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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녹지병원 `공공성 vs 수익성'
제주녹지병원 `공공성 vs 수익성'
  • 의사신문
  • 승인 2019.03.0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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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29〉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도박을 좋아하시는가? 공개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배짱 좋은 분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스포츠토토의 판매량이나 강원랜드의 영업실적을 보면 도박은 우리 사회에 폭넓게 용인되고 있다. 최근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82.2%는 살면서 한 번 이상 도박을 해 본 경험이 있고, 66.3%는 1년에 한 번 이상 도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도박이 흔하게 용인되고 있는 사회임에도, 내국인 카지노는 그 설립 논의의 시작부터 격렬한 사회적 반발에 부딪힌다. 이는 사행산업의 달콤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건전성 유지가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덕목임을 사회 구성원들이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리의료라는 말에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우려를 표한다. 자본이 의료를 이용하여 수익성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알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리의료는 해외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얼마나 달콤한 구호인가!), 의료서비스의 다양화, 의료산업의 경쟁력 제고 등 그럴듯한 탈을 쓰고 문을 두드린다.

최근 제주녹지국제병원이 뜨거운 쟁점이다. 중국의 부동산회사이자 세계 300대 기업인 녹지그룹이 778억 원의 투자계획을 밝혔고 이후 보건복지부가 2015년 12월 병원 설립을 승인하여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 안에 2017년 7월 준공된 이 병원은, 이후 영리의료 반대측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최종 허가권자인 제주도가 허가를 미루어 준공 후 1년 이상 문을 못 열고 표류하였다. 작년 말 `외국인 전용 조건부'로 개설을 허가받았지만, 최근 병원측이 개설 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청하면서 현재까지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제주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해묵었지만 극히 중요한 다음의 쟁점으로 귀결된다. `의료의 공공성과 수익성 중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2013년의 `진주의료원' 사건 역시 의료의 공공성/수익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이 때 제시된 찬반 양측의 핵심 논거는 제주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복붙'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정부가 공공성이 강조되거나 수익성이 강조되는 정책, 즉 `문 케어'로 대표되는 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이나 제주녹지국제병원으로 대표되는 의료 수익성 허용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진주의료원 사건에서 폐원 찬성측에서는 ① 환자가 없는데도 동급 민간의료기관보다 고임금 구조이며, ② 2010년과 비교하여 2013년에 환자는 그대로인데 인건비는 18억 원이 증가하였고, ③ 누적적자가 276억 원에 이르는 경영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토요일 무급근무제, 연차수당 2분의 1 반납 등을 결의하였지만 그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경영개선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요약하면, `진주의료원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있으며, 그 이유는 과도한 인건비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반면 폐원 반대측에서는 ① 의료시장은 불완전 경쟁시장으로서 농어촌 지역과 같이 충분한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민간의료기관이 빠져나가거나 사실상 경쟁이 소멸하여 적절한 의료서비스 공급이 중단되게 되고, ② 공공의료기관의 경우 그 특성상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적자는 `착한 적자'로서 일반적인 영리기업의 적자와 같이 비교하여서는 안 되며, ③ 대도시의 버스, 지하철 역시 `착한 적자'의 발생을 전제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원을 통하여 보전하여 운영되는 것으로서 그 공공성 측면에서 대중교통에 못지않은 의료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도 이러한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요약하면, `진주의료원은 공공성이 강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수익성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료의 공공성/수익성에 관한 논쟁은, 그 논쟁의 전제이자 목표점인 우리나라 의료분야에서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의 수는 2011년 기준으로 전체 의료기관의 약 5.87%(통계에 따라 7%)에 불과하여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저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공공병상비율은 전체 병상의 약 10.4%(통계에 따라 11.76%)에 불과하여 역시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저이다. 참고적으로 비슷한 시기의 OECD 국가들의 평균 공공병상비율은 75.1%이며, 심지어 의료서비스의 편차가 커서 `공공의료후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조차 25.8%이다.

이렇게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민간의료 비중이 월등히 높은 이유는, 근대국가 형성과정에서의 국가적 필요성에 의하여 `구빈법(Act For the Relief of the Poor)' 등을 시행하여 공공의료를 도입한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이 정착되기도 전에 국민개보험제도를 도입하여 단시간에 의료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이로 인한 의료서비스 공급 부족을 정부가 민간 인력과 자본에 다양한 제도적 혜택을 주어 의료분야에 투자되도록 유도함으로써 해결한 것에 기인한다. 즉 우리나라의 특이한 의료 시스템은 압축성장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준비가 부족한 채로 출발한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준으로 성장시키고 운용하여 온 데에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의사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하였다.

M. Howard는 `인생은 짧은 담요와 같아서, 끌어올리면 발끝이 춥고 끌어내리면 어깨가 싸늘하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남의 돈(민간의 투자)을 끌어들여 남의 돈(국민의 건보료)으로 운영하기에 한정된 재원으로 의료서비스를 관리하여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담요가 짧다는 불평을 혼잣말로 되뇌면서 의료의 공공성을 유지하다가 그 한계에 다다르면 수익성이라는 기준을 꺼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또다른 `문케어'와 또다른 `제주녹지국제병원'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M. Howard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무릎을 구부려 (짧은 담요를 가지고도) 쾌적한 밤을 보낸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의료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크게 뒤처진 점을 고려하면, 짧은 담요를 끌어올리고 끌어내리는 과정이 반복되겠으나 약간씩은 의료의 공공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공공성과 수익성의 시소 게임에서 의료계는 당연히 중심이 되어야 한다. 시소의 중심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식견과, 적절한 타이밍에 무릎을 구부릴 줄 아는 결단력을 의료계가 계속하여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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