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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짖궂은 농담과 성희롱의 차이
〈34〉짖궂은 농담과 성희롱의 차이
  • 전성훈
  • 승인 2019.04.29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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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Z 부장판사라는 법관이 있었다. 실력, 경륜, 덕망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 어떤 판사가 Z 부장판사의 부로 인사발령이 나면 동료판사들이 그 판사에게 `계 탔다'라고 말할 정도로 내외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는 법관이었다. 그런데 Z 부장판사가 올해 초 법원 고위직에 임명될 때 그 임명 과정에서 작은 홍역이 있었다.

4년 전 Z 부장판사가 여러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남자가 여자를 만족시키려면 7㎝면 충분하다'라는 말을 하였고, 이에 기자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신용카드를 말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리 분위기나 전후 맥락상 농담임은 분명하였으나, 동석한 여성 기자가 `말씀이 지나치시다'고 불만을 표시하였다. 이에 Z 부장판사는 다음날 전날 저녁식사에 참석하였던 기자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부적절한 말로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다'라며 사과하였다.

올해 법원 고위직에 Z 부장판사의 하마평이 나오자 위 사건이 다시 불거졌고, Z 부장판사는 취임 직전 4년 전 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과거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사과하였다.

어떤 사람은 `누가 봐도 농담인 저런 말로 2번이나 사과하게 하는 것은 좀 과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왜 법원 고위직에 임명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위 말은 짖궂은 농담일까, 성희롱일까? 만약 저 저녁식사 자리에 여성 기자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성적 발언이나 행위에 대한 사회의 용인 기준은 과거에 비하여 매우 엄격해졌고, 이러한 사회의 인식 변화에 따라 법원의 판단 역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얼마 전 성희롱에 대한 leading case가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나왔다.

A는 B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모 대학교의 컴퓨터계열 교수였고, C, D는 소속 학과 여학생들이었다. B 학교법인은 A가 C, D에게 다음과 같은 행위들을 포함하여 수차례 성희롱 및 성추행 행위를 하였고 이는 사립학교법상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유로 A를 해임하였다.

A는 ① C가 봉사활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원고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고, ② 수업 중 C가 질문을 하면 C를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하였으며, ③ C가 A의 연구실을 찾아가면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등 불쾌한 말을 하였던 사실이 인정되었다.

또한 A는 ① 수업시간에 D를 뒤에서 안는 식으로 지도하고, 불필요하게 D와 한 의자에 앉아 가르쳐 주며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하였고, ② 복도에서 D와 마주칠 때 얼굴에 손대기, 어깨동무, 허리에 손 두르기와 함께 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치는 행위를 하였으며, ③ 학과 MT에서 아침에 자고 있던 D에 뽀뽀를 2차례 하여 정신적 충격을 주었으며, ④ 장애인교육신청서를 제출하러 간 D에게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면 신청서를 받아 주겠다고 하여 D가 어쩔 수 없이 원고의 볼에 뽀뽀를 하게 한 사실이 인정되었다.

A는 B 학교법인의 해임처분에 불복하여 소청심사를 청구하였고, 소청심사에서 원고 청구가 기각되자 그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A는 제1심에서 패소하였으나, 제2심에서 승소하여 해임이 취소되었고, 이에 대하여 상대방이 항소하여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먼저 대법원은 `성희롱'의 의미에 대하여,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학교, 공직유관단체 등 공공단체의 종사자, 직장의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 ①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또는 `성적 요구' 등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② 상대방이 성적 언동 또는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그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이익 공여의 의사표시를 하는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보다 쉽게 말하면 성희롱은 `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볼 때 /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인으로 하여금 /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이다. 즉 `행위자가 성적 동기나 의도가 없더라도'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면 성희롱이 성립한다. 따라서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라는 변명은 전혀 소용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 판결은 하급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을 심리할 때 준수하여야 할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① 법원은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②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하며, ③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의 문제 제기 또는 제3자의 신고 권유를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와 같은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피해자의 진술이 믿을 만한 것인지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베스트셀러였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각기 전혀 다른 말과 사고를 하는 행성에서 지구라는 행성으로 와서 서로를 알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적응해 살면서 그들이 원래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것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상대도 생각하고 원할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면서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된다는 위트 넘치는 비유로 글머리를 시작하는 책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공존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위하여 일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학습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일방의 생각으로는 `짖궂은 농담'이지만, 상대방의 생각으로는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다.

현실에서 판단이 애매하다면? 유용한 팁이 있다. “도박판에서 내 돈 걸듯이.” 호기롭게 돈을 걸면 한 두 번은 운이 좋을 수도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판단이 잘 서지 않으면, 가만히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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