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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성, 드라마 `SKY 캐슬'이 남긴 것들
천공의 성, 드라마 `SKY 캐슬'이 남긴 것들
  • 의사신문
  • 승인 2019.02.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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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의사의 영화 이야기 〈8〉

이 형 중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서울의대에 합격한 집안의 자랑거리인 착한 아들이 돌연 잠적을 하자 충격을 받은 엄마가 저승사자같은 올 블랙의 코디네이터와 만난 후 설원에서 자살을 하던 짧고도 긴 순간.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팝송인지 가요인지도 모를 너무도 아름답고 몽환적인 노래가 흘러나온다. We all lie(우린 모두 거짓말을 해). 이 장면 이후로 20회 미니시리즈는 시네마틱 드라마를 넘어 가히 드라마틱 시네마가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가족 내의 위상은 애매하다. 월급은 통장을 통해 그대로 엄마에게 전달되어 잠시라도 아빠의 수고를 음미해 볼 기회(혹은 월급봉투를 내밀며 뻐길 수 있는 기회)는 박탈당하고, 자녀의 교육 역시 엄마가 학원과 상의하여 모든 것을 관리한다.

아빠는 지분은 갖고 있으되 주주총회를 통해서만 연말실적을 접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주식회사의 무기력한 거수기이자 허울뿐인 주주일 뿐이다. 엄마(전업주부인 경우 더 심함) 역시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을 충진하는 정신적 보양식은 꿈도 꾸지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자식을 태어나면서부터 트렌드에 맞춰 키워내며(뒤짱구를 위해 도너츠 모양의 베개를 들고 다니고, 하루라도 빨리 애를 일으켜 세우면 일등이 된다) 자식의 실체가 아닌 그의 그림자를 통해 현실에서는 실존이 불가능한 이상적인 자아(alterego)를 일구어내면서 껍데기뿐인 삶에 대리만족을 하며 살고 있다. 이 혼돈 속에 아이의 정체성과 희망은 설 자리를 잃으며 학교여야 가능한 선생님, 친구들과의 관계는 피상적으로 변질된다. 대학이 뭐길래, 의대(극 중에서는 유일무이한 서울의대만 존재)가 도대체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장하길래.

〈SKY 캐슬〉이 뜻하는 바는 정확치 않다. 잘 사는 전문직 부모들이 모여 사는 통과문턱이 높은 가상의 주거지(아파트가 아닌 타운하우스)를 뜻하는 것 같은데, 줄곧 서울의대만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서연고를 뜻하는 SKY는 아닌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의대를 지망하던 아들은 부모 둘 중의 하나(?)로부터 자연스럽게 세뇌가 된 것 같아 진로를 결정한 이유에 대하여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고, 고생 끝에 재수하여 들어간 의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반수를 시킨 엄마를 강력히 제지하지 못했다. “당신이나 모교를 그렇게 평가하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착각하지 말라”는 집사람의 명징한 서열정리에 나는 가슴 속 깊숙한 이류 대학 출신의 열등감을 황망히 감추어야 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는 이류가 아닌 일류가 되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해주길(“한 문제만 더 맞춰라.”) 바랬던 것 같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고는 이러한 바램을 애정의 발로라고 착각한다. 아이들은 그래서 불행해진다.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잘난 부모들은 대를 이은 가업의 전수를 하늘에서 위임 받은 것이라 자기합리화 시킨다.

