해 생긴 이와 같은 변화는 필연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파생시킨다. 즉, 급격한 의료계의 변화를 제도가 따르지 못하는 바람에 PA, 의료전달체계, 일차의료붕괴, 수가문제, 원격의료, 과별격차, 주치의제도 등과 같은 갈등 사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들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 정재계의 요구가 서로 맞물려 있는 고차방정식이다. 직접 당사자인 의료계가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야 하지만 지금까지 의료계가 정부에 선제적으로 정책을 제안하거나 정부 제안에 역(逆)제안이라도 하는 모습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내부적으로도 의약분업 파업 이후로 의료계의 심도있는 의견수렴 과정을 본 기억이 없다.

그저 정부의 제안에 대해 의협은 투쟁과 반대로 일관해 왔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산적한 현안들은 여러군데가 병든 만성병 상태에 접어들었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다 망한 조선 말기가 연상된다. 이같은 문제들은 외과적 수술 방식처럼 단번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제도개선을 위해 병인을 다시 연구 검토하고 의료계의 중지를 모아 논의하고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내과적인 접근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이 참에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현행 전문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제 외과전문의를 따더라도 모든 수술을 하지는 못하고, 내과 수련을 마쳐도 내시경을 못하는 일이 흔하다 보니 전임의/분과전문의가 생겨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처럼 기관별로 전문의를 분류하는 것이 아닌, 질병별로 분류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례로 기흉외과전문의, 정맥류외과전문의라면 흉부외과 5년의 수련기간이 필요할까? 내시경전문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의사 앞에 내과의사, 외과의사라고 이름짓고 사고를 한정시키는 바람에 아이덴티티에 문제가 생긴다. 일본의 의사와 치과의사들은 전문의를 강조하지 않아 단합에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이 외에도 현재 의료계가 맞닥뜨린 중요 현안들은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날 수 있다. 의료전달체계/일차의료의 붕괴는 저수가 문제와 중첩되어 있다. 무엇보다 개원가와 상급병원간의 수직적 모델만 강조해서 생긴 문제다. 개원가 동료 간 의뢰회송(수평적의료전달체계)에도 수가 보상이 이뤄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일부 현안은 의료계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이미 현실이 되어버렸다. 주치의제도는 '만관제'라는 변형된 상태로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환자 진료와 교육보다 청구에 시간을 더 빼앗기는 이 불편한 제도는 내년에 전격 시행될 예정이다. 또 의협이 그토록 반대했던 원격진료는 코로나 정국을 틈타 '비대면/전화진료'라는 변형된 이름으로 진료실을 파고들었다. 이미 수가책에는 원격진료에 대한 수가가 올라와 있고 곧 시행될 예정이다.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일부 사안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전향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원격진료는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의료의 형태를 변화 시킨다. 세계적인 수준의 'K의료' 발달로 의료관광이 정부의 추진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역의 동료의사들은 원격진료를 하면 서울로, 3차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원격진료에 반대해 왔다. 이에 의협도 반대로 일관해왔다.

물론 내국인만 대상으로 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790만 해외동포 등으로 눈을 돌려보자. '환자풀'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최근 코로나 정국을 맞아 3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비대면회의에 필요한 화상회의프로그램을 거의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 화상회의 시스템을 약간만 손보면 휴대폰이나 노트북만 가지고 어디서나 원격진료가 가능한 툴이 된다. 현행법상 진료는 진료실에서만 해야 하지만 의사회가 주도해서 관련법을 고치자고 한다면 아마 정부도 기뻐할 것이다. 원격의료는 그간 의료계가 강력 반대했던 사안인 만큼,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 다른 사안을 협상할 때 이를 레버리지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주나 진료를 할 때 청중이나 환자가 많아서 나쁠 것이 있을까?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이나 진료는 어떤가? 다시 한번 히포크라테스 형님께 물어보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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