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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급사할 수 있는데···“유전성 부정맥에 산정특례·장애등급 인정해야”
자칫 급사할 수 있는데···“유전성 부정맥에 산정특례·장애등급 인정해야”
  • 권민지 기자
  • 승인 2020.02.11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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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국회서 유전성부정맥 토론회서 제도개선 방안 논의
국내 돌연사 비율 15%로 일본(10%), 서양(1~2%)보다 높아
“유전자 검사 급여 기준 확대, 산정 특례·장애등급 인정 시급”

유전성 부정맥 질환을 앓고 있던 A(43)씨는 2년 전 회사에서 부정맥으로 쓰러졌다. 이후 아직까지 회사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병원비와 생활비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나와 자신의 사례를 소개하며 “병원비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A씨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11일 오전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청년 돌연사 해법은? 급사로 이어지는 유전성 부정맥” 토론회에서는 A씨처럼 유전성 부정맥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사례 소개와 함께 유전성 부정맥을 휘귀질환으로 등록하고 산정특례 항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등 환자들을 도울 제도적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오용석 대한부정맥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해 최종일 대한부정맥학회 총무이사(고려대안암병원), 김영훈 고려대학교 의료원장, 오동진 강동성심병원 교수, 배은정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선식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사무관, 안윤진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과장, 권선미 중앙일보 기자 등 의료계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먼저 오제세 의원은 환영사에서 “유전성 부정맥 질환은 급사라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희귀질환 및 산정특례 지정으로 등록돼 있지 않은 실정”이라며 “급사 예방을 위해 유전자 검사 급여기준 확대와 산정특례 지정이 시급하며 이에 따른 재정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용석 이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전성 부정맥에 의한 돌연사 비율은 14~15%로 일본(10%), 서양(1~2%)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심장마비가 발생한 후 소생한 환자들에 대한 지원 정책은 미비하다”고 말했다.

제세동기를 삽입한 환자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고용을 꺼리기 때문에 소생한 이후에도 환자 상당수가 생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실정을 지적한 것이다. 또 제세동기 삽입은 심장장애 등급 산정에서 '장애'로 인정받을 수도 없어 장애와 관련된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오동진 교수는 “급성심장정지를 겪은 후 생존할 확률이 2006년 2.3%에서 2018년 10%로 증가했지만 뇌 손상을 일으키며 생존할 확률은 5%로 여전하다”며 “수많은 연구결과에서 ‘사후약방문’보다 심정지 ‘예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외국에서는 유전적 배경을 가진 질환들을 예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기관이 비용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아직 예방에 집중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종일 교수 역시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유전성 부정맥 질환을 앓고 있던 57세 여성이 수영장에서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으나 즉각적인 심폐소생술과 병원 이송 후 약물치료를 통해 상태가 안정됐다. 이 일을 계기로 환자의 가족 대부분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상을 확인했지만, 유독 유전자 검사를 거부했던 환자의 언니는 얼마 뒤 등산을 하다가 심장에 무리가 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처럼 가족력이 있는 경우 예방적 차원에서 치료를 진행해 선제적으로 제세동기를 삽입하거나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예방적 차원에서 삽입술을 진행하는 경우 등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2013년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과 우리나라의 제세동기 삽입술 건수를 비교했을 때 인구는 3배 차이지만 제세동기 삽입 건수는 10배 차이다.

최 교수는 “환자 분들이 ‘내가 지금 이상이 없는데 왜 수술을 받냐’라고 하거나 ‘병이 아닌데 왜 검사를 하라고 하냐’고 되묻는 반응이 많다”며 “제도권 내에서 (급여 등) 지원 혜택을 제공한다면 환자분들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수술이나 검사를 진행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선식 사무관은 ‘유전병이나 유전질환에 대해 사회적 요구가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급여기준이나 유전성 보장 등에 대해서는 많이 개선이 되고 있는데 가족들의 유전자 검사를 급여화하는 부분은 의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다면 검토해볼 수 있겠으나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필요는 있다”고 답했다.

최 교수는 이날 참석한 질병관리본부 안윤진 과장에게 직접적으로 질의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산정특례 지정을 위해서는 그 질환을 특정할 수 있는 질병코드가 필요하고 이 코드와 관련해 올해 7월 통계청에서 KCD 발표를 한다”며 “복잡한 절차를 수행하기 위해 복지부와 조율해서 추진해야하는데 방안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안 과장은 “기본적으로 질본은 요청이 들어오는 모든 희귀질환에 대해서 검토한다”며 “지원이 필요하고 어려운 상황인 것은 알겠지만 이것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기준이 제시될 수 있어야 희귀질환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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