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에 대한 과거와 오늘의 인식, 그리고 대법원의 판단
정신병원에 대한 과거와 오늘의 인식, 그리고 대법원의 판단
  • 전성훈
  • 승인 2019.07.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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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42)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작년 개봉했던 영화 중 ‘곤지암 정신병원’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실존했던 동명의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였는데 꽤나 인기를 끌었다. 이 병원과 관련하여 병원장이 자살했다느니, 건물주가 해외도피했다느니, 우리나라 최고의 심령 스팟이라느니 여러 루머가 있었으나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루머들은 정신병원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병원, 그리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과거의 인식은 가히 ‘정신병적’이었다.

2,000년 전 유럽의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헌들에서도 우울증, 사회공포증, 성격장애 등 정신질환들을 기술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연히 그 시대에도 정신질환자는 존재했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본능적 공포를 느끼며 이는 생존본능의 일환이다. 정신질환을 이해할 수 없었던 시대에 이들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당연히 적대적이었으며, 감금과 격리가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사회의 일반적인 태도였다. 물론 아주 가끔은 필요한 경우(가령 전쟁에 출전하는 병사들을 고무시킬 필요가 있을 때) 환청, 환각 같은 것을 ‘신의 뜻’으로 선해하곤 했지만 말이다.

기독교가 유럽을 장악한 중세 이후 정신질환의 사회적 몰이해 위에 종교적 시각이 덧씌워져 그에 대한 적대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정신질환자들은 그 다양한 증상에도 불구하고 아주 간단하게 ‘마귀 들린 자’로 통일되었다. 신에게서 버림받았다는 편견으로 인해 인권은커녕 생명과 신체조차 부지하기 힘들었고 ‘마녀’와 함께 화형당하기 일쑤였다.

동시대에 일부 이슬람권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비교적 관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정신질환의 원인과 이를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중세의 가장 위대한 의학자였던 페르시아 제국의 의사 이븐 시나(980~1036)는 ‘정신질환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며, 구타와 감금은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킨다’면서 ‘우울증과 조울증과 같은 초기 상태를 방치하면 자살이나 발작 같은 말기 증상을 가져 온다’라고 저술한 바 있다.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바로 옆 유럽에서는 정신질환자를 화형시키던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획기적인 연구 성과였다.

중세 이후 유럽에 정신병원이 등장했으나, 치료라는 인식은 전혀 없었고 감금-격리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정신질환자들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진열되었고, 심지어 돈을 주면 환자를 때리고 고문할 수 있게도 해 주었다(!). 16세기에 유럽을 여행한 알 라흐만 시아드가 유럽의 정신병원을 다녀온 체험에 대하여 “유럽 기독교인은 정신질환자를 패 죽이고 고문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라고 기록을 남겼을 정도였다.

중세 이후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에 들어서야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식이 차츰 개선되기 시작했고 정신질환자들도 치료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필리페 피넬이라는 프랑스 학자의 주장 하에 비로소 격리가 아닌 치료를 위한 장소로서의 정신병원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대적 정신병원의 모태가 되었다.

하드웨어의 준비는 쉬우나 소프트웨어의 준비는 어려운 법. 18세기에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미 있는 치료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고, 중세에 쓰던 방법인 사혈, 치아 뽑기, 관장, 회전의자 돌리기, 구운 쥐 먹이기, 매 타작 등을 계속 시행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까지 미국에서는 남자는 포경수술을 해야 정신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있을 정도였다.

19세기 후반 프로이트가 등장하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치료 방법으로서 심리치료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20세기 들어 2차 세계대전 이후 향정신성약물이 발견되고 활용법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치료 방법들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중반부터 정신병원 입원환자들에 대한 지역사회 복귀운동을 시작했고, 폐쇄병동을 줄이면서 환자들이 장기입원이 아닌 정신보건센터를 통해 치료를 받도록 권장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병원이라는 시스템이 정립되기까지 2,000년 이상 걸렸다.

최근 경기도 오산시에서 전체 140개 병상 중 126개의 정신건강의학과 병상(폐쇄병동)이 포함된 병원 개설을 놓고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면서 해당 병원측과 오산시의 다툼이 지속되고 있다. 이 다툼 과정에서 모 국회의원의 ‘일개 의사’라는 폭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오산시가 개설허가취소 입장을 밝히자, 해당 병원측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혀 사법부의 판단까지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에 대하여 예전에 사법부가 판단한 적이 없었는가? 당연히 있었다. 그것도 매우 최근인 올해 1월에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해당 판결은 이른바 혐오시설인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의 설치 시도, 이에 대한 주민의 반발을 등에 업은 지방자치단체의 허가거부(취소)라는 점에서 오산시 사건과 그 본질이 같은 사건에 대하여 내려진 것이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설령 병원 인근 주민들이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나 병원 증설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그러한 막연한 우려나 가능성만으로 병원 증설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명확하게 판시했다.

사람들은 항상 국회의원들의 어이없는 발언을 비난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파도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배는 바다를 떠나서는 존재이유가 없기 때문에, 파도의 움직임을 귀신 같이 읽어내고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생각’을 국회의원들이 대변하면, 이를 투표로 지원한다. 멀게는 유럽의 극우정당의 발호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 가깝게는 우리나라의 지역주의 발언들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본 정신병원 허가취소 사태, 그리고 ‘일개 의사’ 폭언 논란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상당히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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