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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 성공은 행위별수가제 덕분···대량신속 검사 가능”
“K방역 성공은 행위별수가제 덕분···대량신속 검사 가능”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10.06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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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전체의료비의 2%에 불과하지만 병원 전체수익의 10~15%
DRG·인두제 지불방식에서는 의료행위 많을수록 손해 더 발생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이 전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우리나라의 기본 수가체계인 행위별수가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권계철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이사장<사진>은 6일 한국로슈진단이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연자로 나와 전 세계가 주목한 K방역의 성공 요인에 대해 “정부의 긴급사용승인제도 승인과 더불어 국내 회사들이 우수한 진단키트를 생산하고, 진단검사의학회 등 학회를 통해 지난 30여 년간 우수한 진단의 질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다른 국가들의 진단검사의 질도 높은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빠르고 정확한 검사가 대량으로 실시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행위별수가제로 인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은 대다수가 포괄수가제(DRG)나 인두제를 통해 의료 수가를 지불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하는 진료에 대한 수가를 의료서비스의 종류와 양에 상관없이 하나로 묶어 질병마다 미리 책정된 금액을 내는 제도이다. 

인두제는 의사 한 명에게 등록된 환자 수에 일정 금액을 곱해 이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얼마나 이용했는지, 의사가 얼마나 의료행위를 제공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한 보수가 지급되기 때문에 의사수입이 평준화되고 급여기준이 세분화되지 못해 세부 전문 분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어렵다.

두 제도 모두 진료비를 미리 정해 놓는 지불 방식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전체 의료비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문제는 필연적으로 의료의 질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진단이나 치료를 많이 할수록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실제로 두 제도나 이와 비슷한 지불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진단과 치료를 최소화하고 예방 위주의 진료를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지난 1977년 전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실시됐을 때부터 기본적인 의료수가 지불방식으로 채택돼 현재까지 이어지는 행위별수가제는 사후지불방식으로, 진료에 소요되는 약제 또는 재료비를 별도로 산정하고 의료인이 제공한 진료행위 하나하나마다 항목별로 가격을 책정해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다만, 행위별수가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도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비 절감을 목적으로 정부가 일부 포괄수가제를 도입해 확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2년 7월에 의원 및 병원급 의료기관을 시작으로 2013년 7월부터는 종합병원  및 상급종합병원까지 모든 종별의 의료기관으로 확대돼 4개 진료과 7개 질병군(안과 백내장수술, 이비인후과 편도수술 및 아데노이드 수술, 외과 항문수술·탈장수술·맹장수술, 산부인과 제왕절개분만·악성종양을 제외한 자궁 및 자궁부속기 수술)에 대해 포괄수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일산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과 지역거점공공병원 등 국·공립병원에서는 567개 질병군 입원환자에 대해 포괄수가에 행위별수가를 혼합한 형태의 ‘신포괄수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권계철 이사장은 “DRG나 인두제에서는 치료나 검사를 많이 할수록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는 진단에 대해서는 행위별수가제가 적용돼 진단을 빠르고 많이 할수록 수가가 많이 지급돼 병원 경영진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진단을 위한 시설·장비·인력 등의 인프라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다”며 “우리와 비슷한 진단검사역량을 보유한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빠르고 많은 RT-PCR 검사가 가능했던 것도 결국 이러한 수가체계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실제로 진단은 전체 의료비 중 2%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치료 의사결정 중 60~70%는 진단검사 결과에 의존하고 있고, 심지어 병원 수입의 10~15%는 진단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질병의 유무를 알려주는 것을 넘어, 선별검사, 예후 확인, 환자군 분류, 치료 모니터링까지 치료를 제외한 모든 의료 여정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단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의 모범이 된 K방역의 성공이 결국 우리나라의 행위별수가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한 의료계 인사는 “행위별수가제는 가장 보편적이고 시장접근적인 방법으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불방식이고, 특별한 의료기술이나 재료가 쓰인 의료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에도 용이하다”며 “그럼에도 정부가 의료비 절감만을 목적으로 필연적으로 의료의 질 하락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포괄수가제를 무리하게 적용, 확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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