〈SKY 캐슬〉을 무늬만 영화인 채 드라마에 머문 시네마틱 드라마가 아닌 영화적 장치를 덧입힌 드라마틱 시네마로 규정한 이유는 현실을 뛰어넘는 극적 전개 이외에도 섬세한 미술과 음악의 사용, 공들인 카메라 워킹이란 신공이라 말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집은 각자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투영한다. 신분상승에 목숨을 건 한서진의 화려하지만 어둡고 복잡한 집안 구조, 가부장적인 차민혁 교수의 단정하면서도 차가운 블랙으로 일관되었지만, 일탈을 꿈꾸는 나머지 가족의 욕망이 꿈틀거림이 혼재된 기이한 톤 앤 매너, 자유로운 그러나 이전 교생시절 회개의 성격이 가미된 소설가 이수임의 높은 천장이 돋보이는 환한 집안 분위기, 중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진진희의 값비싼 가재도구로 넘쳐나는 유리로 가득 찬 집안.
카메라는 넓디넓은 타운하우스를 안정적으로 비추면서 전신 샷과 바스트 샷을 오가다가 어느 순간 액션씬처럼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클로즈업, 정면이 아닌 사면을 비추고는 그것도 모자라 등장인물이 아닌 그를 비추는 거울(대개 정면이 아닌 측면, 사면)을 불안하게 흔들거리며 찍어댄다. 일부러 균형과 비례를 벗어난 접사는 한서진과 혜나가 서로 내뱉는 말들이 거짓말처럼 들리게 만든다.
주제를 관통하며 서브텍스트로써의 역할을 하는 음악은 드라마의 화룡점정이다. 절대악의 화신인 김주영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들리던 슈베르트의 마왕은 신의 한수였다. 아이(예서)를 데려가려는 마왕, 두려움에 떠는 아이,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아버지의 위로는 결국 아이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차민혁 교수가 무너지는 순간 나오던 라벨의 볼레로는 재미있다. 볼레로는 악단 구성원들이 부분적으로 합쳐지면서 절정을 향해 달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무너지는 선율의 해체가 특징이다. 그의 별명 차파국에 걸맞는 곡이다. 차민혁이 만든 공부방을 부수는 아내 노승혜의 망치질에 조금씩 드러나는 햇살과 더불어 나오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원시인이 짐승뼈를 부수며 위로 던진 뼈가 서서히 해가 떠오르면서 우주선으로 변화하는 격변의 의미와 겹쳐진다. 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명백한 오마쥬다.

차민혁이 가짜 하버드대생인 딸(세리)과 공항에서 조우할 때 흐르던 음악은 〈라붐, 1980〉에서 소피마르소의 귀에 헤드폰을 씌운 채 들려 나오던 리차드 샌더슨의 `리얼리티'였다. 최고의 풍자였다.

혜나가 정원으로 추락한 후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질 때 흐르던 슬로우 버전의 We all lie는 숨을 멎게 만드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아버지의 역할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빌리 엘리어트, 2000〉에서 완고한 광부 아버지와 그의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의 꿈을 위해 희생을 감내한다. 영화의 맨 처음 장면 소년은 Cosmic dance란 곡에 맞춰 위 아래로 뛰기를 반복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성인이 된 빌리는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에 맞춰 영원히 비상한다. 이에 반해 아버지와 큰 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광부 파업이 저지된 채 막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채로 땅 아래로 함몰된다. 동료들의 파업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돈을 벌기 위해 버스를 타는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큰 형에게 아버지는 절규한다.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수는 없어”. 아버지는, 부성은 그래서 위대하다.

〈여인의 향기, 1992〉에서 마지막이 될 뉴욕 여행에서 고등학생 찰리가 며칠 수퍼바이져를 해주었던 맹인 퇴역장교 슬레이드는 찰리가 부단한 징벌을 받을 위기에 처하자 부재된 아버지를 대신해 학교 징벌위원회에 참석하여 거짓말을 강요하는 교장선생님에게 명예의 소중함에 대하여 일갈한다. 멘토는 이래야 한다.

〈SKY 캐슬〉에서 엄마와 아빠는 모두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다. 부모의 욕망으로 세뇌되어 본인의 의지가 잠식된 채 꼭두각시(마리오네트)가 되어 버린 아이들은 지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그래야지만 미래가 보장되는 캐슬에 안주할 수 있으니까.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스스로의 속내를 비우면 마음의 여백에 무엇이 남는지 자식의 눈을 통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식을 왕자와 공주로 만드는 것이, 대를 이어 욕망 그 자체를 물려주는 것이 자식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되새겨보아야 한다.

We all lie, tell you the truth.(우린 모두 거짓말을 해, 네게 진실을 말해주자면)
People cheat each other. Right?(사람들은 서로를 속이니까. 그렇지?)
Is this really true?(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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