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도 외면 악결과만 주목하는 `의사 순장시대'
선한 의도 외면 악결과만 주목하는 `의사 순장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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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0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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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사회 창립 103주년 - (특집) 추락하는 의사 인권, 어디가 끝인가
조보영 서울시의사회 공보이사(의사신문 편집인)

과거 `순장'은 신분 높은 사람이 사망할 때 그의 노비나 신하, 더 나아가 부인들을 무덤에 함께 묻는 풍습으로 신분제 사회의 대표적 악습 중 하나로 꼽힌다.

`순장'이 악습인 이유는 문화적 풍습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풍습과 문화, 법제도는 신하와 노비, 부인들에게 죽음을 강요했고 이는 현재 후손들에게 매우 기괴한 제도로 여겨진다.

다만, 한반도에서 삼국시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한 `순장'이라는 풍습이 최근 의료계에 되살아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0월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이 진료의사 3인을 법정구속하며 의료계는 뒤집어졌다.

의료계는 오진으로 숨진 8세 환아의 애도를 표하는 한편, 환아의 죽음과 함께 의사 3인을 전격 법정 구속하는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이는 의사들이 수없이 바라본 환자들의 사망이 본인들에게 실질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으며, 이와 더불어 환자 죽음이 곧 자신을 사회적으로 `순장'시켜버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서 기인했다.

바야흐로 의사들에게 `의사 순장시대'가 도래했다.
인천 분만 중 여의사 구속,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 의료진 구속, 성남지원 3명 법정 구속 등 각종 의료인 구속 사건들과 더불어, 봉침사망 환자 관련 억 단위 민사소송, 수술실 CCTV 설치, 여러 의사폭행 사건들까지 의사인권 잔혹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한 의도의 한국 의사들은 언제까지 잠재적 범죄자가 돼야하는 가. 선한 의도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과정과 그 열정은 외면한 채 악결과만 주목하는 일부의 재판부와 몰지각한 사회가 우려스럽다.

한편, 최근 여러 의료분쟁에서의 의사책임 강화가 `방어진료'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어진료'는 궁극적으로 과잉진료나 진료기피 등을 유발해 환자진료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 9월,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이 조합원 97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약 20%의 회원이 “의료인의 책임 강화로 고위험 의료행위를 중단했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한탄스러운 점은 `진짜 의사'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의료인들은 현재 수술과 환자가 두려우며, `방어진료'를 고심하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의사들의 고민이 의사들만의 문제일까. 본인은 이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의사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길연 경희의대 교수는 언론을 통해 “미국의 경우, 방어진료로 인해 한해에 650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방어진료'로 인해 고위험환자의 치료가 제한되고, 사망률이 높은 환자에 대한 과도한 또는 미흡한 치료가 이뤄지며, 환자와 의사간 불신이 조장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전체 의료비의 약 30%가 `방어진료'로 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80%의 의료진은 `방어진료'를 하는 실정이라고 알려진다.

영국 가디언지 발표 설문에서도 의사들에 대한 법적처벌이 심해진다면 86%의 의사들은 `방어진료를 강화하겠다'고 응답했고, 절반의 의사들은 `고위험 환자들을 피하겠다'고 답변했다.

대한민국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의사인권 확립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도출되지 못하면, 한국에서도 미국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생겨날 것이다.

다만 본인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악순환의 고리가 이미 형성돼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대책은 의사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분석과 재발방지를 위한 저수가, 노동착취 구조의 의료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특히 전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치권은 의사 직업수행의 안정성 보장과 소신 진료환경 보장을 위해 고심해봐야 하며, 사법부는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대법원 양형 기준을 제정, 민사적 과실이 형사적 과실로 귀결되는 현상이 없도록 근본적 대책을 내놔야한다.

이와 더불어 복지부는 응급실 12시간 이상 연속근로 금지, 의사 1인당 당일 진료 환자 수 제한 등 의료진의 적정근로 시간 및 최선진료 근무환경을 마련하고, 모든 사태의 근본적 원인인 저수가도 개선해야 한다.

반복적인 `의사인권살인'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의사들의 자율적인 진료환경이 조성돼 안정적이고 밝은 의료계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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