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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퀸, 프레디 머큐리' 인가?
왜! 지금 `퀸, 프레디 머큐리' 인가?
  • 의사신문
  • 승인 2018.12.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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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의사의 영화 이야기 〈6〉

이 형 중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며칠 전, 수술실에서 신경외과 방장(간호사)이 교수님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뜬금없이 물어본다. 잠깐 고민했지만 내 대답은 “no”였다. 그 치열하고 지옥 같았던 시간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그런데 고집스럽게도 재차 질문을 해댄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과거 어느 시절로 잠깐이나마 돌아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냐고. 내 대답은 중학생 시절이었다. 교복 호크를 풀어헤치고 가방을 팔에 감으면서 흰색 운동화(그 당시 18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를 꺾어 신으면서 친구들과 청량리를 활보했던 그 시절. 그런데 아련히 생각나는 게 또 있다.

고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위무가 되었던 시대의 아이콘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인터넷 이전의 70, 80년대에는 가위질로 엉망진창이 되어 줄거리가 연결이 되지 않던 영화(물론 VHS와 소니의 베타로 통용되던 불법 비디오영화의 세계도 있었다)가 있었고, 라디오나 LP(정식 라이선스를 통해 수입되는 음반에는 삭제된 곡이 있어 백판이라 불렸던 날것 그대로의 불법 LP도 유통되었다)를 통해 듣고는 의미도 모른 채 흥얼거렸던 팝송(선생들은 모두 재즈라고 말했었다)이란 길티 플레져(그 당시는 외제 담배도 단속 대상이었으니까)가 존재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스타들의 근황까지 꿰뚫게 되는 요즘에 비해, 옛날에는 오롯이 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던 저 너머 동경의 대상들은 상상력이란 MSG를 통해 살찌워져 문자 그대로 아이돌(우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들은 어쿠스틱한 선율의 감미로운 리릭을 선사한 이지적인 두 친구 사이먼 앤 가펑클, 청명한 음색과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요즘의 훅 송과 유사)의 아바(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봉극장에서 중학교 1학년 때 아바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선도부 선생에 걸려 반성문을 썼다. 아직도 이유는 모른다), 청계천을 구석구석 뒤져가며 모든 LP판을 사서 모았던 천상의 그녀 올리비아 뉴튼 존, 마지막으로 락, 메탈에 기반을 두었지만 아카펠라에서 오페라까지 4옥타브를 넘나드는 엄청난 음역을 가진 프레디 머큐리의 그룹 퀸이었다. 일본의 영화 잡지(스크린, 로드쇼)와 국내 월간 팝송이란 잡지의 화보를 통해 처음 접한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글램 락을 연상시키는 짙은 화장과 수북한 가슴털을 드러낸 채 성정체성을 의심할 만한 의상을 입었으나 이와는 맞지 않는 돌출된 광대뼈와 치아를 가진 이국적인 풍모(순수한 앵글로 색슨이 아닐 거라는 의심은 했었다)의 리드 싱어. 세월이 좀 더 흘러 뮤직비디오와 공연영상을 통해 본 그는 맵시있는 스키니 청바지와 런닝 셔츠 차림, 삼선 운동화를 신고 무대를 스타카토 식으로 리드미컬하게 걸으면서 땀범벅이 된 채 피아노 앞에 앉아 직접 연주를 하는 콧수염이 멋진 뮤지션이었다.

그의 일대기가 영화를 통해 구현되었다. 지금도 TV만 켜면 퀸의 음악이 CF에서 쏟아지고 있으니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일찍 세상을 떠난 스타 뮤지션에 대한 영화는 대체로 그들의 음악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적 고뇌에 천착한다. 짐 모리슨은 “알려진 것과 모르는 것 그 사이에 인식의 문이 있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문구에 착안하여 도어즈라는 그룹을 만들게 된다. 항상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디언의 무아경 같은 생사관을 좇던 그는 거듭된 자기파괴 끝에 27세로 생을 마감한다〈도어즈, 1993〉.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혼탁한 전장에서 흘러나오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Light my fire는 바그너의 발키리의 비행과 묘하게 비슷하다. 니르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모티브로 죽기 직전을 영화화한 〈라스트데이즈, 2005〉는 스스로 경멸했던 대상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참지 못해 세상과 단절한 채 다시 태아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죽음을 통해 성취하여 말 그대로 열반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니르바나의 노래는 단 한 곡도 나오지 않는다.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의 가수들도 모두 같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으니 포스트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한 금단의 음악을 추구한 천재 뮤지션들에게 27년이란 세월은 범인들과는 달리 하늘이 허락한 지상에서의 마지막 자비였을까?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로 시작되는 4명의 아카펠라는 스피커 양쪽을 넘나들며 프레디 머큐리의 피아노 선율에 곁들인 독창과 더불어 조금씩 절정을 향해 나아가더니 브라이언 메이의 리드 기타 이후 폭발적인 가성이 뒤따른다.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절묘한 협주와 가사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광폭해지던 멜로디는 Nothing really matters. Anyone can see…. Anyway the wind blows. 라며 천천히 대미를 장식한다. 6분이라는 터무니없이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오페라와 락을 결합한 〈Bohemian rhapsody, 2018〉는 1975년 그룹 퀸이 발표한 A night at the opera라는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이다.

