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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과 어려운 길, 그 사이에서 
쉬운 길과 어려운 길, 그 사이에서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8.10.29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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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안전'과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 중 우선순위를 고르라고 한다면 선뜻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형화돼 가는 현대 도시에서 각종 범죄가 지능적으로 발전하면서 범죄 예방은 중요한 사회 이슈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 시대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 문제 또한 21C 들어 가장 핫한 논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84년 조지오웰의 소설 `빅 브라더'에서는 미래 사회가 권력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되고 통제되는 모습을 그린다. 소설이 출간되고 3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이 같은 손쉬운 통제 사회는 오히려 가속화 되는 모양새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을 시작으로 수술실 CCTV 설치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시범 사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환자에 대한 범죄 예방'을 위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수술실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서 의식이 불분명한 환자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취지인 것. 사실 범죄예방은 CCTV 설치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간단한 방법만을 추구하다보면 또 다른 더 큰 문제점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마치 사회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한 `빅 브라더'의 사회처럼 말이다.

예컨대 CCTV 설치로 인한 의료진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 이로 인한 수술 집도 중 집중력 저하, 데이터 유출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또한 수술실 범죄 예방 이외에도 의료사고에 대한 소송의 빌미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벌써부터 각종 오·남용 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중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술실은 일반적으로 CCTV가 설치되는 개방적 공공장소가 아닌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생사의 문턱이다. 누구나 누군가로 부터 감시당하고 있다는 압박감에서 심한 긴장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고 이 같은 환경 속에서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수술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한번쯤 주목해 볼만하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분명 달콤한 유혹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수술을 집도할 의사보다 수술을 받는 환자가 더 많다는 점은 쉬운 길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책을 수행하는 집권자 입장에서도 쉬운 길을 가는 것이 표를 얻기에 더 수월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이번 시범사업이 득보다 실이 많은 실패한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범죄예방이라는 눈앞에 바로 나타나는 직접적 지표를 위해 의료 질 저하라는 숨어있는 장기적 대의를 포기하는 조삼모사 식 권력이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사회 안전(환자 범죄예방)'과 `개인 사생활 침해(의료진 인권 침해)' 문제 중 우선순위를 골라야 한다. 단 이번 질문에는 의료 질 저하라는 생존의  문제까지 더해져 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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