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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에서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와 줄탁동기
(데미안)에서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와 줄탁동기
  • 정준기
  • 승인 2019.08.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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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14)
정준기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정준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우리가 대학교 신입생이던 1970년대 초반에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본격적인 남녀 교제가 시작되었다. 보통은 남녀가 단체로 짝을 맞추어 다방에서 만나는 형식이었다. 이런 탐색전에서 대화의 내용으로는 예술, 특히 문학이 가장 무난했다. 그 당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주인공이 참다운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을 적은 성장 소설로 유명했다. 1919년에 출간된 이 책은 놀랍게도 한세기가 지난 지금도 청소년들이 즐겨 읽는 스테디셀러이다.

자연히 미팅 때 <데미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소설 속 유명한 문장은 자주 인용되었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의 생활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암시이다.” 또, 헤세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느끼는 성장통을 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의 충격과 아픔으로 표현하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애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그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비슷한 현상을 표현한 한자 성어로 줄탁동기(또는 줄탁동시)가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같이 껍질을 쪼아 깨는 것을 뜻한다. ‘줄’은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가리킨다. ‘탁’은 어미 닭이 품고 있는 알에서 이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껍질을 쪼는 것을 나타낸다.

원래 ‘줄탁동기’는 불교의 깨우침과 관련된 한자성어로, 중국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화두(話頭)를 모은 <벽암록(碧巖錄)>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화두는 수도승에게 깨우침을 유도하기 위한 물음의 요체이다.) 어떻게 보면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이고, 어미 닭은 깨우침의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는 처음에 작은 도움만 줄 뿐이고, 결국 병아리 자신이 알을 깨고 나온다. 이는 스승은 깨우침의 계기만 제시할 뿐이고, 나머지는 제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에 이르러야 함을 의미한다.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이다. 새로운 시작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미 닭과 마찬가지로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곤경에 빠져 꼭 필요한 때에만 나타나 도와주고, 싱클레어는 자신의 힘으로 내면과 마주한다. 그는 십대 초에 가족이 살고 있는 ‘선(善)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악을 경험하게 된다. 어두운 ‘악(惡)의 세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서 자기 갈등의 해결점을 마련해 간다. 마침내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여 선과 악이 통합된 그 만의 새로운 길을 걷는다.

이 소설에서와 같이 한 진솔한 생명의 탄생에는 사랑과 끈기로 지도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어미닭은 한 번에 15개 정도의 알을 품에 안고는 21일 동안을 꼼짝 않고 견디어 지내면서 부화시킨다. 모든 알에 골고루 열이 전해지도록 쉴 새 없이 다리로 계란을 굴려 위치를 바꾸고(이를 전란(轉卵)이라 함), 달걀을 살펴 껍질을 같이 쪼아 준다. 즉, 건강한 새끼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의학 교육도 마찬가지다. 특히 어느 분야보다 사안별로 개별적인 지식 전달과 실기 습득이 필요하다. 의술은 아직도 불명확한 것이 적지 않아 과학과는 다소 다른 art이고, 의학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과학, 예술 등을 포함한 전인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도제 과정에서 데미안, 어미닭, 큰스님 같은 지도자는 정신적 태도도 자연스럽게 교육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병아리 생육 과정이 대량화되어 기계적이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미닭의 따뜻한 털 속이 아닌 온도와 습도를 맞춘 거대한 부화기에 수백 개 달걀을 넣고 21일을 배양하면 유정란에서 새끼 병아리가 태어난다. 모든 알에 열기를 고르게 전달하기 위해 전란기가 돌아가나, 물론 병아리에 맞추어 껍질을 쪼아 주는 어미 닭은 없다.

이 현상을 지금 수련을 받고 있는 젊은 의사들의 상황과 비교해 본다. 환자 진료에 의한 현장 교육이 강의실 교육 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정신적인 교육도 가능하다. 문제점은 교수나 선배의사들이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진료 시간을 연장하고, 대학에서 연구를 강조하고 있어 교육에는 점차 신경을 못쓰고 있다. 최근에는 수련의도 법정 근무 시간만 근무해서, 종래 일과 후에 진행되던 교수와 선배들의 피드백과 가르침을 받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의사의 배움 길을 다른 직종과 동일시 해서 생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인술을 배우지 못하면, 부화기에서 양육된 병아리 같아서 건실한 의사가 되는 자아실현이 어려울 것이다.

정리하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탄생을 의미한다. 소설 <데미안>에서 헤세는 피상적인 삶을 자기 성찰로 깨어부시고 진정한 내면의 길을 찾아 걸어가라고 말한다. ‘줄탁동기’가 부화의 한 현상이지만, 선 불교의 중요한 화두인 것도 같은 이치 때문이리라. <데미안>이 100년에 걸쳐 널리 읽히는 것에서 보듯이 이것은 우리가 공감하고 있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이제 독자 여러분은 내 글의 의도를 알았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병아리가 알에서 태어나는 과정과 어미 닭의 노고에서도 교훈을 얻어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하물며, 고귀한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탄생을 위해서면, 더욱 더 스승과 제자가 사랑과 끈기로 노력하고 ‘줄탁동기’하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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