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전염병 예방인데"···'밥그릇' 싸움 오인(誤認)된 보건소장 자리
"중요한 건 전염병 예방인데"···'밥그릇' 싸움 오인(誤認)된 보건소장 자리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08.12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사 우선임용토록 한 보건법시행령 개정 요구 거세···인권위 가세에 법제처 개정 착수
행시 출신 감염센터장이 사태 키운 3년전 콜레라 사태···전문가 진가는 비극 때 드러나

전문가(專門家)의 진가(眞價)는 비극적인 사태가 발발한 이후에야 드러난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기엔 이런 전문가의 가치는 묻히고, '그런 일은 누가 하나 마찬가지 아니야'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이 사람들의 인식을 채운다.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 지난 2016년 여름, 국내에서 15년 만에 ‘콜레라’가 발생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그 해 8월 22일 광주에서 최초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다. 이 환자는 여행을 갔던 거제 지역 한 식당에서 해산물을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태가 터지자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센터는 ‘콜레라’ 초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사흘 뒤인 25일 거제 지역에서 두 번째 환자가 발생했고 30일엔 세 번째 환자가 나왔다. 사태가 확산될 기세를 보였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콜레라가 최초 발생한 이후 약 열흘 동안 질병의 명확한 감염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15년만의 콜레라 못지 않게 논란이 됐던 건 질본의 어설픈 대응 방식이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바닷물 오염’이 유력한 감염 경로로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는 세 번째 환자의 경우 조리된 해산물을 먹은 다음부터 설사 증세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콜레라는 해산물을 날 것이나 조리가 덜 된 상태에서 먹었을 때 전파되기 때문에 이같은 질본의 '비상식적' 발표 내용은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콜레라 사태 키운 '행시' 출신 감염병센터장···문제 겪고도 제도개선 논의 없어

당시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센터의 총책임자는 '행정고시' 출신이었다. 그동안 사실상 의사가 전담했던 센터장을 이례적으로 행정고시 출신이 맡았던 시기였다. 일각에서 비전문가인 센터장이 콜레라 환자 발생 초기에 질병에 대한 이해와 발생 원인, 전파 경로, 대책 등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해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전문가들 사이의 '후일담' 정도로 그쳤을 뿐,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감염병관리센터장이 의사였다면 사태의 전개 과정이 사뭇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라면 누구나 콜레라의 원인과 위험성, 감염·전파 경로, 감염병의 특성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는 만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차근차근 취해나갈 수 있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의사 동료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럼없이 관련 전문가의 견해를 구하고 이를 적용하기도 쉽다. 

◆"왜 보건소장에 의사만 우대하나" 타 보건의료 직역서 관련법 개정 요구 거세

최근 보건소장으로 '의사'를 우선 임용할 수 있도록 한 지역보건법 시행령에 대해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에선 지원자 중 의사가 있으면 다른 직렬 공무원은 임용 심사 대상이 되지 못하는데, 이를 개방해 보건소장 자리를 놓고 누구든 경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치과의사나 한의사, 간호사 등 다른 보건의료 직역이 현 제도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보건소장의 역할이 ‘진료’가 아닌 보건소의 행정·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하는 것인 만큼 꼭 의사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법제처는 이를 '불합리한 차별법령 정비계획'에 포함시켜 개정 작업에 들어갔고, 최근 대한의사협회와도 논의를 가졌다.

지난 2015년말 기준으로 252명의 현직 보건소장 중 의사가 103명으로 가장 많았고 간호사(조산사 포함)가 18명, 약사 2명, 의료기사 등 81명, 기타가 48명으로 뒤를 이었다. 

◆의료계 "눈앞의 성형수술 결과 놓고 의사와 불법시술자 비교하는 격"···문제발생시 대처능력이 관건

의료계는 보건소의 주된 업무가 국민건강 증진과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의 예방인 만큼,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의사를 보건소장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A감염내과 교수는 “보건소장이 의료 이외에 행정적인 부분까지 총괄하다 보니 '의사가 아닌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의사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분야가 감염이 아니더라도 의사들은 감염의 특성과 전파 경로 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가 아닌 보건소장의 경우 감염병 사태 등이 발발하면 그제야 보건소 소속 의사가 해당 질병의 특성과 발생 원인, 증상, 감염 확산 여부 등 질병에 대해 교육하곤 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기본' 교육을 하는데만 많은 시간이 허비되는 셈이다. 

개원의인 B씨는 “성형외과 레지던트와 20년간 불법시술을 한 사람과 비교했을 때 당장의 수술은 불법시술자가 더 나을 수 있지만, 의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 능력은 단연 의학지식을 가진 의사가 뛰어난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긴급한 진단과 판단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의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의사도 전공이 감염내과가 아니면 어려운데, 비의료인이 보건소장으로서 의료와 행정의 총체적 지휘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의료계에선 보상이 크지 않은 보건소장 자리를 등한시한 의사들 책임도 적지 않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나온다. 

A교수는 보건소장 자리를 두고 최근 다른 보건의료 직역에서 욕심을 내는 데 대해 “보건소장 공모에 의사 지원자가 많아 보건소장을 의사가 맡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면 애초부터 이런 문제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사들도 이런 상황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