영화는 영국 식민지 잔지바르 출신의 파록 불사라라는 이름의 20대 초반 젊은이가 1970년대 초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로 구성된 Smiles란 밤무대 그룹(드럼을 치는 로저 테일러가 치대출신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과 만나는 순간부터 1985년 Live Aid 공연에서 전세계 20억을 사로잡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시간을 다룬다. 라미 말렉이 분한 파록 불사라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로 자처하여 그룹명도 영국에서 두 번째의 여왕이라는 의미로 재탄생하였으며, 수성(水星)이자 연금술을 창시한 그리스 신화 속의 헤르메스에 해당하는 머큐리로 개명하였다. 아무리 봐도 닮지 않은 배우가 익숙한 역사적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보기에 괴롭다. 뻐드렁니를 어쩔 줄 몰라 하며 꼭 입맛을 다신 후 말을 시작하며 별다른 연기적인 과업(이를 테면 감정의 굴곡이나 갈등의 해소없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스토리텔링)없이 판토마임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 퍼포먼스와 무브먼트에 과잉집중하여 가면을 쓴 듯한, 그 자신도 이집트계 핏줄인 라미 말렉의 연기는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곡 가깝게 수록된 넘치는 명곡의 향연은 그의 웃는지 우는지 조차 모를 돌출된 광대뼈와 치아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프레디 머큐리의 환생처럼 그의 사소한 습관까지 충실하게 재현해 낸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가 포디엄이 없는 마이크를 들고 박진감 넘치게 무대를 활보하게 된 배경, 보헤미안 랩소디가 탄생할 당시의 뒷이야기(그가 두드리던 피아노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Hey Jude를 작곡할 당시 실제 이용했던 바로 그 건반이다), 평생의 연인 메리 오스틴과 결별(법적으로는 그러하였지만 실제로는 인생 끝까지 함께 하였다)하고 양성애자에서 동성애자로 변하는 계기, 오스틴을 위해 작곡한 Love of my life, 브라이언 메이의 건의로 이루어진 We will rock you의 웅장한 발딛음 소리, Live Aid를 위해 다시 뭉치는 네 명의 이야기는 약했지만 흥미로웠다(실제로는 공연 직전이 아닌 그 전 해에 재결성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란 원래는 체코 민족의 광시곡을 의미하지만, 그 숨은 뜻은 각각 사회통념을 벗어난 예술가가 작곡한, 장르, 무드, 템포를 달리한 감정의 폭발로 읽혀야 한다. 완고한 시대에 세상 두려울 것 없이 홀로 맞섰던 고집불통 음악인의 항거는 뒤를 돌아보며 스스로 조심하는 나약한 요즘 한국인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후련한 사이다일 것이다. 관객 600만명을 돌파하는 영화에는 다 이유가 있다.

웸블리구장의 10만 관중 앞에서 퀸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실제로는 맨 처음 촬영분이라고 한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무렵(수학 재시 때문에 녹화방송을 보았다)인 1985년 7월 13일은 1984년 말, 밥 겔도프에 의해 영국에서 시작된 Do they know it’s Christmas?가 미국에서 건너가 이듬해 3월에 We are the world로 전 세계를 뒤흔든 지 몇 개월 후 16시간 동안 영국과 미국을 연결하며 생방송된 코스모폴리타니즘이란 이름으로 자선공연이 거행된 뜻 깊은 날이다. 이교도이자 이방인, 사회부적응자, 소수집단을 벗어나려 했지만 스스로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돌아온 탕아 프레디 머큐리가 전설이 되어 버린 바로 그 순간 나는 까닭 모를 눈물이 났다. 33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도 그랬다. 제2의 여왕인 퀸이 아닌 오직 하나밖에 없는 퀸 폐하(second가 아닌 second to none)에게, 프레디 머큐리로 살고자 했던 파록 불사라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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