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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의사 살해 사건으로 살펴본 의료계 ‘시사점’
[이슈] 의사 살해 사건으로 살펴본 의료계 ‘시사점’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01.02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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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 사각지대 존재?…의료계 대국민 이미지‧수가도 문제
<사진=pixabay>

신년 첫날부터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크고 작은 의료인 폭행 문제가 대두됐고 이에 응급실 의사 폭행 시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법안이 제정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이번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은 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 일각의 주장이다. 

임 교수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였고 환자가 양극성 정서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특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 사이에서 1년 만에 병원에 찾아와 돌연 흉기로 담당 의사를 찔렀다는 점도 의아하다는 평이 많다.

A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년 만에 찾아온 환자가 우발적으로 의사를 공격한다는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치료를 위한 입원 진행 과정에서 환자의 폭행은 간혹 있지만 이번 사례는 상식 밖의 일”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이유 때문에 의료기관 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자세한 경위는 향후 경찰조사가 진행되면 밝혀지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 내에서는 이번 사건이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고 설명한다.

■ 정신건강복지법, 잘 돌아가고 있나

우선 첫 번째 고려대상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지 1년이나 지난 환자가 다시 병원을 찾아와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치료 공백 기간 동안의 정신질환 악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즉 퇴원 이후, 재발을 반복하는 정신질환자의 치료유지를 위해 치료유지 및 지역사회 관리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인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방치돼 있는 정신질환자를 위험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것이 아닌 선진국처럼 지역사회 기반 외래치료권고제 등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신경정신의학회 등 단체에서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특성상 한 번의 치료로 질환이 완치된다거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때문에 행동조절이 불가할 때는 입원치료가 이뤄지고 이후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외래진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해당 환자는 입원치료 이후 1년 동안 병원을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점이 법적 제도화에도 불구, 진료현장에서 정신질환 환자의 퇴원 후 모니터링 및 치료 체계에 구멍이 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A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정신보건의료 체계를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며 “제도적 허점과 더불어,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고찰과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B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따라 퇴원 이후 환자를 팔로우 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제도적 허점이 있는 것 아닌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병원 내에 흉기를?…의료계, 대국민 이미지 ‘최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일반적으로 정신과 환자라고 하면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일반적인 사람들과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의사가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진심으로 대할 때 의사의 말에 수긍하고 전적인 신뢰를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즉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정신질환 환자였다는 점에 매몰돼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이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의사들, 더 나아가 의료계를 대하는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최악의 상태까지 추락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나를 도와줄 동반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적 또는 기득권층으로 보는 풍조가 만연한 것이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의료인 폭행 사건의 가장 근본적 문제라는 설명이다.

B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는 “혹시나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두렵다. 실제로 의사에 대한 정신과 환자의 범죄가 더 높지 않다”며 “병원에 흉기를 갖고 온다거나 의사를 적대시하는 국내 상황에 대해 더 우려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해결책을 요구했다.

■ 대안은 법안 제정?…의료 수가도 개선돼야

한편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서울시의사회는 ‘폭력환자 근절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통과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만으로는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폭행 사태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점다는 것. 이번 사태처럼 응급실이 아닌 진료현장에도 폭언 및 폭행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방지 대책이 시급하다는 취지다.

서울시의사회는 1일 성명서를 통해 “국내 의료인들은 불만을 품은 환자 및 보호자의 폭력으로 부터 노출돼 있다”며 “지난해 응급실 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됐지만 응급실에서 의료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만으로는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폭행 사태를 근절하기 어렵다. 폭력 환자 근절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구체적 법안 추진도 이뤄지는 중이다.

신경정신의학회는 현재 임 교수의 유가족 및 의료계의 뜻에 따라 학회 차원에서 일명 ‘임세원법’ 제정을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 법 제정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학회는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위급상황 시 의료인이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만드는 등 해결책을 명시한 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구체적 방안에 대해 A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법 제정을 통해 진료실 내 비상벨, 비상통로 배치를 의무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비상벨의 경우, 현재 운영되고 있는 의료기관이 있는데 벨을 눌렀을 때 출동하는 경비대원이 진료실 가까이에 상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의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그렇다고 진료실 안에서 경비대원이 지키고 있을 수도 없어 해당 문제에 대한 현재 국내 의료기관에 대한 철저한 실태조사 및 외국사례 연구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진료 수가에 대한 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여건상 환자가 원하는 만큼의 설명을 해주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며 이것이 간혹 환자들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2일 "우리나라 진료수가 문제는 오래 전 단추가 잘못 꿰어져 긴 갈등으로 이어져 이제는 바로잡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며 "이로 인해 많은 환자를 정해진 시간 내에, 그것도 비급여 검사 혹은 진료마저 함께 시행해야 하니 이 과정에서 환자들 불만이 종종 생긴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불만과 함께 정신병적 증상 악화가 맞물릴 경우 더없이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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