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만 쥐어주면 어쩌라고···재점화된 의사 '자율징계권’ 강화 논의
솜방망이만 쥐어주면 어쩌라고···재점화된 의사 '자율징계권’ 강화 논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0.04.13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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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인턴 A씨 사건···솜방망이 처벌이 국민적 공분에 불붙여
자율 징계권한 없는 전평제 한계, 별도 면허관리체계 갖춰나가야

'n번방 사건'으로 성범죄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산부인과 인턴이 여성 환자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동료들을 성희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인 인턴 A씨의 행동 자체도 심각한 문제일 뿐더러, 병원측이 이를 인지하고도 A씨가 3개월 정직 처분 후 다시 병원에 돌아와 환자를 돌보게 됐다는 점 때문에 더욱 공분을 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현행 의사 면허관리 제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의료법, 의료인 품위손상시 1년 이내 자격정지

현행 의료법 제66조 1항에 따르면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1년 이내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명확한 징계 규정은 없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 실형이 선고된다 하더라도 의사로서 받는 징계는 면허자격 정지에 국한된다. 면허정지가 풀린 이후엔 다시 의료기관을 개원하거나 취업해 의사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범죄나 의료사고, 대리수술 등을 저지른 의사 수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의사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사회적으로 이번 인턴 A씨 사례와 같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솜방망이·제식구 감싸기식 처벌' 내지 '의사면허는 철밥통'이라는 사회적 비난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같은 사회적 비난에 대해 의료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의사면허 관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사건이 터지더라도 의료기관은 물론, 의협 같은 의료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솜방망이만 쥐어줬기 때문에 휘두를 수 있는 수단이 솜방망이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해영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정부는 의료계에 권한은 주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한 법적 처벌을 늘려야 한다는 말뿐”이라며 “정부가 의사면허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런 사건만 나오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과 함께 법적 처벌만 강화해야 한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도 "강력히 처벌해야"···전평제 정착 위해 자율규제 권한 강화해야

의료계도 의료인의 명백한 비위행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동호 의협 전문가평가제 추진단장(광주광역시의사회 회장)은 “A인턴 사건은 ‘환자 진료’를 우선으로 하는 의사의 사명감을 저버린 행위로 의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며 “99%의 의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의료계가 자율규제 권한을 강화해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선 선제적으로 면허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강력한 처벌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회원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가 징계를 내릴 수 있지만 징계 수위가 최대 1년간 면허 정지에 불과하다. 비위 행위로 면허정지나 행정처분을 받은 의료인이 징계가 끝난 뒤 개원하거나 봉직의로 취업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는 셈이다. 

의료계가 자율규제의 일환으로 지난 2016년부터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자율징계가 빠져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의협은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의료계의 '자율규제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해영 의협 법제이사는 “의료계가 전평제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권한은 전혀 주지 않은 채 사회적 이슈가 나올 때만 면피성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며 “문제를 일으킨 의사가 진료를 계속 할 수 있는지, 실제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같은 전문가인 의사가 가장 잘 아는 만큼 면허관리 권한을 의료계에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료계에 권한 안주려 해"···처벌 강화 넘어서는 대안 나와야

현재 전문 직역 단체 가운데 ‘면허관리’와 ‘자율징계권’을 가진 곳은 대한변호사협회 정도에 불과하다. 의료계의 바람대로 의사들도 변협처럼 의사면허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현실적인 장벽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의사에게 의사 징계를 맡겨둘 경우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겠냐는 사회적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당장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복지부 공무원들부터 부정적인 입장이다. 

양동호 의협 전문가평가제 추진단장(광주광역시의사회 회장)은 “정부가 '의료계의 권한이 많아지면 정부에 대응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권한을 주지 않으려 하다보니 면허관리와 자율징계권 부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전문가인 복지부 공무원이 전문 의료영역에 대한 징계권을 갖고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조사가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양 단장은 “복지부는 전문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력도 자주 변경되는 구조여서 의사면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사례를 통해 국회와 의료법 개정을 논의해 의협과 중앙윤리위원회 권한 강화와 함께 의료인의 비도적적 행위나 품위 손상, 성폭행 등에 대해 면허관리기구에서 관리하는 체계를 갖춰나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의료인에 대한 징계가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말한다. 전문가의 특성에 맞는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윤리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명이비인후과 원장)은 "단순히 징계를 면허정지나 취소 등으로 구분해서는 안된다"면서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징계의 목적인만큼, 문제를 일으킨 의료인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또 진료행위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A인턴 사건의 경우 산부인과나 소아과에는 지원하지 못하게 하고 기초의학·연구직만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이 소장은 제안했다. 더불어 회원들의 수상 이력이나 처벌 이력 등에 대한 관리를 통해 진료가 적합한 사람인지를 구분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에 '면허관리기구' 설립 등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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