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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구속되는 이유 / 변호사의 시각
의사가 구속되는 이유 / 변호사의 시각
  • 전성훈
  • 승인 2020.09.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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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95)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불멍’이 뭔지 아시는가? 모르신다면 너무 일만 하시는 분이 아닐까 한다. 불멍은 모닥불 같은 ‘불’을 피워놓고 이를 ‘멍’하게 쳐다보는 것이다.
 
불에는 원시성과 생명력이 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불을 들여다보면, 통제되고 반복화된 현대적 일상에 지쳐버린 두뇌를 잠시 쉬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멍은 유행하는 힐링 방법이다.
 
불멍도 어디든지 야외에 나갈 수 있는 만큼의 여유를 전제로 한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불을 피우면, 곧 경찰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정상 야외에 나가기 힘든 필자에게도 나름의 ‘멍 때리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운멍’, 즉 운전하면서 멍 때리는 것이다. 물론 가끔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멍 때리는’ 것이 좋은 힐링 방법이기는 하나, 업무적으로 집중해야 할 때 멍 때리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과실범’이다. 그리고 업무중 통상적으로 기울여야 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치상죄가 문제된다.
 
의사가 진료나 수술 중에 멍 때리는 경우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의사에게 업무상과실이 문제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집중하기는 했으나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평균적 의사가 기울이는 평균적 주의만큼 집중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렇다. 쉽게 말하면, ‘책에 쓰여 있는 대로 하지 않았을 때’이다.
 
최근 장폐색 환자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하였다가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제1심 재판부에 대하여 의료계의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이와 같이 실형을 선고하면서 의사를 구속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작년의 ‘횡경막 탈장 및 혈흉에 대한 오진으로 아동 사망 사건’, ‘사산아 유도분만을 시행하다 태반조기박리로 산모 사망 사건’에서도 똑같이 의사가 구속되었다.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벌써 세 번째 의사 구속인 것이다.
 
의사들의 분노의 이유를 굳이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의사들이 필자에게 ‘판사가 굳이 의사를 구속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이유를 법제이사가 아닌 변호사의 시각에서 다뤄보겠다. 다뤄볼 점은 2개이다. ‘왜 유죄인가?’ 그리고 ‘왜 구속했는가?’
 
먼저 왜 유죄인가? 유죄 판결의 결정적 이유는, 한 마디로 ‘의사’가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동료 의사(감정인)가 “본 환자에서 2~3시간 동안 쿨프랩 2리터를 30분 간격으로 500cc 투여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평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명확한 의견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사는 이에 따라 판결했다. 이와 반대로 ‘과실이 없다’는 감정 의견이 회신되었음에도 감정 의견을 무시하고 유죄를 선고하는 판사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왜 구속했는가? 먼저 제1심에서 실형을 선고하면 거의 예외 없이 피고인을 선고와 동시에 법정구속한다. 극히 예외적으로 구속시 공무의 공백이 우려되는 정치인이나, 또는 판사가 피해자와 합의를 더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법정구속하지 않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이는 극히 예외적이다.
 
의료계는 피고인이 두 아이의 엄마인 대학교수임에도 구속의 이유에 ‘도주의 우려’가 있음을 들어 매우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통상적으로 기재되는 표현일 뿐, 판사도 실제로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참작사유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 입장에서는 앞서 본 것과 같은 이유로 의료과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악결과가 크므로 벌금형은 선고할 수 없어 양형기준에 따라 징역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정할 것은 집행유예를 선고하느냐 마느냐만 남게 된다. 이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검토할 때 참작되었을 사유들을 검토해 보자.
 
먼저 집행유예의 부정적 참작사유로, ① 이 사건은 ‘사망이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 ② 피고인은 의료과실이 없다고(즉 무죄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진지한 반성 없음’에 해당한다(-). ③ 유족과 합의가 되지 않았고 공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 회복 노력 없음’에 해당한다(-).  그리고 긍정적 참작사유로, ①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 ②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은 여기에 해당). 즉 부정적 참작사유가 더 크다.
 
만약 피고인이 재판 중에 불리한 감정 결과가 회신된 것을 확인한 후에라도 의료과실을 인정하고 합의하였다면, 부정적 사유 2개(②, ③)가 줄고 이는 그대로 반전되어 긍정적 사유에 ③, ④로 추가되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 아마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피고인이 적어도 유족의 요구금액을 공탁이라도 해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이 경우 집행유예가 가능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 이 부분은 실제 협의과정을 알지 못하는 필자로서는 뭐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다.
 
의료계의 분노와 반발을 필자는 깊이 공감한다. 열아홉 살, 예과 1학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Do no harm’을 어떤 의사가 어떤 때라도 잊었겠는가. ‘의사는 신이 아니고, 진료 결정 당시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선의로 한 진료행위에 대하여 사후적 판단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료계의 반박도 이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행법 하에서는 의사의 업무상과실을 다른 직역, 예를 들어 항공기 기장이나 성수대교 건설자의 업무상과실과 달리 볼 근거가 없다. 따라서 판사가 아무리 의료계의 주장에 수긍이 가더라도, 그에 따라 무죄를 판결할 ‘법’이 없다. 게다가 최근 사회의 화두는, 그 과도함이 걱정될 정도로, ‘공정’이 아닌가.
 
수험생활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포기’와 ‘합격’이 있지만, 어떤 의사도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서와 그에 영향받는 법원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선의의 진료를 제공했음에도 의사가 구속되는 참담한 상황을 바꾸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가칭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제정이다. 오늘의 분노를 잊지 않고,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의료계가 입법을 이뤄내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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