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왔던 `甲의 폭력' 고발…스크린 속 `미투'
숨겨왔던 `甲의 폭력' 고발…스크린 속 `미투'
  • 의사신문
  • 승인 2019.01.2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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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의사의 영화 이야기 〈7〉

이 형 중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스포트라이트/돌로레스 크레이븐

 

아이돌을 닮은 수려한 외모와 유창한 말솜씨, 능수능란한 감정조절을 무기로 현란한 제스처를 구사하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A씨의 행보는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거칠 것이 없었다. 20년 이상 리포터로 지난한(자칭 옹색한) 삶을 버티면서 신뢰와 성실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경제전문가, 개그맨 K씨 역시 10년 전의 사건이 자신의 발등을 찍게 될 줄은 몰랐다. 천만관객을 몰고 다니던 흥행 요정 배우 O씨가 〈터널〉에서 보였던 의인 소방관의 모습(아이러니하게도 의인 소방관 차태현을 닥달하는 저승의 검사로 나오기도 했다)은 연이은 과거사 폭로와 이에 대응하는 그의 방식에 비춰볼 때, 〈대배우, 2015〉의 자연스러움은 이미 그의 내면에 일상화된 메소드 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도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남자 사람들(가끔씩 여자도 있기는 하다)에 의해 자행된 이성(동성도 있긴 하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하나씩 드러나는 것이 이 정도이니, 그 동안 직장,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혹은 관례라는 이름 아래(좋은 게 좋은 것) 행해졌던 통과의례(?)로서의 성추행, 성폭력 행태는 대한민국 범죄백서를 다시 쓰게 만들 정도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행동은 `여성은 근본적으로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라는 여성혐오, 여성증오(misogyny) 시각에서 출발한다. 인류 탄생 후 역사를 주도한 인물은 남성이고, 좁게는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 뛰어야만 하는 남성은 넓게는 여성보다 대의를 위해 희생(예컨대 나라를 지키는 군복무) 해왔다는 전근대적인 발상의 역사적 정통성(?)에 기인한다. 가부장적인 시선에서는 남성은 사회, 여성은 가정에 매몰되어 생활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었지만, 이는 교육과 사회생활 참여부터 남녀의 차이를 두게 되면서 기인한 기회의 불균등에서 파생된 귀납적 오류일 뿐이다.

담론의 주제를 좀 더 확장해보면 이러한 일방적인 폭력은 비단 남녀 사이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증오와 불신이라는 이름의 전염병은 직장, 학교, 사회생활, 심지어는 가족 내부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어 폭발 직전에 다다랐다. 이미 터질 듯이 얇아져 부풀어 오른 풍선에 소위 사회화와 교육이란 미명으로 포장된 불량 테이프를 덧대어 위태롭게 계속 물을 집어넣는 꼴과 다를 바 없다. 그러기에 폭발을 우려한 윗분의 “괘념치 말거라”란 한 마디에 그저 참아야만 했던 하급자 미생들의 소리 없는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할리우드에서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은 그 면면을 살펴볼 때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건강하고 올곧은 사회를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운동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못하고 심각한 외상을 입은 채 인생이 소비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니 미투 운동이라고 쓰고 이차 피해라고 읽히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게 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성정으로 인하여 거듭난 인식은 더불어 향유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내가 웃을 동안 뒤켠에서 하염없이 흐느꼈을 사람들을 느껴야 한다.

