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법의 폭격' 막는 의료인 `보호막' 될터 
막무가내 `법의 폭격' 막는 의료인 `보호막' 될터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01.14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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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희 순천향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2004년 한 로컬병원에서 영상의학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국민건강보험공단 유방암 검진과 관련해 얼굴도 못 본 환자가 민원을 냈다. 환자는 `보험 가입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유방암 의심소견을 기록에서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환자의 요구대로 소견서를 변경할 순 없었다. 의사윤리지침 제9조(의무기록 등의 정확한 기록)가 의사는 의무기록과 진단서를 정확하고 성실하게 작성해야 한다, 의사는 의무기록을 고의로 위조, 변조, 누락, 추가 등 사실과 다르게 기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환자는 막무가내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사가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화 협박은 기본이었고, 병원으로 찾아와 난동을 피우는 등 한 달간 직·간접적으로 괴롭혔다. 환자는 `판정 결과를 바꾸지 않으면 고소해 망신을 주겠다'는 등 갖은 폭언도 일삼았다. 법에 대해 무지했고, 환자가 더 이상 환자가 아닌 `공포'로 다가왔다. 이 환자로 인해 진료를 할 수도 없었고, 그로 인한 피해는 다른 환자들이 떠안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환자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것'이 전부였다. 환자에게 시달린 한 달, 나에겐 지옥과 같았다.
이는 소설 속 내용이 아니다. 의사가 자신의 환자로부터 협박과 폭언을 당하면서도 법에 대한 이해는 물론, 어떻게 법적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겪은 사연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윤은희 순천향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겸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사진〉다. 이 사건은 그녀가 법조인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억울함이 만들어낸 `도전'
윤 교수는 고소·고발의 개념조차 제대로 몰랐던 무지에 대한 자책감과 함께 억울하고 불쾌했던 감정들이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낸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2004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2009년 도입된 로스쿨 진학을 위해 열을 올렸다.
하지만 생각처럼 로스쿨 진학은 쉽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로스쿨만 바라보던 그에게 나이가 `장벽'으로 다가왔다.

윤 교수는 “로스쿨 도입 당시 서울대나 고려대, 연세대 등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뽑지 않다는 자체 기준을 갖고 있었다”며 “흔히 말하는 스카이만 고집하다 로스쿨 1기 모집부터 8번의 낙방을 겪고 9번째 도전 끝에 성균관대 로스쿨 4기로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를 생각하며 머리를 저었다. 3년의 로스쿨 생활은 의대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그에게는 인생 최대의 힘든 시간이었다.

  윤 교수는 “의대는 시험 볼 때 학생들끼리 족보를 돌려보는 등 정보도 교환하는 반면, 로스쿨에선 엄정한 상대평가로 모든 학생을 성적순으로 줄세우다보니 필기한 노트를 빌려주기는 커녕, 각자 맨 몸으로 부딪히고, 알아가면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민사소송법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저를 불러세우시더니, `윤 선생은 이미 사회에서 의사로 오래 활동했고 이미 이룬 것도 많으니 젊은 학생들처럼 학점 잘 받기를 기대하지 마라. 젊은 학생들에게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하신 적도 있었어요.”

그는 “늦은 나이에 공부하다 보니 암기도 잘 안되고, 로스쿨 1∼2학년 때는 유급을 면하기 위해 다른 학생들보다 2배로 노력했다”며 “근성으로 버텼더니 길이 보였다”고 덧붙였다.

■2전 3기…“죽음의 터널서 빛을 보다”
윤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잘 하는 것이 `공부'였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와 줄 거라는 생각에 다른 고시생들처럼, 신림동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학원도 다니며 공부에 매진했다”고 전했다.

특히 “법을 몰라, 억울하고 불쾌한 감정으로 시작한 공부였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변호사가 되길 원했다”며 “돌봐야할 가족이 많은 상황에 오래도록 공부를 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윤 교수는 로스쿨 졸업 후 2번의 실패를 맛본 뒤 3번째 도전 만에 제6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로스쿨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생활을 회상해보면 `지옥에서 받을 벌을 살면서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사방이 벽 뿐인 작은 공간에서 아침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고 암기하면서,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길을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가며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고통이었다”고 회상했다.
윤 교수는 “의대와 전공의 시절을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법 공부를 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면 못할 것 같다”며 “법 공부를 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날 정도로 힘겨웠다”고 했다.

■`악착'이 만들어낸 `의사, 변호사'
윤은희 교수가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 직업으로 꼽히는 `의사'와 `변호사' 자격을 모두 얻을 수 있었던 건 절실함과 끈기, 그리고 `악바리 정신'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윤 교수는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순식간에 기울면서 맏이로서 책임감을 갖게 됐다”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의사 월급이 많다는 소리에 선택의 여지없이 `의대에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가 생기다 보니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며 “`4당 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매일 같이 새벽 4시까지 공부하며 악착같이 성적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노력 끝에 윤 교수는 장학생으로 가톨릭의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어려운 생활 형편에 비싼 등록금과 실습비, 생활비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보니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윤 교수는 대학병원 교수로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돌봐야 할 가족이 많았던 탓에 교수직을 포기하고 일찍 로컬병원에 취업했다. 지금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의료수가도 낮았고 근무환경이 열악했던 탓도 있었다.

윤 교수는 “당시엔 앞뒤 가리지 않고 일했던 것 같다”며 “고된 업무로 대부분 기피하는 응급실 당직은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를 찾아주는 일이라면 뭐든 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정면 돌파를 선택했고, 시행착오도 거쳤지만 무엇이든 노력을 통해 차근차근 극복해 왔기에 가능했다고 자평했다.

■내 동료 의사들의 든든한 `도우미'
윤 교수가 의사로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가장 큰 이유는 `법'으로부터 `의료인'들을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의료사건에서는 피고인 의사와 병원만을 대리하고 있다.
윤 교수는 “정부가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규제나 법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지만, 환자의 건강과 진료를 우선시하는 의사들에게 법까지 숙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라고 했다.

그는 “의료에서 윤리와 법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보니, 의사들은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더욱이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분쟁도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술실 내 CCTV 설치 등 환자의 권익 보호를 옹호하는 측면으로 여론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니 의사들이 떠안아야 하는 법률적인 리스크가 그만큼 커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특히 윤 교수는 “의사는 `의사면허'가 있어 소송 자체가 치명적일 수 있다”며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할 경우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재기하지 못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며 안타까움을 보였다.

그는 “3년간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원고(환자) 소송을 맡은 적이 없다”면서 “의사로서 의사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 뿐만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함께 한 동료의 과실을 찾아 파헤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이 어렵게 취득한 소중한 의사면허를 지켜주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또 그의 소속 로펌인 `바른'이 각 분야 전문가들의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것도 의료인 변호사로서 강점이 되고 있다.

윤 교수는 “의사는 법을, 법률가는 의학의 전문성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의료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로서, 변호사로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동료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싶다”며 “의료인과 병원 고객에게 수준 높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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