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호른의 영웅 기리며 빙하계곡 지나 직벽 올라
마터호른의 영웅 기리며 빙하계곡 지나 직벽 올라
  • 의사신문
  • 승인 2018.11.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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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호른(Matterhorn) 등정기 〈중〉
서 윤 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넘나들던 그는, 보기보단 스위스 쪽 능선(훼른리릿지)이 이탈리아 쪽 능선(리옹 릿지)보다 난이도가 덜하며, 그 이유 중에 하나로 바위면이 스위스 쪽으로 향하고 있어 등반하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당시에는 대단한 발견이었다.

프랑스 가이드, 스위스 가이드와 팀을 꾸린 윔퍼는 카렐과 거의 동시에 체르마트(스위스)와 브로일(이탈리아)을 출발하였으나 행운의 여신은 윔퍼의 손을 들어주었다. 때는 1865년 7월14일, 여덟번 째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하산 길에 7명의 등정자 중 4명이 추락사하는 바람에, 초등의 영광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비운의 산악인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 샤모니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윔퍼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그곳 산악인의 묘지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한편 카렐은 정상직전에 윔퍼의 등정을 확인하고는 등정을 포기한 채 하산하였으나, 주위의 권고로 3일 후 다시 올라 2번째로 정상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그는 산악인으로서 가이드로서 철저한 책임감과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산악영웅의 칭호를 받게 된다.

말년에 마터호른(체르비노)을 고객과 함께 등정중 악천후를 만났으나 고객을 안전한 곳까지 하산 시킨 후 숨을 거두는 철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더욱 더 많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칭송을 얻게 된다. 이래서 인생을 새옹지마(塞翁 之馬)라 하는 모양이다.

초등 후 많은 산악인들이 이 두 곳의 릿지를 이용해 등정을 계속하고 있으나 여전히 일년에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쉽지 않은 코스이다. 초등 150주년을 기념하여 훼른지 산장(3260m)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가격을 인상하는 바람에 전보다는 이탈리아 쪽을 찾는 산악인이 눈에 띄게 많아 졌다고 한다. 경비를 무시하더라도 정상등정의 출발점이 될 카렐산장(3800m)의 높이가 스위스 쪽 보다는 유리하여 우리 팀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탈리아 쪽을 택하였다.

■2018년7월31일
맑은 아침에 우리 팀은 이곳 알파인센터 앞에서 예약된 지프로 오렌지산장(2800m)으로 출발하였다. 마을에서 구불구불한 차도를 따라 힘 좋은 지프는 약40여분 만에 산장 앞에 내려주었다. 저 아래 마을 밑으로 길게 뻗은 발트르낭스계곡을 바라보며 한 발 한 발 정상을 향한 시동을 걸었다. 짧은 초원 지대를 지나 2900m 능선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카렐'의 추모비가 보였다. 61세까지도 전문가이드로서 고객을 인도하던 그의 열정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초원 지대를 지나, 이제 본격적인 암능 산행이 시작되어 5명이 두 팀으로 나뉘어 안자일렌(anseilen-서로의 몸을 자일로 연결)한 후 조심스레 바위턱을 넘는다. 멀리서 산양 한 마리가 물끄러미 우리를 주시한다. 고국에서는 귀하디 귀한 산양이지만 이곳에서는 흔히 만날 수 있어 친숙하다. 몇 마리 생포해 설악에 풀어 놓으면 좋으련만. 이제 눈덮힌 작은 산을 7부 능선에서 트래버스(횡단)하여 리옹언덕(col du lion)에 올라서야 한다. 발을 헛 딛으면 수 백 미터 아래의 빙하계곡으로 추락하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언덕 공터에서 간단히 행동식을 들고 이제는 본격적인 주봉(主峰)에 이르게 된다. 쉽지 않은 암능을, 그동안 훈련한 팀워크로 넘고 또 넘는다. 북한산, 대둔산 그리고 설악에서 땀을 흘린 덕에 어렵지 않게 전진을 계속한다. 전 대장의 뛰어난 리더십 덕분이기도 하다. 드디어 산장 바로 밑의 25미터 직벽밑에 섰다. 2017년에 이곳에서 추위와 폭설로 고정 로프가 얼어 무척 고생했던 기억에 바짝 긴장이 되나 좋은 날씨에다가 반복된 훈련 덕에 힘들이지 않고 올랐다. 전대장이 벽을 넘는 나에게 하이 파이브를 외친다.

우리들 뒤에서 양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찬 장애인이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며 힘겹게 오르고 있다. 모두들 박수와 환호로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4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인산장인 이곳은 가스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 2017년 여름에는 폭설로 산장에 고립되어 식량부족으로 다른 등반객이 남기고 간 여러 음식을 찾아 허기를 채우던 씁쓸한 기억에 혼자 웃음을 짓는다. 더구나 비행기 날짜에 맞추느라, 눈에 덮여 길까지 없어진 암릉을 탈출하느라 고생한 일은 한마디로 악몽이었다. 일, 이층 침상이 만원으로 3층으로 올라야 하는데 바위타기 만큼이나 힘들다. 물을 끓여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좋은 날씨를 기대하며 침상에 오른다.

■2018년 8월1일
새벽 4시반의 출발시간이 예전에 없던 비로 6시반으로 연기되었다. 오늘의 날씨는 오후 3∼4시 사이에 약간의 비가 오리라는 예보가 있으나 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대부분의 등반객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상에 다녀올 요량으로 불필요한 물품은 한곳에 모아두기로 하였다. 약간의 물기로 젖은 바위는 등반하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산장 뒤 바로 직벽을 올라 산등성이를 따라 고정로프가 설치된 구간을 따라 트래버스 하였다. 둘로 나뉜 앞 팀인 우리는 좌측으로 난 직벽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한참 후 이 사실을 알고 뒤돌아 오니 뒷 팀은 제대로 고정쇠사슬 로프를 오르고 있었다. 30여미터의 직벽을 오르자 제법 긴 설능(雪陵)이 나타났다. 크램폰을 착용하여 미끄럽지는 않으나 한발 한발 앞으로 치고 나가야 했다. 이때부터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한다. 마터호른 산신이 만만히 올려주질 않으실 모양이다. 엷게 해가 비추는 듯 하다 흐려져 눈이 날린다. 설능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지막 하강을 한 후 이 구간의 크럭스(Crux-가장 힘든 곳)인 오버행(Overhang-항아리모양)바위 밑에 도달한다. 이 곳에도 고정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으나 천여미터 낭떠러지위에 몸이 노출되므로 고도감이 대단하다.

깊은 심호흡 후 허리를 뒤로 저치며 한발 한발 사다리를 올라 정상능선에 올라섰다. 그토록 그리던 철제 십자가가 보인다. 마음속에 성호를 긋는 순간, 앞서가던 전 대장이 `전기 조심, 전기 조심'하고 소리친다. 나에게도 손, 어깨, 옆구리에 정전기가 때린다. 몸이 움칠움칠 반복된다. 4478m의 고도에서 낮게 깔린 구름끼리 충돌하여 정전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젖은 장갑을 벗고 손, 발, 옆구리를 때리는 정전기로부터 일시 해방이 되자 나는 잠시 십자가를 향해 고마움의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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