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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3가지 유형
변호사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3가지 유형
  • 전성훈
  • 승인 2019.11.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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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59)
전 성 훈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권력도, 어떤 이념도 자본을 이기지 못하는 시대, 자본이 힘이요 사랑이요 생명인 시대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지상과제는 자본을 축적하는 것, 그것도 많이, 빨리 축적하는 것이다. 더 이상 자본을 축적할 필요가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 축적을 위해서 물건이건 노동력이건 뭔가를 ‘팔아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다. 물건도 상품이요, 서비스도 상품이요, 지식도 상품이다. 특히 서비스를 위해 지식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흔히 ‘전문가’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식은 빵이 아니다. 상품이 보이지 않으므로 직접 비교가 어려운 데다가, 같은 비용을 치르고 같은 상품을 구매했다고 해도 같은 만족을 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수준 이하의 상품을 판다 해도 구매자들이 잘 구분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국가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에게만 해당 분야의 지식 상품을 팔 자격을 주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른바 자격증이다.

이런 자격증을 가지는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와 법률이다. 의료와 법률 분야는 무형물을 팔기 때문에 그 상품의 선택이 어렵다. 그래도 의료라는 상품은 비교적 자주, 평균하여 한해에 몇 번 이상은 이용하지만, 법률이라는 상품은 평생에 몇 번 이용하게 된다. 그래서 그 서비스의 선택이 더욱 어렵다.

여기 A라는 의사가 있다. 만약 A가 검사나 판사를 만난다고 하면, 그 검사나 판사는 A를 ‘대상’으로 대할 것이다. A는 해부(재판)를 위해 베드(사법절차) 위에 올라간 cadaver이다. 검사는 A를 ‘조사할 대상’으로밖에, 판사는 A를 ‘판결할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검사나 판사를 욕하기도 어렵다. 검사나 판사가 매달 100~200건의 신건을 배당받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에게 가장 불만스러운 부분은, A가 자신이 만날 검사나 판사를 전혀 선택할 수 없다는 점, 즉 비용(세금)을 치르면서도 상품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지만 A는 적어도 변호사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지인들의 추천을 받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하기도 하고, 의사단체에 문의하기도 하여 여러 변호사를 접촉해 보고, 그 중에서 나의 기준으로 가장 ‘총점’이 높은 변호사를 선택한다.
총점을 매기는 세부 요소로는, 내가 문제된 분야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전문성), 소속된 법무법인/법률사무소의 업무 처리 프로세스가 빈틈없는가(신뢰성), 나의 사건을 성실하게 처리해 줄 것인가(성실성), 그리고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내가 지출하기로 마음먹은 비용 범위 안에 있는가(비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문성, 신뢰성, 비용 등은 변호사를 첫 방문하여 첫 상담할 때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성은, 지인의 추천을 받았을 때에는 상당히 검증이 가능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하였을 때는 전혀 검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혼, 성범죄, 음주운전 등과 같은 인생 위기 상황에서 남에게 알리기가 뭣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면 이른바 ‘복불복 쇼’가 벌어진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각설하고, 기본적으로 변호사도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진열대에 놓여 있는 상품(변호사)의 시각에서 보면, 변호사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유형은 크게 3가지밖에 없다.

첫째 쾌남형이다. 왠만하면 법적 조력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모든 일은 법을 통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법적 조력을 받기 시작하면, 변호사에게 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예전에 모 재벌 회장은 여러 개의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는 알짜배기 계열사의 주식 101만 주를 주당 1원에 인수했다. 당연히 제1심, 제2심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그리고 사건이 대법원으로 올라가자, 몸이 달은 회사 법무팀은 불과 몇 달 전에 옷을 벗은(즉 재판할 대법관들과 면식이 있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그럼에도, 당연히,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선고됐다. 그리고 선고 결과를 들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뭐 저딴 변호사를 썼냐!”

둘째 평균형이다. 자신의 사건에 적절한 관심이 있고, 변호사에 대한 적절한 신뢰가 있다. 변호사가 증거의 제공을 요청하면 적절히 준비해 주고, 서면의 검토를 요청하면 적절히 검토해 준다. 변호사라는 상품을 가장 잘 소비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소심형이다. 여러 변호사들을 계속 만나보면서도 누구를 선임할지 결정을 못하다가, 일단 결정하면 과도한 관심, 과도한 신뢰, 과도한 준비, 과도한 검토를 주는 유형이다. 이 중 과도한 준비, 과도한 검토는 변호사가 거를 수 있으므로 크게 해가 될 것이 없지만, 과도한 관심이나 과도한 신뢰는 문제가 된다.
먼저 (사건을 변호사에게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대리인(변호사)을 선임한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과도한 신뢰를 주게 되면, 스스로 결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갖게 되어 궁극적으로 사건의 진행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소심형은 불안감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아, 사소한 부분까지 변호사에게 질문 공세를 펼침으로써 변호사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 의사들은 어떤 유형인가? 경험적으로 보면, 의사는 대부분 평균형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객관성을 중시하는 과학자이기에 그런 것 같다. 사업가 유형의 의사들 중에는 간간히 쾌남형도 있다. 진료에 바빠서인지, 소심형은 드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드물게 있는 소심형 중에는, 가공할 만한 꼼꼼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다. 역시 공부 잘 했던 분들이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변호사라는 상품의 현명한 소비는 중요하다. 대부분은 인생의 위기 상황에서만 소비하게 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치료에도 타이밍이 있듯이 법적 조력에도 타이밍이 있음을 잊지 말고, 변호사의 조력 초기에 당신이 어느 유형인지 잘 생각해 보아,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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