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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복서 최요삼은 의사 때문에 죽었나?
비운의 복서 최요삼은 의사 때문에 죽었나?
  • 의사신문
  • 승인 2018.11.26 09: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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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20〉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최요삼을 아는가? 복서 최요삼을 안다면 나름 복싱 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냥 복서보다는 비운의 복서로 더 잘 알려진 최요삼. 복서로서의 그의 인생은 하나의 드라마와 같았다. 그는 링 위에서 승리하고 링 위에서 쓰러졌고, 유족들은 의료과오소송을 제기하였다.

과연 그는 의사 때문에 죽었을까? 이런 다툼이 있었던 것은, 최요삼이 쓰러진 후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였다는, 이른바 `불성실한 진료'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불성실한 진료라 하는지, 그리고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법이 어떻게 판단하였는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최요삼의 불꽃같았던 삶을 살펴보자.

최요삼은 1973년 전북 정읍시에서 태어나서 부모와 함께 서울로 이주한 뒤, 중학교 2학년 때 복싱을 시작하였다. 21살에 프로 권투 선수로 데뷔한 뒤 1년 만에 한국 라이트플라이급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몇 번의 실패를 딛고 27살이었던 1999년 턱뼈가 깨지는 혈전 끝에 드디어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5년 후 32살이란 나이에도 체급을 올려 WBA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은퇴를 선언하였다가, 35살이었던 2007년에 재도전을 선언하고, 그 해 9월에 두 번째로 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올랐다.

그리고 그 해 성탄절에 벌어진 1차 방어전에서 최요삼은 도전자인 헤리 아몰에 대하여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경기 종료 10초를 남겨두고 도전자의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턱을 맞고 다운되었다. 다시 일어나서 경기에 임하였고 결국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경기 종료 직후 실신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뇌사판정을 받았고, 결국 경기 후 9일 만에 향년 36세로 사망하였다.

사망 후 유족의 동의로 그는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 생명을 주었고, 미혼이었던 그가 남긴 일기장에는 한 여인만을 향한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후 힙합그룹인 리쌍은 `챔피언'이라는 곡을 만들어 최요삼에게 추모 헌정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왜 의사의 불성실한 진료가 문제되었던 것일까?

위 경기를 개최한 한국권투위원회는 피고 S대학병원과 권투경기를 개최할 때마다 응급구급차와 경기참관 지정의사를 보내주는 내용의 협약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최요삼이 사망한 그 경기에는 피고 병원의 의과대학교수인 A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A가 경기 당일에 사정이 있다고 하여, 피고 병원은 경험이 일천한 전공의 B를 지정의사로 파견하였다.

최요삼이 도전자의 마지막 펀치를 맞고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을 때, 위 경기의 지정의사였던 전공의 B가 경기참관 지정의사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가 문제되어, 최요삼의 유족들이 피고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첫째 무엇을 불성실한 진료라고 하는가? 진료계약은 위임계약이고 위임계약에서 부담하는 채무는 결과채무가 아니고 수단채무이므로, 의사가 최선을 다하여 진료하였다면 불성실한 진료는 문제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의사가 `최선을 다하여' 진료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말하면, 의사가 `현재의 의학지식에 비추어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여' 진료한다는 것이고, 더 쉽게 말하면, 동료의사들만큼의 주의를 기울여서 진료한다는 것이다. 최신 수술기법으로 수술하지 않았다고 하여, 의학저널에 실린 실험적 진료방법으로 진료하지 않았다고 하여 문제되지 않는다.

둘째 그러면 최요삼이 불성실한 진료를 받은 것인가? 이에 대하여 법원은, ① 피고 병원이 원래 경기참관 지정의사였던 A에게 사정이 있어 경기참관이 곤란하였다면 적어도 그와 비슷한 임상경험과 능력을 갖춘 의사를 지정의사로 파견하였어야 함에도, 응급상황에 대한 임상경험이나 능력면에서 A에 크게 못 미치는 정형외과 전공의 B로 하여금 경기참관 지정의사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파견하였고, ② 최요삼이 머리에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어 호흡과 맥박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다가 급성외상성 경막하혈종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B는 만년필형 손전등으로 망인의 동공상태를 몇 차례 확인하고 피고 병원으로서의 이송 중 구급차 안에서 목을 뒤로 젖힌 것 이외에는 기도확보, 산소공급이나 뇌압강하를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이어서 법원은 ③ 피고 병원은 권투경기를 염두에 둔 응급의료기구나 응급의약품을 갖춘 구급차가 아닌 일반 구급차를 파견하였고, ④ 그마저도 구급차 운전사가 전공의 B와 함께 경기를 관람하느라 미리 이동경로를 확보하지 않은 탓에 구급차가 제때에 출발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울아산병원이나 건국대학교병원을 두고 굳이 먼 거리의 피고 병원으로 이송하였음에도 도착 즉시 응급처치를 받도록 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였다.

결국 법원은, 권투경기 중 머리에 중상을 입어 의식을 잃은 최요삼에 대한 응급처치를 함에 있어 피고 병원이 최선의 조치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고, 심지어 그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일반인의 입장에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은 것이므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셋째 그렇지만 법원은 피고 병원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최요삼의 사망에 대한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피고 병원 의료진이 제대로 진료를 못 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제대로 진료하였다 하더라도(즉 위 ①부터 ⑤까지를 모두 제대로 하였다 하더라도) 최요삼을 살릴 수는 없었다. 따라서 피고 병원은 최요삼의 사망에는 책임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은 피고 병원의 의료진이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으므로 피고 병원은 위자료로서 최요삼에게 1000만 원, 그 아버지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면 최요삼의 이야기를 세 줄로 요약하겠다. 최요삼은 의사 때문에 죽지 않았다. 다만 불성실하게 진료한 병원은 그에 대한 책임을 졌다. 불성실한 진료라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는 방법은 이것이다: “남들만큼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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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희 2018-11-26 23:10:19
제 네이버 블로그에 옮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