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고 당연한 것과의 결별
익숙하고 당연한 것과의 결별
  • 전성훈
  • 승인 2020.11.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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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01)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이번 글은 옛날이야기로 시작해 보겠다.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 있는, ‘무섭고 웃기는’ 이야기이다.
 
2,4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업(鄴)현에 현령 자리가 비었다. 문후는 서문표를 현령으로 임명했다. 서문표가 업현에 도착해보니, 살기 좋은 터였음에도 이상하게 인구가 적고 가난했다. 서문표는 고을 장로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물었다.
 
장로들이 말했다. “하백(황하의 신)에게 신부감을 바치는 일로 백성들이 괴로워합니다.”
 
서문표가 그게 무엇인지 묻자, 장로들은 대답했다.
 
“전해오는 말에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지 않으면 하백이 황하를 넘치게 하여 백성들을 빠져 죽게 할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삼로(三老)와 아전들이 세금으로 수백만 전을 거둬 그 중 수십만 전을 무당에게 주어 신부감을 바치는 행사를 준비합니다. 큰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하백의 아내로 점지하는데, 신부를 바치는 날이 되면 이 처녀를 단장시키고 시집가는 여자의 방석을 만들어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얼마 안 가 강에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예쁜 딸을 가진 집들은 큰 무당이 하백의 신부감으로 점지할 것을 두려워하여 딸을 데리고 멀리 도망가거나, 큰 무당에게 뇌물을 줍니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인적이 드물고 가난해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치기 전에 내게 알려 주시오. 나도 참석하여 처녀를 전송하겠소.”
 
마침내 하백에게 신부를 바치는 날이 되었다. 서문표는 군사들을 대동하고 강가로 갔다. 마을의 삼로와 아전, 장로들과 모두 모이고 구경하러 온 백성들이 수천 명이었다. 큰 무당은 일흔 먹은 여자였고 작은 무당 열 명이 따르는데, 모두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부감을 불러 오거라, 내가 아름다운지 확인하도록 하겠다.”
 
작은 무당들이 곧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와서 서문표 앞으로 데려왔다.
 
서문표가 그녀를 보더니 큰 무당과 삼로와 아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처녀는 아름답지가 않으니, 수고스럽겠지만 큰 무당 할멈이 들어가서 하백에게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다음에 보내드리겠다고 전하여라.”
 
그리고 서문표는 곧바로 군사들을 시켜 큰 무당 할멈을 들어서 강물에 던져버렸다. 지켜보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모두 ‘뜨악’했다.
 
조금 있다 서문표가 말했다. “큰 무당 할멈이 왜 이리 오래 있는단 말인가? 제자를 보내 재촉하게 하라!” 그리고 작은 무당 하나를 다시 강물에 던졌다.
 
또 조금 있다 서문표가 말했다. “제자는 어째 이리 오래 걸리느냐? 다시 제자 하나를 더 보내 재촉하게 하라!” 그리고 또 작은 무당 하나를 강물에 던졌다. 이렇게 서문표가 입을 열 때마다 작은 무당이 하나씩 강물로 던져졌다.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그 제자들이 모두 여자라 사정을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니 번거롭겠지만 삼로가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시오.” 다시 삼로들을 모두 강물에 던졌다. 이쯤 되니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다 못해 ‘식겁’했다.
 
서문표는 지극히 경건한 표정으로 강을 향해 예의를 갖추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아전과 장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당과 삼로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아무래도 아전과 장로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소.”
 
그러자 아전과 장로들은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어 “살려주십시오!”를 외치며 엎드려 머리를 땅에 부딪치니 이마의 피가 땅위에 줄줄 흘렀다.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시 멈추고 기다려 보자.”
 
잠시 후 서문표가 말했다. “모두들 일어나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붙잡고 있는 모양이니 너희들은 모두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라.”
 
이렇게 이날의 행사가 마쳐졌다. 업현의 아전과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후로 다시는 하백에게 신부감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물론, 신부감을 바치지 않았지만 황하가 넘치는 일은 없었다. 이 소식을 듣고 딸을 데리고 도망쳤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왔다. 인구는 금새 다시 늘었고, 업현은 번영하게 되었다.
 
서문표가 보기에는, 그리고 누가 보기에도 이 인신공양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는데, 동시대인인 업현 사람들에게는 좋건 싫건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형사처벌과 적폐타파를 하나로 묶은 탁월한 개혁가 서문표의 ‘무섭고 웃기는’ 이벤트를 통해 업현 사람들은 비로소 이 ‘익숙하고 당연한 것’과 결별할 수 있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부는 환자가 의사에 대해 제기한 의료과실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7,800여만 원을 인정한 제1심을 파기하고 6,800여만 원만을 인정했다. 이렇게 손해액이 줄어든 이유는, 지금까지 법원이 환자의 신체장애에 따른 노동능력상실률을 평가하면서 60년 가까이 사용해 오던 미국식 ‘맥브라이드 기준’ 대신 대한의학회가 만든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KAMS)’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맥브라이드 기준’은 1936년 미국 오클라호마의대 맥브라이드 교수가 만든 장애판정기준으로, 1963년 6차 개정을 마지막으로 57년간 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기준은 의학기술의 발전과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하는 등 문제점을 오랫동안 지적받아 왔다. “법원이 1963년 절판된 맥브라이드식 장애판정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의학을 고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윤성 대한의학회장)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위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낡은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할 아무런 필요도, 합리적인 이유도 찾을 수 없다’면서,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은 현실적인 우리나라 직업분포에 맞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기준이므로, 이제부터라도 이를 통일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밝혔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과의 결별은 어려운 법, 상식의 보루라는 법원조차도 이제야 맥브라이드 기준과의 결별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사안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은 맥브라이드 평가기준의 불균형과 누락을 시정하면서 보다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노동능력상실률과 손해배상액 인정에 있어서도 의사들에게 불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법원의 ‘익숙하고 당연한 것과의 결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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