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 없으면 의료진 책임없다
`인과관계' 없으면 의료진 책임없다
  • 의사신문
  • 승인 2019.01.28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25〉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퀴즈를 좋아하는가? 지적 능력이 높고 호기심이 강한 의사들은 대부분 퀴즈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면 법률 퀴즈를 2개 내보겠다. OX 퀴즈이고 어렵지 않으니 법률이라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참고적으로 실제 사례이다.

(1번 사례) 여고생 A는 교통사고로 우측 하퇴부에 광범위한 압궤상 및 연부조직 손상 등의 상해를 입었다. A는 사고 후 우측 하퇴부에 보기 흉한 흉터가 남았고, 목발을 짚고 걸어 다녀야 했다. A는 이로 인하여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상태를 비관하여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교통사고 가해자는 A의 자살에 책임이 있을까?

(2번 사례) 여성 B는 2명의 남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였다. B는 집으로 돌아온 후 이로 인한 수치심, 장래에 대한 절망감 등에 빠져 음독하여 자살하였다. 성폭행 가해자들은 B의 자살에 책임이 있을까?
어려운가? 정답률이 자연확률인 1/4에 가까운 것을 보면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답은 1번 `책임 있다', 2번 `책임 없다'이다.

그럴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위 두 사례의 결론을 다르게 만든 법적 쟁점은 한 가지, `인과관계'이다. 즉 1번 사례에서는 교통사고로 `인하여' A가 자살한 것이라고 법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이고, 2번 사례에서는 성폭행으로 `인하여' B가 자살한 것이라고는 법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과관계(causal relationship)는 일반적으로 `어떤 원인이 있으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리라고 보통 인정되는 관계'를 말한다. 이것은 의료과오소송에서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의료과오소송에서 의사의 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① 의료과오 ② 악결과 ③ (의료과오와 악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모두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만약 의사의 의료과오가 인정되고 악결과도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의료과오와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의사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인과관계는 소송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실제 소송에서도 치열하게 다투어진다. 이러한 다툼의 결과, 인과관계에 관한 수많은 법원의 판결들이 쌓여 확고한 법리를 형성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수만 건의 case study가 누적된 것과 같다. 지면상 이 법리를 전부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의사 입장에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법리가 있다. 그것은 `인과관계의 추정' 법리이다.

`인과관계의 추정'은 의료과오소송에서 일정한 경우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리이다. 즉 원칙적으로 의료과오와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원고인 환자가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일정한 경우에는 의료과오와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피고인 의사가 증명하지 않는 이상, 의료과오와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된다는 것이다.
의사에게 불리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렇다, 의사에게 불리하다. 하지만 이 법리는 의료소송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분야(환경소송, 제조물책임소송 등)에서도 적용되고 있으므로 크게 억울해 할 것은 아니다.

게다가 대법원은 `의료과오로 인하여 악결과가 발생한 것일 수 있다는 정도의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인과관계가 추정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확실하지는 않으나 대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정도)'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과도한 인과관계 추정을 제한하고 있다. 실무상으로도 법원은 이러한 제한을 적절히 적용하여 증명책임을 의사와 환자에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배분한다.
그래도 뭔가 찜찜한가? 그러면 아래와 같은 실제 사례를 보자. 세 번째 퀴즈이다.

(3번 사례) 환자 C는 계속하여 황달 증상이 나타나자 그 원인을 찾기 위하여 D병원에 2주 예정으로 입원하였다. 그리고 D병원은 C에게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 검사를 하였다. 그런데 검사 이후 C에게 급성췌장염이 발생하였고,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C는 사망하였다. D병원은 검사 이전에 C에게 위 검사의 부작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C의 유족들은 D 병원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C가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D병원은 C의 사망에 책임이 있을까?

법원은 D병원이 C에 대하여 위 부작용을 충실히 설명하지 않아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은 인정되지만, 그 설명의무 위반과 C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앞서 본 것과 같은 `인과관계의 추정' 법리를 적용하지도 않았다.

즉 법원의 판단은 `① D병원이 C에게 `ERCP 검사의 부작용으로 급성췌장염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 확률은 낮다'는 설명을 충실히 하지 않은 것은 설명의무 위반이 맞다. ② 그러나 C가 황달 증상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2주 예정으로 D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D병원이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고 하더라도 C가 그 낮은 확률의 부작용을 이유로 들면서 `반드시' ERCP 검사를 거부하였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③ 따라서 인과관계가 추정될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으므로, C의 사망은 D병원의 설명의무위반과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위 판결은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되었고, 결과적으로 D병원과 담당의사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약간의 손해만을 배상하고 의료과오의 굴레를 벗었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이 의료과오와 악결과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추정을 남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는 부담을 지우려고 하는 어이없는 입법 시도들로 인해 자주 잊게 되지만, 여러 번 언급한 것과 같이, 법은 상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