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소명의식 가질 환경이 만들어지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소명의식 가질 환경이 만들어지길
  • 은백린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승인 2020.12.05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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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다가오는 의료대란, '내외산소'는 숨쉬기도 버겁다] ⑤
소청과 전공의 모집률 2019년 90%, 2020년 71% ···내년엔 '빅5' 마저 미달
국가는 급성장했는데 출산율은 곤두박질, 코로나까지 겹치며 숨막힐 지경
수련체계·병원진료 인프라 붕괴 막으려면 존립 위한 특별지원 이뤄져야

지난 2일 마감된 2021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 소위 ‘빅5’ 병원 모두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정원에 미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은 물론이고,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그것도 빅5 병원에서조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국가고시 미응시 사태로 인해 내년도 인턴 공급이 급감하게 되면 1년을 더 쉬었다 이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전공을 옮기려는 전공의들마저 나타나고 있다. 어쩌다 소아청소년과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무엇보다 극심한 저출산, 그동안 대량진료로 겨우 보전해온 최저 수준의 건강보험수가,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한 환자수 격감, 미래 비전 상실이 주원인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과 저출산으로 인하여 무조건 배에서 뛰어내리고자 하는 패닉탈출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임상과목의 전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데이터가 전공의 지원율이다. 내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등 소위 주요 필수 진료과목의 경우 전공의 지원자가 없어 ‘의사 수련 체계’와 함께 ‘진료 인프라’의 붕괴가 예상된다. 초저수가에 밤새워 고생해도 낙이 없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는 여기에 더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비롯해 연이은 소아청소년과 관련 의료사고 및 의료인 인신 구속, 급기야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의 직격탄까지 맞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 가장 고생스럽다는 전공의 1년차를 마치고 2년차에 수련을 중도 포기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는 꾸준히 줄어 2019년도에는 정원의 89.8%를, 2020년에는 추가 모집에도 불구하고 정원의 71.2%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지방소재 어린이 병원 등 일부 병원은 단 한명의 전공의도 확보하지 못했다. 올해는 더욱 심각하여 지난 2일 마감한 소아청소년과 전기 전공의 지원율은 29.6%(62명)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시 미응시로 인해 내후년엔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특히 한번 전공의 1년차가 사라지면 그 여파로 지원이 더욱 줄어 나중엔 1~3년차 전공의가 모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즉, 밤낮으로 입원실이나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소아청소년 환자를 일선에서 담당할 의사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는 대학병원을 포함한 수련병원 전문의들의 업무 부담 증가에 따른 퇴직으로 이어져 신생아 중환자실을 비롯해 중증, 희귀 난치 소아 질환 환자의 진료 공백마저 우려된다.

필자가 인턴을 마치고 1985년 소아과 전공의를 시작하던 당시 출생아 수는 65만5489명이었고, 1인당 국민총소득은 약 2426달러였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은 당시보다 병상은 2배 이상 증가하면서 현대화되었고,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지난해 기준으로 13배 이상 늘어났지만,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인 만 15~49세 사이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의 수)은 매년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며 급기야 0.92를 기록했다. OECD 국가 중 최저치다.

