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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함의 차이 
신중함의 차이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8.10.07 2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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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싸움을 한다'로 대표되는 두 `신중파' 공명(제갈량)과 중달(사마의)의 특색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뚜렷하다.

공명은 뒤가 없음으로 기인한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신중함으로 볼 수 있으며 중달은 자신의 자리에 대한 보존 위험에서 기인한 신중함이었다. 즉 중달의 신중함은 무조건 이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매번 지거나 어이없게 지면 능력 의심으로 쫓겨날 위험이 있으니, 이기되 힘겹게, 지되 이해되게 하는 것이 중달의 지략이었다.

최근 의협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려, 문 케어 저지를 위한 비대위 구성안건이 상정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안건은 부결됐고 표면상으로는 최대집 집행부가 구사일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의협 집행부에 대한 신뢰와 믿음보다는 당장 대체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안건 부결의 주된 이유로 꼽히는 만큼 회원들의 불신과 불안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급함과 초조함으로 거사를 망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공명과 중달은 차이는 있지만 신중한 선택을 중요시 했다. 책임져야 할 식솔이 많아짐에 따라 자신의 선택에 많은 이들의 미래가 달려있으니 의협 회장이라는 자리의 신중함은 더 강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최대집 회장은 이번 임시총회에서 “투쟁은 내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협 회장 직에 나설 때부터 의사가 의사답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싸우다 기꺼이 투옥될 각오를 하고 있다”며 “그러나 의협 회장은 회원들을 보호하고, 성과물을 가져와야 한다. 아울러 나의 정치적 신념이 의협의 정책 결정에 주요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적어도 회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의파다”라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자신의 자리에 대한 안위와 눈앞의 이득만을 고려했다면 좀 더 강한 어조의 질타 및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벼랑 끝에서 이기기 위한 신중함보다는 많은 회원들의 눈에 비춰지는 자신에 대한 신중함일 수 있다.

맛있는 밥일수록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듯, 중요한 일일수록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일관된 지휘체계가 필수다. 현재 의료계를 엄습하는 문 케어를 비롯한 고질적 저수가, 의료일원화, 경향심사 문제 등 다양한 악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취임 5개월 만에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새로운 지휘체계를 통해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절대적으로 이기기 위해 신중을 기하는 최 회장의 전략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최대집 회장 또한 불안에 떠는 회원들의 마음을 헤아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의파로 단결된 의료계를 만들 수 있는 묘책을 세우고 보여지기 위한 신중함이 아닌, 이기기 위한 신중함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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