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 맞서면 불행하다고?
늙음에 맞서면 불행하다고?
  • 유형준
  • 승인 2019.06.10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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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76)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브랜다이스 대학 사회학과 교수 시절 모리의 제자였던 미치(Mitch)는 스포츠 기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던 미치는 모리(Morrie) 교수가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으로 죽어 가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미치는 모리 교수를 찾아갔다. 십 육년만의 방문은 화요일마다의 만남과 대화로 이어졌다. 모리 교수가 죽기 전 14 주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나눈 대화 내용을 묶어 미치는 ‘모리와의 화요일들’을 발간했다. 책은 205주 동안 ‘뉴욕타임즈’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오프라 윈프리가 영화로도 제작하여 텔레비전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모리 교수는 병세를 알고 나서 그의 아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방문객에게 집을 개방하여 아는 모든 사람을 만난다. 미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일곱 번째 화요일. 모리의 몸은 그 시간만큼 더 약해졌다. 배변 후 뒤처리를 혼자 할 수 없었다. 숨 쉬고 음식을 삼키는 것 이외에는 거의 모든 일을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나는 즐기기 시작했네. 요즈음 사람들이 날 옆으로 눕혀 짓무르지 않도록 엉덩이에 크림을 문질러 발라주는 걸 즐기네. 눈썹을 닦아주거나 다리를 마사지해 줄 때도 그렇다네. 눈을 감고 기쁘게 몰입하지. 그러노라면 무간한 일상처럼 여겨진다네.” “늙어가는 것이 두려웠던 적은 없으셨어요.” “미치, 난 늙음을 받아들이네.” “받아들인다니요?” “아주 단순한 일이지. 우리는 자라는 만큼 점점 더 많은 걸 배워가지. 만일 스물두 살에 머문다면 스물두 살 때와 같이 무식할 걸세. 늙음이 바로 쇠퇴는 아닐세. 늙음은 성장이지. 늙음은 머지않아 죽을 거라는 소극적 부정 그 이상의 것이지. 즉, 죽을 거라는 걸 ‘이해’하고 그 이해로 인해 더 나은 삶을 누리려는 긍정적 의미도 있다네.” 미치는 늙음이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누구나 다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이라는 말하는 사람이 ‘어서 예순 다섯 살이 되어야지.’라고 바라는 이들보다 훨씬 많은 이유를 묻는다. 모리 교수는 답한다.

“불만족스러운 생활. 실현되지 않은 삶. 의미를 잃어버린 인생.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걸 세.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다시 젊어지길 바라지 않아. 앞으로 가길 바라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길 원하지. 빨리 65세가 되길 바랄 걸.” 모리 교수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보게. 늘 늙음에 대항하여 싸우면, 늘 불행하다네. 어차피 늙기 때문이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치가 ‘그렇다면 선생님은 젊고 건강한 사람이 부럽지 않냐?’고 묻는다. 눈을 감으며 모리는 답한다.    “물론 부러워하지. 헬스클럽과 수영장에 갈 수 있고, 춤도 추러 갈 수 있고. 하지만 부러우면 그 부러움을 보내버리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부러워하는 마음일 뿐이야’라면서 벗어나려하네.”  “늙은이가 젊은이를 부러워하지 않을 순 없지. 늙은 사람이 젊은이들을 질투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중요한 건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임에 몰입하는 걸세. 지금 자네는 30대의 자네를 살고 있지. 나도 나의 30대를 살아봤어. 그리고 지금은 나의 일흔여덟 살이네.”  “지금 있는 그대로 내 삶속에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야하네. 뒤돌아 지나간 젊은 시절을 찾으면 경쟁심만 생기지. 나이는 경쟁 이슈가 아닌데도 말이야.” “진실은, 내 속에 모든 나이가 다 들어 있네. 나는 세 살이고, 나는 다섯 살이고, 나는 서른 살이고, 나는 쉰 살이다. 나는 그 모든 나이를 다 겪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나는 아이가 되는 것이 어울릴 때 아이가 되는 것을 기뻐했다. 현명한 노인이 되는 것이 어울릴 때 현명한 노인이 된 것을 기뻐한다.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해 보라! 내 속엔 모든 나이가 다 들어 있네. 이해되나?” “자네의 나이도 지내본 내가 지금의 자네를 부러워할 까닭이 있나?”

늙음은 겉에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모든 삶의 보이는 모습 뒤에 잘 드러나지 않는 갖가지들이 켜켜이 쌓인 결과다. 노인의 삶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삶의 통합성이다. 노년기 이전까지의 삶에선 개인생활, 가족생활, 경제를 첫 번째 목적으로 하는 직업생활, 취미 여가, 봉사활동 등이 각각으로 구분되어 전개 된다. 물론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두어 다른 데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삶도 있고, 두루 걸쳐 지내는 이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도 젊어서는 그 생활 영역이 선명하게 나뉘어 펼쳐진다. 늙으면 그 선명한 구분이 희미해진다. 은퇴하고 자녀들이 품을 떠나면서 성취감과 의무 부담감이 동시에 사라진다. 대신에 봉사 활동이 소소한 용돈을 창출하고, 시간을 쪼개어 내지 않아도 여가를 누리고 취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젊은 시절 직장 생활영역에서만 느끼던 성취감을 봉사 활동이나 취미 생활에서 더 맛보는 경우가 잦아진다. 삶이 통합되어 간다. 그래서 모리 교수는 ‘내 속엔 모든 나이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마침내 열네 번째 화요일에 그들은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모리는 간신히 말하고 미치와 포옹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며칠 후 모리는 칠십 팔년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떠나갔다. 미치는 글의 말미에 모리가 좋아하는 시인인 오든(Wystan Hugh Oden)의 표현을 덧붙이고 있다. “운명은 많은 생물을 굴복시키지만, 사람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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