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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후
당신의 노후
  • 의사신문
  • 승인 2018.10.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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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49〉

`당신의 노후'는 박형서의 소설이다. 작가는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80세가 넘는 노인들 천지인 초고령 사회를 지금부터 14년 뒤, 그러니까 2032년으로 상정해놓고 그때 일어날 수 있는 안절부절을 그리고 있다.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극심한 증오, 배척,
“그들의 무임승차를 벌충하기 위해 젊은이들의 지하철 요금은 어지간한 밥 한 끼 값을 넘은 지 오래다. 값싼 고령 인력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도 갖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의 노후', 박형서)

“연금이 저축해도 돈 찾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생산인구 소득을 거둬 비생산인구들에게 나눠주는 거야, 요새 청년 세 명이 노인 일곱 명을 부양하고 있어. 청년들이 100만 원씩을 벌면 너희 늙은이들한테 쪽쪽 빨려서 집에는 대략 50만 원씩 가져간단 말이야. 그 돈으로 애인 만나 찻집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아 기르고 월세도 내야 돼.” (위와 같음)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기분 막 째져? 어제도 출근하다 보니 어떤 노파가 횡단보도를 점거하고는 5분 동안 건너더라고. 영락없이 지각을 해서 이사장님한테 꾸중 들었지 뭐야. 나라 전체가 그래. 사방이 꽉 막혀서 썩어가고 있어. 하는 일이라고는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게 전부인 주제에 당신들 대체 왜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거야!”(위와 같음)

이러한 분위기에 자연히 스며들어 비밀리에 ?그러나 버젓이- 시행되고 있는 국가 정책.

“적색 리스트에 오른 과다 수급자를 처리할 때 노령연금TF팀의 외곽 공무원들은 주로 `가능성을 높인다'고 표현한다.” (위와 같음)
소설 속의 국민연금공단은 그냥 국민연금공단이 아니다. 그것은 국정원 이상의 괴물로 등장한다. 공단은 연금수급자들을 관리, 사찰할 뿐 아니라 외곽 공무원들을 시켜 연금과다수급자들을 교묘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조직적으로 살해한다. 증거를 가능한 남기지 않지만 혹시 증거가 남더라도 수사는 흐지부지 죽음만을 확인하고 소리 소문도 없이 묻힐 뿐이다. 물론 국가의 공무(?) 수행이니까.

소설의 작품 해설을 쓴 이영광은 이 상황을 이렇게 평설한다.
“노인들은 국가의 적이고 사회유기체의 노쇠한 세포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외곽공무원들에게 애국심은 절대적 가치다. 이 사실을 모르고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일은 일종의 자살행위가 된다. 테베에 내린 재앙의 원인을 열렬히 찾고자 한 오이디푸스가 제 무덤을 제가 파는 아이러니의 희생자이듯, 장수가 일반화 된 사회에서 정성으로 연금을 붓는 일은 제 목숨을 노리는 킬러에게 돈을 내는 바보짓이 된다. 바보들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만 79세 비생산층, 연금 100% 수급 개시, 생산인구에 속한 자식이 없고 가족은 공무원 연금 수급자인 남편 하나, 요양원 장기 거주” 하고 있는 한수련의 남편 장길도는 바로 그 공단 외곽공무원으로 40여 년을 성실하고 우수하게 장기연금수급자 살해 제거업무에 근무하다 최근 퇴직하였다. 100% 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한 아내가 며칠 전 까지 자신이 일했던 연금 장기수급자 살해처리반의 작업 대상 리스트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장길도는 아내를 죽음으로부터 지키려고 나선다. 그는 아내를 부정수급자로 만들어 연금 대상자 명단에서 빼내어 생명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삶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신념의 분노는 도리 없이 좌절을 낳을 뿐, 아내의 목숨은 젊은 외곽공무원에 의해 정리된다.

“노인의 죽음에는 결국 늙음밖에는 이유가 없다. 노인의 죽음의 원인은 쓸모없는 노인 그 자체다. 죽음은 전후 맥락이 지워진 채 이렇게 산 자들에 의해 상투화되고, 체제는 주검 뒤에서 태연히 입을 다문다. 아래의 두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싸늘한 문장들이다. 선의 입으로 말하는 악의 목소리를 취함으로써 서술자는 죽음에 콘크리트를 덮은 국가의 합리화 논리에 아이러니의 칼날을 슬쩍 들이댄다.”는 이 싸늘하고 공포스러운 미래의 현실에 작품 해설가 이영광은 작가의 글 속에 담긴 작가의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들려준다.

“사람들이 상처받은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이러한 죽음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덕에 사회는 숨통을 트고, 한층 젊어진다.”

`당신의 노후'는 국내에서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소설가 그룹의 한 명인 46세 박형서가 2018년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늙음? 사회? 현실? 픽션? 마땅한 답을 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음을 일단 멈추기 위해 소설을 정의한다. `작가의 상상력 또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주로 허구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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