이에 더해 올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은 임계치를 넘어버린 저출산 문제와 함께 소아청소년과의 더욱 숨막히게 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호흡기 질환 등 급성기 환자인데,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으로 호흡기 질환 발병이 크게 줄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병원 방문 자체가 급감하면서 소아청소년과 개원가의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소아청소년과 의원 89곳이 문을 닫았다. 작년 한해 동안 폐업한 의원 수(98곳)의 90%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심평원이 집계한 올 상반기 의원급 진료환자 수를 보면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년 대비 17.5% 감소하였다. 감소폭이 전체 진료과 평균(4.9%)의 3배가 넘는다. 소아청소년과의 급여 매출 감소세가 수년간 지속됐지만 올해는 특히 감소폭이 전문과목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출산율 감소로 아이들의 수는 줄었지만 의학의 눈부신 발전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중증, 희귀 난치 소아질환에 대한 치료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의료진의 노력은 전보다 더 커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몇 가지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휴일과 주말까지 반납하고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며 살려낸 환자가 퇴원하고 나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꼬리표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전달되는 ‘삭감내역’이다. 상태가 위중하여 사용한 고가 약제와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사용한 각종 첨단 검사가 삭감대상이 되고, 이에 대한 이의신청이 의료진에게는 큰 일거리가 돼버렸다. 규격화되어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감된 수가를 인정받기란 하늘에 별따기이다. 영유아건강검진 수가 중 진찰료는 현행 재진료의 80%인데 어떤 근거인지 알 수가 없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아이들의 편의를 위해 복합 백신이 출시되지만 접종료는 주사 놓고 행정 처리하는 비용으로 정의하는 바람에 현 수가체계에서는 복합 백신을 접종하면 오히려 손실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아이들 숫자가 줄어든 만큼 부모들의 육아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면서 소아청소년과의 진료실은 건강상담의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제외하고는 상담료를 청구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으로 모유수유 교육, 육아상담, 건강상담 등은 무료로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제도적 모순에 더해 올해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여기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미응시로 내년에 2700여명의 신규의사가 배출되지 못한다면 소위 비인기과의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란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인턴지원 감소가 결국 ‘의사 수련 체계’ 붕괴와 전문의 부족을 야기해 ‘병원 진료 인프라’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전공의는 미래의 전문의로서 필요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는 ‘피교육자’로서의 신분과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제공하는 ‘근로자’라는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전공의 교육은 지도 전문의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지만 고연차로부터 받는 교육과 저년차를 가르치는 교육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어느 한 연차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전공의 간 교육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전공의는 병원 진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외래, 병동, 응급실, 신생아중환자실, 소아청소년중환자실 등에서 진료를 수행한다. 특히 대부분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소아청소년 응급환자의 1차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이미 지방소재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 지원이 없어 소아응급실 운영이 파행을 겪고 있다. 조만간 소아응급실뿐만 아니라 병실, 외래, 신생아중환자실 및 소아청소년중환자실 운영이 전국 규모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한소아청소년학회는 변화한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감안해 소아청소년과 진료의 패러다임을 질환치료 중심에서 질환예방과 건강증진, 만성질환 관리 중심으로 전환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교육자료 및 지침 개발과 관계기관과 협의와 조율을 통한 수가 및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학회의 계획과 노력만으로는 현 상황을 회복시키기에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의사 수련 체계’ 붕괴와 ‘병원 진료 인프라’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미 학회가 구체적으로 제시한 소아청소년과 존립을 위한 특별지원 방안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즉, ① 코로나19 유행으로 위기상황에 놓인 소아청소년과 1차 의료기관에 대한 긴급 재정적 지원과 소아연령 가산, 교육 및 상담수가 신설 등 향후 지속적인 대책 마련 ② 현재의 비현실적인 국민건강보험 제도 내 중증질환 관리 수가의 합리적 변화를 통한 종합병원의 중증관리시스템 지원으로 전문의 진료 강화 ③ 국가의 건강인프라로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련비용 국가 부담 등의 제도 개선에 정부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재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소아청소년의 건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지역주치의로서 질환의 치료 중심에서 건강교육자 및 관리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교육상담(육아, 영양식이, 운동, 정신건강 등) 및 관리수가(만성질환, 감염, 비만 등) 신설 등의 지원을 늘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새로운 역할과 보상에 대한 비전이 제시될 때 가능해진다. 한편으로 중증 환자 중심의 상급 의료기관에서는 전문의 주도 방식의 진료 형태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진료 보조 인력의 수급 및 적절한 수가 체계 마련 역시 필요하다.

정부는 미래의 우리나라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몇 명이나 필요한 지 연구해 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OECD 통계 자료를 인용하여 소아 인구 당 의사수가 몇 명인가를 제시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출생아 수 급감, 전세계에서 유일한 정부 주도의 전 국민 강제 건강보험 체계와 저수가 제도, 질병 예방보다는 질병 치료에 중심을 둔 보험 보상체계, 우리나라 고유의 산후조리 문화와 어린이집 및 유치원 이용 현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다각도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역할과 수요를 파악하고 향후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적 수요를 추정해 본다면 인력 양성을 위한 전공의 제도의 발전 방향도 이에 따라 매년 어느 정도 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기관에서 양성할 것인지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태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이들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선 이와 같은 정부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지원과 학회의 부단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본연의 임무에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속히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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