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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한라산 돈내코길<4ㆍ완>
5월의 한라산 돈내코길<4ㆍ완>
  • 의사신문
  • 승인 2010.07.1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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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세오름대피소에서본 까마귀<사진 위>와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길<사진 아래>
인동초 꽃과 함께 시작한 돈내코길은 한여름의 밀림을 지나 송화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초봄으로 계절을 거스르고 있었습니다.

남벽의 기암괴석 너머에 있을 백록담을 바라보며 윗세오름대피소로 향합니다. 오른쪽의 웅장한 바위벽을 바라보며 걷는데 앞서가던 사람들이 모여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쪽어딘가를 가리키며 원숭이를 찾아내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매도 찾아내고 웅크리고 있던 곰도 찾아냅니다. 하늘과 꽃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온 듯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행복해졌습니다.

나는 여전히 발아래의 작은 꽃에 취해 있었습니다. 올라오면서 보지 못했던 노란 민들레가 자주 보이고 양지꽃도 흔해졌습니다. 고개를 들면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없습니다. 넓은 개활지가 펼쳐져 눈이 시원합니다. 문득 오른쪽을 바라보면 백록담을 덮은 하늘이 편안합니다.

방아오름샘을 지나 서북벽통제소를 지나고 보니 저 앞 너른 조리대밭 경사지에 누군가 툭툭 던져놓은 것처럼 보이는 바위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아까 보았던 일행들이 어느새 앞서와 있었습니다. 설문대할망이 가지고 놀던 공깃돌이랍니다. 조릿대가 온통 바위를 감싸며 자란 것으로 보아 편안하게 여기서 공기놀이를 하던 할망은 오래 전에 어디론가 떠난 듯합니다.

윗세오름대피소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은 말하자면 한라산 정상 인근의 삼거리입니다. 어리목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영실에서 올라온 사람들 그리고 이젠 돈내코길로 올라온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한숨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곁을 맴도는 까마귀도 예전보다 더 많았습니다. 시내의 공원에서 모이를 던지면 비둘기가 모여들듯 여기서는 까마귀들이 모여들어 먹이싸움을 벌입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어리목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영실까지는 3.7킬로미터, 어리목까지는 4.7킬로미터인데 영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또 먼 길을 걸어야 합니다.

어리목길은 전체가 말끔히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흙과 돌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다는 느낌보다는 인공적으로 잘 정비된 공원길 같은 느낌이 오는 길입니다. 윗세오름 인근의 길은 대부분 나무와 화산석으로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흙을 밟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길은 적어도 숲이 시야를 가리기 전까지는 저 먼 곳에 펼쳐져 있는 수평선이 있어 즐겁습니다. 늘 눈앞 가까이 있는 것만 바라보며 살던 도시인이 이렇게 탁 트인 전경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참으로 눈이 시원해지는 길입니다.

화산석으로 포장된 길에는 돌 사이로 어느 새 조릿대가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그를 따라 풀들이 자라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십여 년 전에 보았던 생채기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습니다.

이윽고 계단이 시작됩니다. 짙푸른 나뭇잎이 하늘을 가리고 공기는 축축합니다. 다시 초봄에서 한여름의 밀림 속으로 들어섭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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