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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시험도 안 끝났는데 승인···각국 백신 개발 속도전 ‘과열’
임상 시험도 안 끝났는데 승인···각국 백신 개발 속도전 ‘과열’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0.09.02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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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목적 때문···전문가들 “위험천만한 일”
WHO도 ‘신중’ 당부, 안전성·유효성 확보 안 되면 더 큰 부작용 우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세계 각국의 백신 개발 경쟁이 과열돼 속도전으로 치달으면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자칫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위한 임상 시험 절차마저 제대로 거치지 않은 백신이 시판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서 러시아는 이미 임상 3상 시험조차 마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하면서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백신을 개발했다고 홍보했다. 최근에는 미국까지 가세해 임상 3상을 거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도 허가할 수도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신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스티븐 한 국장이 “3상 임상 시험이 끝나기 전에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의악품의 공식적인 임상 시험 절차를 단순화시켜 신속히 승인하도록 하는 이른바 ‘패스트트랙(긴급승인사용제도)’을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빠르게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12일경(현지시각)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임상 3상 시험을 거치지 않고 백신을 승인했다고 밝혔던 때만 해도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전문가들은 이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적잖은 우려를 나타냈다.

비록 “위험성보다 편익이 더 클 때 승인하겠다”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이 날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의약품 개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미국 FDA의 수장이 통상적인 검증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9월 1일 기준 전 세계에서 약 170개의 백신 후보물질이 개발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극히 일부가 3상 임상 시험을 이미 진행 중이거나 진행을 위한 막바지 단계에 있고 이 임상 시험 결과에 따라 백신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백신을 포함한 신약이 개발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신약 연구 개발 단계별 성공 확률은 전임상 69%, 임상 1상 54%, 임상 2상 34%, 임상 3상 7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3상 임상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안전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도 없다. 우선 신약 허가 신청(NDA, New Drug Application)에서 실패할 확률만 9%나 되고 임상 3상을 통과하고도 시판 후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해 시장에서 퇴출된 의약품도 적지 않다.

통상 의약품 3상 시험의 참가 인원은 만 단위를 넘지 못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코로나19의 경우 전 국민에 해당하는 천만 단위의 인구가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임상 시험 3상을 통과한 백신이 나온다 하더라도 전 국민에게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 세계 의약품 선진국들이 제대로 된 임상 시험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백신을 승인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데 대해선 각국 정부가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김우주 고려대학교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일 의사신문과 통화에서 “지난 5월 중국이 백신 상용화 계획을 밝힌 이후 각국에서  연이어 비슷한 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의학적 근거를 담은 연구 결과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단지 발표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는 각국의 지도자들이 뚜렷한 의학적 근거가 없이 단지 정치적 목적에서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장 최근 미국 FDA조차 임상 3상을 거치지 않고 백신을 시판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곧 다가올 대선을 의식해 백신 개발에 빠른 속도를 낼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미국 내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날이 갈수록 사망자가 속출하고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지지 기반이 무너져 차기 대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정치적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건 당국을 향해 하루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장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FDA가 공화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논문도 아닌 메이요 클리닉의 연구 결과라는 것을 내세우고 뚜렷한 임상적 근거가 없고, 굳이 승인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회복기 혈장치료를 긴급 승인한 어이없는 행태를 보인 것도 이같은 선상에서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WHO(세계보건기구) 수석 과학자인 숨야 스와미나탄도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각국의 보건당국은 임상 시험을 완료하지 않은 약품을 승인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이는 결코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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