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와 호르몬
노화와 호르몬
  • 유형준
  • 승인 2019.06.2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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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78)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호르몬은 삶의 윤활유’라는 주제로 글 청탁을 받았다. 호르몬의 어원과 역할을 간략하게만 알아도 청탁 받은 주제가 그런대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승락했다.  

윤활유는 기계 따위의 맞닿은 부분에서 열이 나는 것을 방지하고 마찰을 덜어준다. 호르몬은 바로 그러한 일을 한다. 호르몬은 영어로 hormone[호르몬]이며 ‘불러 깨우다, 자극하다’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hormao[호르마오]’가 어원이다. 호르몬은 내분비선에서 생성되어 분비되는 몸의 특수 화학 메신저로 굶주림과 같은 단순한 기본적인 필요에서 생식, 노화 등과 같은 복잡한 순리에 이르기까지 항상성을 유지하며 감정과 기분까지도 조절한다.
나이가 들어도 대부분의 호르몬들은 안정 시엔 제대로 분비되어 작용한다. 그러나 스트레스나 자극이 오면 그에 대한 반응이 미약해진다. 물론 안정 시에도 분비가 약해지고 작용도 둔해지는 호르몬도 있다.

예를 들어 여성에서 폐경이 오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갑자기 줄어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줄어들거나 소실되어진 호르몬을 보충하여 채우면 늙음을 늦출 수 있고 막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한다. 하나는 나이에 따라 줄어 들 것은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체의 성장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성장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라는 점이다. 둘째는 몸의 다른 부분들은 모두 늙었는데 특정 부위에 작용하는 호르몬을 준다고 의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마치 다 낡은 양복의 단추만을 갈아 단다고 새 양복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시점(視點)을 또렷이 하며 현재 늙음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는 몇 가지 호르몬을 알아본다.

성장호르몬 주사로 근육의 질을 좋게 하고 피부를 젊게 하는 효과가 보고되었으나 혈압을 올리고, 암과 갑상선 기능저하증, 당뇨합병증의 발병 위험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디히드로에피안드로스테론(영어 약자 DHEA)은 부신, 생식선, 뇌 등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다. 한 때 ‘청춘의 샘물’이라 불릴 정도로 주목을 끌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다모(多毛)증, 전립선 비대와 암의 위험성이 있어 곧 시들해졌다. 멜라토닌은 저체온증, 졸음, 우울증, 주의력 산만 등을 일으켜 현재는 시차 극복에만 쓰인다.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은 부종, 간기능장애, 전립선암 촉진 악화, 고지혈증(콜레스테롤 상승), 수면 무호흡증, 음경지속발기증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서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사용한다.

늙음과 호르몬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근감소증이다. 노인 열 명 중 두세 명은 근감소증을 겪는다. 근감소증은 근육량과 근육의 힘이 감소하는 것이다. 근감소증은 낙상, 골절, 신체장애 및 사망 등의 딱한 결과가 생길 가능성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진행성이고 전신적 질환이다. 운동과 영양으로 근감소증을 예방하고 관리해야 한다. 운동은 저항성 운동이나 근력운동이 권장된다. 경험자의 지도에 따른 저항성 운동의 적절한 강도 및 빈도의 조절은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큰 운동 효과를 가져다준다. 꾸준히 걷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운동과 함께 강조되는 영양 관리의 핵심은 단백질 섭취 등의 조절이다. 아직 단백질을 어떻게 얼마나 섭취해야 하는 지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이다. 지금 시점에선 골고루 먹는 게 가장 실제적 방안이다. 이러한 생활 다듬기에 더하여 근감소증을 개선시킬 호르몬을 포함한 여러 약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이 노화와 관련한 호르몬 보충 요법은 상당 부분이 흐리터분한 상태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내분비 전문의 또는 노인병 전문의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한 예를 들면 성호르몬의 경우 폐경기증상이나 골다공증에 대하여 여성호르몬을 투여하거나, 남성호르몬이 확실히 부족하여 관련 증상이나 소견이 나타날 때만 보충한다. 늙음을 방지한다고 맘대로 멋대로 호르몬제제를 사용하는 것은 안쓰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호르몬은 분명 늙음의 윤활유다. 윤활이 안 되면 늙음이 뻑뻑하고 소란하다. 그러나 덜 확인 된 내용을 마치 비법인양 권하고 덥석 따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혹시 한두 종류의 호르몬이 노화의 한 부분에서 그 질을 다듬어주거나 또는 늦출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 입장에서 노화학자인 호주의 할러데이(Robin Holliday)의 식견에 의견을 보태어 본다. ‘노화를 방지한다는 건 수명 연장을 위해 사람의 몸을  변화, 개조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화를 거꾸로 되돌려 놓거나, 노화를 피해 멀리 돌아가거나, 노화를 뛰어 넘어야 한다. 여기에는 수많은 노화와 연관된 질병들도 극복하거나 피해가야 하는 과제도 함께 있다. 관련 연구에 몰입한 지지자 혹은 주창자들은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화는 대단히 오랜 시간에 걸친 인류의 생명과 삶의 과정이며 결과다. 사람의 유한한 수명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어쩌면 지극히 미미할지 모르고 오류의 집합일지도 모를- 해부학적 생리학적 지식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현재의 노화 방지 노력은 유한한 수명을 지닌 생명체의 해부학적 생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꿈꾸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노화 방지는 수백만 년에 걸쳐 왔고 또한 가고 있는 인간 생로병사의 진행을 뒤집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윤활유가 내 몸과 나의 늙음 자체는 아니다. 윤활유는 윤활유일 뿐이다. 삶도 늙음도 윤활하게 하는 것은 호르몬 자체가 아니라 호르몬을 제대로 알맞게 관리하는 데에 그 고갱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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