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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조사 결과 통보없이 2차 조사 후 업무정지해도 문제 없을까?
행정조사 결과 통보없이 2차 조사 후 업무정지해도 문제 없을까?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8.2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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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1차 결과 통보없이 재조사는 "중복조사"···"복지부 등 처분 취소”
원고측 변호사 “행정조사기본법 근거로 절차적 하자 인정, 고무적 판결”

행정조사결과를 통보하지 않은 채 중복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병원에 내린 업무정지 처분 등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제6부)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상 의료조합으로 설립된 A병원에 내려진 두 차례의 업무정지 처분과 18여억원의 환수처분을 모두 취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2015년 8월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병원에 대해 △의료서비스의 질 △의료기관 운영의 적정성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에 관한 비용 청구의 적정성 등 제반 법규 준수 여부에 대해 현지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A병원의 간호등급 위반이 확인됐다. 간호 업무만 전담해야 하는 간호부장이 병원의 행정업무도 관여했다는 것이었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조사 확정날로부터 1주일 이내에 병원에 통보해야 하지만, 복지부는 병원에 결과 통보 없이 2016년 9월 2차 현지조사를 진행했다. 이때 두 번째 현지조사에 나간 조사자들은 복지부 보험평가과와 심평원 소속으로 1차 조사 떄와는 차이가 있었다.

두 차례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A병원은 2019년 △복지부로부터 114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과 110일의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처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5억 원 가량의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전주시 덕진구청장으로부터 3억2000만 원 가량의 의료급여비용 환수처분을 연달아 받았다.

A병원은 “2차 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상 금지되는 중복 행정조사”라며 “이 사건 각 처분은 위법하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A병원은 “1차 조사 당시 주의를 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2차 조사를 실시해 부당금액의 액수가 늘어난 점을 비추어보면 이 사건 각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2차 조사는 이 사건 기관을 중복조사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고 행정조사기본법에서 규정한 수시조사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며 “실제로 조사를 수행한 사람의 소속 기관이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각 조사의 주체가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1·2차 행정조사의 실제 조사자가 복지부 안에서도 소속 과가 다르고 공단-심평원 소속으로 차이가 있지만 “조사 명령서는 모두 복지부 장관이 작성한 것으로서, 이 사건 각 조사의 주체가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행정조사기본법 15조 1항에 따르면 현지 조사 이후 새로운 증거를 확보한 경우에만 동일한 사안에 대해 재조사가 가능하다.

재판부는 “1차 조사 이후에 위법행위가 의심되는 정황을 넘어 새로운 증거가 확보됐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며 “이 사건 각 처분은 중복조사에 근거한 것으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밝혔다.

현두륜 변호사.(사진=법원출입기자단)
현두륜 변호사.(사진=법원출입기자단)

이 사건 변호를 맡은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이번 사건은 행정조사기본법 중에서도 ‘중복조사 금지원칙’ 위반을 이유로 절차적 하자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그간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의 현지조사지침 위반을 이유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사례는 간혹 있었지만, 행정조사기본법 위반을 이유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사례는 드물었다”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의료기관과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조사기본법의 목적을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한 결과”라며 “이처럼 절차적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추세는 의료계 입장에서는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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