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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숭숭 난 새 우산, 병원양수도계약서 〈상〉
구멍 숭숭 난 새 우산, 병원양수도계약서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8.11.0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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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7〉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예전 대학생 시절에, 어떤 신문 광고를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까지 필자는 종교기관은 속된 것과는 거리가 먼, 성스러운 곳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종교기관 양수도, 즉 판매 광고가 버젓이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신도수 OO명, 헌금액 OO만원”이라는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그것은 그 종교기관이 그 광고를 게재한 어떤 종교인의 사유물이라는 인식 하에서 가능한 광고였다. 세상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약간' 다르다는 정도의 인식밖에 없던 법대 학생에게, 당시 위와 같은 광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종교기관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많이 변화하여 위와 같은 노골적인 광고도 줄어들었고, 세상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이가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직업상 신기한 일들, 황당한 일들을 자주 보고 듣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병원을 사고 판다? 대학생 시절의 필자와 같은 순박한 사람이라면 병원이 거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자신이 만든 예술작품을 사고 팔 수 있듯이,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 의사도 자신이 일군 병원을 당연히 사고 팔 수 있다. 게다가 소규모 종교기관과 그를 대표하는 종교인은(=종교인의 영성(靈性)은) 분리가 어렵지만, 의료기관과 그곳에서 진료하는 의사는 충분히 분리가 가능하다.  최고법인 헌법에서 능력주의와 사유재산제를 선언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심혈을 기울여 일군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제대로' 팔아야 한다. 당연히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병의원 관련 사건을 통하여 병원양수도계약서를 보게 될 때면, 대부분은 “구멍 숭숭 난 우산”을 보는 심정이다.

이전 글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 사회의 신뢰도는 매우 낮으며, 우리 사회에서 익명인 관계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와 서로 알게 되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단 관계를 맺은 상대방에 대하여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행위를 큰 실례로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못 믿으면서도, 서로 못 믿기 때문에 이뤄지는 행위인 계약서의 작성에 소극적이다. 또한 필요에 의하여 작성하게 되는 경우에도, 그 내용에 대하여 치열하게 협의하는 것을 역시 꺼린다.

게다가 병원 원장님들은 대부분 점잖은 분들인데다가, `의사 바닥이 좁기' 때문에 병원양수도 후에 나오게 될 평판에 신경을 써서인지, 대부분의 병원양수도계약은 `양반이 젓가락으로 돈 집듯이' 이뤄진다.

그래서 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는 병원양수도계약에 관하여 알아보겠다. 먼저 이번 글에서는 원장님들께서 통상적으로 체결하시는 병원양수도계약서의 문제점을, 다음 글에서는 바람직한 작성 방법에 대하여 살펴본다.

먼저 introduction이다. ① 계약이 무엇인가? 법률주체 사이의 합의이다. ② 계약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 합의의 이행시 또는 불이행시의 처리방법이다. ③ 구두로도 계약이 성립되는가? 당연히 성립된다. ④ 그러면 계약서를 왜 작성하는가? 구두합의로는 추후 그 합의여부나 해석에 관하여 분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case study이다. 위에서 예시한 계약서는, 인터넷에 떠다니는 평범한 병원양수도계약서이다. 보통 여기에 “특약사항”이 약간 들어가고, 양도인과 양수인이 각각 서명하고 날인하여 계약서가 작성된다. 그러면 이것으로 충분한가? 이것으로 한 의사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일군 그 병원의 모든 것이 양수도될 수 있는가?

앞서 본 것과 같이 계약의 핵심 내용은 합의의 이행시 또는 불이행 시의 처리방법이다. 그래서 통상적인 계약의 주요 내용은 보통 이렇다. ① 합의의 대상, ② 합의의 이행시에 필요한 내용, ③ 합의의 불이행시에 필요한 내용, ④ 기타 필요한 내용.

이미 파악한 분도 있겠지만, 이 예시 계약서의 내용에는 위 내용 중 `일부'밖에 없다. 예를 들어 ①번 내용으로 양수도 내역, ②번 내용으로 양수도할 부동산, 양수도대금, 양도시기, ③번 내용으로 계약금해제, 중재 등만 기재되어 있다. 이마저도 내용이 너무 부실하여, 마치 정장 상의를 입었는데 정장 바지는 입지 않은 모양새다. 향후 발생할 분쟁이 벌써 눈에 보인다.

다음 글에서는 세 번째로 solution, 즉 바람직한 병원양수도계약서 작성 방법에 대하여 `변호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자세히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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