뉴욕 뒷골목의 꼬마 악동 넷은 어느 날 장난으로 시작한 일 때문에 한 남자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 소년원에 수감되고, 1년 반의 수형생활은 구타, 독방 감금, 최루탄, 향정신성 약제 강제 투여, 거기다가 은밀히 행해지던 간수들의 성폭행으로 인해 지옥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14년이 지난 후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친, 이제는 늙어버린 간수는 그로 인해 폐인이 되어 버린 이전 소년원 피해자의 손에 의해 죽는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된다. 〈슬리퍼스, 1996〉는 소년 시절 당한 성폭력으로 삶의 상당부분을 강제로 소거당한 채 성인이 된 친구들을 그려낸다. 법이 보호해주지 못하여 복수는 신만이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잃어버린 청춘은 누가 보상해줄 것이며, 가해자를 단죄한 뒤 남는 공허함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신의 대리자로서 누구보다 완벽히 인간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가톨릭 사제들. 일부 보스턴 교구 신부들에 의해 저질러진 아동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수많은 방관자들에 의해 함구된다. 〈스포트라이트, 2015〉에서 외압에 굴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근본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30여년간 자행된 성추행 사건을 파헤친 보스턴글로브 신문기자들의 계속된 탐사보도는 결국 교황청의 사과를 받아 낸다. 보도과정 중 맞닥뜨린 많은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그날의 악몽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고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신망받는 사제를 고발함으로써 받게 되는 추가적인 피해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었다. 되풀이되는 잘못은 가해자를 합리화시켜 더더욱 악랄한 범죄를 양산하게 만든다. 결국 언젠가는, 누군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가정 내 성폭행은 인륜을 저버린 인면수심의 범죄이지만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범죄이기도 하다. 아빠를 살해한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하며 고향을 떠난 지 15년 만에 다시 엄마가 살인혐의로 기소되자 섬으로 돌아온 여기자 셀레나는 아빠의 죽음과 함께 무의식 중에 증발해버린 어린 시절 아빠의 성추행을 깨닫게 된다. 〈돌로레스 크레이븐, 1994〉는 개기일식이 있던 날 밤의 살인(엄마가 아빠를)을 남성으로 상징되는 태양을 달(여성성)이 가린다는 남성지배 체제의 전복이라는 기의(signified)로 표현한다. “세상의 모든 사고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악녀가 되는 것이 자기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지”란 경구는 남편에게 핍박받고 유린당하던 아내 돌로레스에게는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딸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살인의 단초가 자신이었음을 감지하고 여성으로서의 동지애를 느낀다.

어릴 때 고모부에게 성폭행 당했던 작은 소녀는 유일한 바람막이였던 엄마의 죽음과 함께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 형성이 불가능해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게 된다. 〈여자 정혜, 2005〉는 1m 지근거리에서 촬영한 핸드헬드 카메라 덕분에 연못에 부는 작은 바람처럼, 쉴새없이 흔들리는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랑(혹은 믿음)'이라 말할 수 있는 존재로부터 영화 시작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리워지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얼굴은 그러나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무표정하기만 하다.

우울해 하는 동서를 위로하기 위해 마지못해 나선 밤의 유흥. 강간당할 뻔한 위기에서 대학생의 혀를 깨문 가정주부가 있었다. 혀를 잃게 된 가해자의 고소로 법정에 서게 된 후 믿었던 남편과 동서는 불신과 위증으로 반응하고, 이혼 경력때문에 인격모독으로 일관하는 상대측 변호사에 말려 과잉대응으로 실형을 선고 받게 된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990〉의 사회적 배경은 30년 가까운 지금 돌아봐도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의 gender 관은 여전히 80년대에 머물러있다는 씁쓸한 소회가 깃들게 된다. 이 점에서 항소심에서 변호사(손숙)의 일갈은 여전히 명징하고 시대를 앞서 나간다. “판결 전에 제가 먼저 피고 임정희에게 판결을 내려보겠습니다. 그녀는 유죄입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죄입니다. 지금 우리는 피해자인 그녀의 처참했던 과거를 즐겼고, 치욕적인 현재를 즐겼으며, 이제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세 번의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자로서 죽음을 당했고, 현장검증에서의 모욕과 수치로 인권을 죽였고, 법정에서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까발려지면서 한 가정의 주부로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사마리아 너희 중에 죄없는 자! 이 소녀에게 돌을 던지라.” 꽃은 줄기가 달려 있는 채 아침이슬을 머금고 벌들이 찾는 한 향기를 뿜으며 아름답다. 나 혼자만 보기 위해 꺾어 책상 위 꽃병에 장식하는 순간, 자연스러웠던 아름다움은 시효를 다하게 된다. 미투 운동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의도치 않게, 무의식적으로 범했던 나의 부주의한 행동이 어느 누구에게는 씻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참회의 마음으로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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