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하는 청진기
유 담
밤새 흰 가운 품에서 입속말을 하더니
슬며시 말문이 터졌다
쿨럭 대는 발자국이 진료실에 들어서
손목에서 가슴을 열면
박동에 맞추어 말을 시작한다
새벽 찬 바다에서 오는 길이군요
도중에 들꽃에 취해 서녘 끝까지
노을을 지나치게 마셨나봐요
손대는 곳마다 노을이 묻어나
기침마다 붉은 체온이 터져
시들은 햇볕의 수군거림이 식어가네요
더 식기 전에 체온을 드려야겠어요
제 길이보다 더 멀어질까 두려워
구푸린 입과 귀
그 목청과 고막의 체온을 내어 드리지요
자, 숨을 깊게 내들이세요
한 바탕 소나기 꽃밭을 지나
우레 소리 꽃망울로 벙글고
슬며시 움돋는 따스한 목청
<프로필>
2013년 《문학청춘》으로 등단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
문학청춘작가회 작품상 수상(2018)
시집: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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