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靑蘿)언덕에서
청라(靑蘿)언덕에서
  • 의사신문
  • 승인 2020.08.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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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코로나와의 동거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반 년을 넘어섰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번 대구경북에 이은 제2의 ‘팬데믹’이 닥칠 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혹시라도 또다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우리는 대구에서 그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작게나마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이 가급적 사용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에 대한 대비조차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현 시점에서 치열했던 당시 현장을 곱씹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어느덧 넉 달이 지난 그 날의 기억을 말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 前기획이사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김제형
김제형 대한중환자의학회 前기획이사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아침 일찍 동대구행 열차를 탔다. 나흘 전 저녁 학회 코로나19 대책 긴급모임에서 글로벌케어의 제안을 처음 논의하고 난 후, ‘대한중환자의학회-대구동산병원 코로나19 중환자 진료협력’의 진행은 전격적이었다. 학회원 공지, 관계기관 협조요청, 각 병원 공문발송, 1차 자원 의료진 구성에 주말에도 불구하고, 채 사흘이 걸리지 않았다. 사태의 변방에서 바라보기만 하다가는, ‘이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나?’라는 질문에 고개를 들 수 없으리라는 공감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낯설도록 한산한 서울역에서, 거의 빈 열차를 타고, 더 한산한 동대구역에 내렸다. 도착한 대구동산병원의 모습은 큰 가방을 끌고 이곳을 목적지로 하는 외지인을 이상하게 대했던, 택시기사의 의아함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출입구마다 둘러져 있는 붉은 접근금지 띠, 그 안쪽에서 흰 방호복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 곳곳에 서있는 경찰관. 허용된 출입구를 찾아 돌기가 어려워, 경찰관의 허락을 받고 금지된 선을 넘어, 일상이 무너진 도시 한 가운데 ‘위험지역’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다른 이름은 ‘청라(靑蘿)언덕’이다.
속속 도착한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과의 첫 회의, 방호복 착용, 코호트로 격리된 병원 건물로의 진입, 중환자실 상황과 환자 파악, 모든 과정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을 넘어서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내 급히 늘 것만 같은 중환자 진료를 위해서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러나, 현지 의료진들과 많은 자원자들이 이미 온몸으로 겪으면서 지나온 상황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미안했다. 너무 늦어서.
감염으로 인한 최악의 경우를 알면서, 기꺼이 마음을 내어 수고하기를 마다 않고 모인 이들의 힘은 놀라웠다. 잠깐의 어수선함은 이내 공동의 목적을 위한 일사불란함이 되었다. 현지 의료진은 중환자 진료의 중심에 섰고, 협력을 위해 모인 의료진은 서로를 배려하며 지지하고, 생각과 힘을 보탰다. 중환자실 근무를 위한 당직표를 짰고, 여러 곳에서 모인 의료진의 효율적인 진료를 위해 매뉴얼을 마련했다. 병원은 폐쇄되었던 중환자실을 재정비했고, 글로벌케어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필요한 장비를 도입했다. 어느 병원은 전국에 단 세대뿐인 인공호흡기 재고를 모두 사서 보내주었고, 어느 의료기 회사는 장비를 그냥 빌려주었으며,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장비는 알음알음 빌려왔다. 어느 의사는 자기 병원에 있는 보호구를 보냈고, 어느 대학은 동문들의 기금을 모아 의료진의 밥값을 댔다. 그렇게 해서, 병상이 세 배로 늘어난 중환자실에서 현지 의료진과 자원한 의료진은 모두 함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일주일 간 겪고, 느끼고, 나눈 생각들로,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될 이 사태를 위해 “코로나19 사망률 감소를 위한 중환자 진료 전략”을 만들었다. 결코 사용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으나,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아서도 안 될 일이었다. 당시 보고서엔 이렇게 썼다. “본 진료협력은 신종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급증하는 중환자 진료를 위한 제반 여건이 열악한 상황을, 현지 거점 병원, 학술단체 소속 전문의료진, 국립의료기관, 민간의료기관, 보건의료 NGO 및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협력 체계를 구축해 타개해 나가고 있는 전례가 없었던 사례이다.”
어느 기자가 내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우리 모두는 이 봄, 청라언덕에서, 잊지 못할, 소중하고, 벅찬 시간을 보냈다.

본 글은 보건의료 NGO 글로벌케어 소식지 71호 원고의 재게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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