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의사, 그리고 일본인 법조인
코로나, 의사, 그리고 일본인 법조인
  • 전성훈
  • 승인 2020.03.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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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71)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최근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일명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전염률은 높으나 치명률은 낮은 것, 그리고 특정 집단에서 대규모 발병하여 추적.관리가 가능한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걱정스러운 점이다. 그래도 세계 최고의 방역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아닌가. 의료계와 정부가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관련 뉴스 속에 묻혀 지나간 듯하지만, 지난 일요일은 묻혀 지나가서는 안 되는 중요한 날이었다. 바로 3.1절이다.
건달 두세 명에 맞서서 싸우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평범한 시민들, 여성들, 학생들이 실탄이 든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 앞에 맨 몸으로 나서서 ‘일본군과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까. 3.1운동을 통해 표출된 우리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그 정도로 강렬했다.

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간 전국에서 200만 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만세운동에 나섰고, 무려 7,500명이 사망하고, 47,000명이 투옥되었다. 조선의 총인구가 현재의 1/3도 안 되는 1600여만 명이던 시절이다. 현재로 보면 2만 명이 넘게 사망한 것이다.
일제는 말 그대로 무자비한 탄압을 했는데, 부대장이 ‘만세운동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사과하겠다’라고 속여서 마을의 성인 남자들을 모두 교회당에 모이게 한 뒤, 11명의 군인이 교회당에 불을 지르고 총을 난사하여 모조리 학살한 ‘제암리 사건’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보복성 학살이 잇달았고, 그로 인해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잊지 말아야 할 3.1절을 맞아,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지지한 2명의 법조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일본인이다.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이후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림으로써 ‘자발적으로’ 체포되었다. 우리는 당당하니 도망갈 일이 없다는 이유였다. 일본 검찰은 민족대표들을 만세운동을 개최한 점에 대해 ‘내란교사죄’와 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한 점에 대해 ‘출판법위반죄’로 기소했다.

그런데 일본 법원은 관할권(피고인이 어느 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하는가) 법리에 혼선을 일으켜, 33인의 민족대표들을 경성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고등법원(현 서울고등법원)을 몇 차례나 오가게 했다. 그러다가 결국 고등법원은 내란선동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3.1운동 사건을 경성지방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민족대표들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는 허현 변호사였다. 그는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함흥에 세 달 동안 머물면서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기록을 몇 번이고 독파했다.

허 변호사는 고등법원 결정서의 ‘경성지방법원을 본건의 관할 재판소로 ‘지정’한다’라는 주문(主文)에 법리적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경성지방법원에서 계속된 재판에서 그는 ‘‘송치’가 아닌 ‘지정’으로는 사건의 이송 처리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공소각하판결(검사의 기소가 적법하지 못하므로 공소를 각하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인 검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호인의 주장에 당황했고, 일본인 나카지마 유조 판사는 변호인의 변론을 받아들여 공소각하판결을 내리고 민족대표 33인을 전원 석방했다.
1909년 세 발의 총알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변호인 역시 잊을 수 없다. 경술국치 이전이었으므로 안중근은 조선인이었고, 따라서 재판권이 문제되었다. 일본 정부는 자의적인 논리를 밀어붙여 안중근을 일본 법원에서 재판받게 했다.

안중근을 변호한 일본인 미즈노 기치타로 변호사는, 재판부가 지정한 국선변호인이었음에도 ‘첫째 조선인 안중근이 청나라 영토인 하얼빈에서 범행했으므로 일본 법원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으며, 둘째 안중근의 암살은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구국의 결단이므로 정당행위이다’라는 이유를 들어 안중근에게 3년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강력변론했다. 물론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아 재판했던 일본인 판사는 이러한 변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미즈노 변호사는 1948년 기고한 글에서 ‘사형 집행일에 안중근이 순백의 조선옷을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사형집행관들조차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라고 말하면서,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라고 회고했다.
3.1운동 사건에 대한 나카지마 판사의 판결은, 첫째 3.1운동 사건이 식민지의 독립운동에 관한 엄청난 ‘시국 사건’이었음에도 외부로부터 독립하여 판결했다는 점에서, 둘째 변호인의 변론 내용이 법리적으로 타당한 경우 판결의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고 이를 지지함으로써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는 점에서 존경할 만한 판결이었다.

또한 안중근 의거에 대한 미즈노 변호사의 변론 역시, 살인행위임은 다툼이 없지만 그 성격이 쟁점이 된 사건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구국의 결단으로 정당행위이다’라고 당당하게 변론했다는 점에서 역시 존경할 만한 변론이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 두 일본인 법조인의 행위는 선입견에 매이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판단하여야 한다는 전문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전문가들은 수많은 관계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에, 가치중립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미국의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1932년에 출간한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 A Study in Ethics and Politics’에서 일찍이 갈파한 바와 같이, 도덕적 개인조차도 ‘그가 속한 집단에서의 자신의 평판’과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 쉽사리 도덕성을 버릴 수 있다. 이 ‘도덕성’을 전문가에게 대입한다면 ‘가치중립성’이란 말로 변환될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더 좁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기에 가치중립성의 유지가 더 어려울 수 있다.

국익에 반한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전문가로서 가치중립적인 판단을 내렸던 100년 전의 일본인 법조인들을 돌이켜 보면서, 이른바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의 의사들과 의사 단체들의 소중한 역할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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