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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조정법, `자동조정개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료분쟁조정법, `자동조정개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의사신문
  • 승인 2018.09.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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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0〉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많은 의사들은 `의료분쟁조정법'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표정이 굳어지고, `자동조정개시'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한 마디 하려는 표정으로 변한다. 그 마음 진심으로 이해한다.

국회 입법과정에서도 “의료인이 방어적, 소극적으로 진료에 임하거나 응급환자 등 고위험군 환자를 기피할 우려”가 지적되었던 의료분쟁조정법의 자동조정개시 조항, 이것이 신설되어 시행된 지 2년 가까이 되어 간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통계가 축적되었으니 일차적 판단은 가능한 시점이 된 것 같다.

자동조정개시 조항 이외에도 의료분쟁조정법의 중요 내용들, 즉 어떤 경우에 조정이 개시되는지, 어떤 경우에 의사의 이의신청이 가능한지, 의사에게 유리한 내용은 무엇인지 등은 꼭 알아두어야 한다. 좋건 싫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이니 그 적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쳐다보기도 싫은 심정 이해는 하지만, 바로 그 심정 때문에 알아야 할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의료분쟁조정법의 중요 내용만을 체크해 보도록 하겠다(가독성을 위하여 신청인=환자, 피신청인=의사로 표현한다).

첫째, 어떤 경우에 조정이 개시되는가? 원칙적으로 환자의 신청 / 의사의 동의로 개시된다. 단 예외적으로 환자가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 1급(장애인등급제의 단계적 폐지로 이 부분은 곧 개정될 것이다)인 경우라면 자동개시된다.

둘째, 얼마나 많이 자동개시되는가? 먼저 자동조정개시 조항 시행 후 1년인 2017년 한 해 동안의 통계를 보면, 의료분쟁조정원의 전체 상담건수는 50,442건이고, 이 중 의료분쟁으로 볼만하다고 판단되어 접수된 건수는 2,284건으로 약 4.5%이다. 즉 95.5%는 의료분쟁으로 접수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접수건수 2,284건 중 절반 남짓인 1,240건에서 조정·중재가 개시되었는데, 이 중 의사가 동의하여 개시된 것이 879건, 자동개시사유에 해당하여 개시된 것이 361건이다. 자동개시사유 중 대부분은 사망(348건)이 차지한다(의식불명 10건, 장애1급 3건).
이렇게 보면 자동조정개시 조항 신설 후 (동의에 따른 개시 879건에 추가하여) 361건이 자동개시되었으므로, 건수가 크게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이전에는 사안이 중대하여 바로 소송으로 진행되었던 사망 사건들이, 해당 조항의 신설로 인하여 의료분쟁조정절차로 자동적으로 흡수된 결과이다. 환자가 사망하였는데 소송하지 않는 유족들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셋째, 어떤 경우에 의사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가? 만약 환자가 ① 의료사고를 이유로 병의원의 기물을 손상하거나, 병의원을 점거하여 진료를 방해하거나, 형법상 업무방해행위를 하거나, ② 의료인·환자 등을 폭행·협박하거나, ③ 조정신청을 하였다가 2회 이상 취하하는 경우 등에는 의사가 이의신청할 수 있다. 단 이의신청은 조정개시를 알리는 서류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해야 한다. 이의가 이유 있다면, 조정신청은 각하되고 조정절차는 끝난다.

환자나 유족이 병의원을 찾아와 의료인 등을 폭행·협박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이러한 환자나 유족이 조정신청을 한 경우 이의신청을 하여 조정절차를 바로 끝낼 수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동영상, CCTV 등을 증거로 잘 확보할 필요가 있다. 법정 밖에서는 목청 큰 놈이 이기지만, 법정 안에서는 증거 많은 놈이 이긴다.

넷째, 의료분쟁조정절차에서의 강제조사와 이에 대한 벌칙은 어떠한가? 많은 의사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는 부분이다. 아래에서 살펴보자.

의료분쟁조정원의 감정부는 의료사고의 감정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① 환자나 의사에게 출석진술 또는 자료나 물건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② 의사에게 진료행위 당시의 환자상태나 그 진료행위를 선택한 이유 등의 소명을 요구할 수 있고, ③ 의료사고가 발생한 병의원을 방문하여 문서나 물건을 조사·열람·복사할 수 있다. 물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이를 전부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어떠한가? 그런 경우에도 ①, ②번은 거부하여도 불이익이 없다. 그러나 ③번은 거부하면 불이익이 있는데, 방문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한 경우 1,000만 원의, 자료나 물건의 제출요구를 거부한 경우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과태료이므로 이른바 `전과'와는 무관하며, 복지부의 행정처분과도 무관하다. 방문조사를 사전에 알려주는가? 방문 7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나, 증거인멸이 우려되는 등 긴급한 경우에는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의료분쟁조정법에는 의사에게 유리한 내용은 전혀 없는가? 세상에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없지 않은가. 아래와 같은 내용들은 의사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의사의 비밀 보호: 조정위원, 감정위원, 조사관 등이 조정·감정 절차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는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고 있다.

② 자료의 열람·복사 제한: 환자는 감정서, 조정결정서, 조정조서 등과 “본인이 제출한 자료” 이외에는 의료분쟁조정원에 열람·복사신청을 할 수 없다. 조정절차는 비공개이고, 여기에서 언급되거나 제출된 자료는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의 또는 합의된 내용을 담고 있는 조정결정서, 조정조서는 당연히 열람·복사할 수 있다(만약 이를 제3자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경우, 합의로 쌍방의 비공개의무를 규정하면 된다). 자신이 제출한 자료 역시 당연히 열람·복사할 수 있다.

단 경우에 따라 의사의 과실 여부가 기재되어 있을 감정서가 걱정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정부를 구성하는 5인 중 의사 2인이 의무적으로 포함되고, 법조인도 2인이 포함되며, 감정부장은 반드시 의사가 맡도록 하고 있고, 외부 의사에게 자문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감정서 역시 의사의 과실 여부에 대하여 상당히 객관적인 판단을 전제로 작성되니 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③ 의사가 형사고소되어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인정된다면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처벌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의료분쟁조정법은 환자의 생명에 위험이 발생하거나 환자에게 장애 등이 발생한 경우만 아니라면, 양 당사자가 의료분쟁조정절차에서 합의에 이른 경우 환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기소할 수 없도록 특례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하여, 의사가 처벌받을 사안도 의료분쟁조정절차에서 환자와 합의하면 처벌하지 않는다.

소송과는 별개인 대안적 의료분쟁해결절차의 입법에 관하여 1988년 논의가 시작된 이래 2011년 입법이 되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거의 입법 직전까지 도달하였던 2002년에는, 의협과 병협의 공통된 입장은 `일정한 경우의 자동조정개시'보다 훨씬 더 나아간, “의료사고 피해자의 신속한 권리 구제와 진료 안정화를 위하여 `조정을 필수적으로 선행시켜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환자들이 조정제도를 무시하고 예전처럼 소송을 남발하게 되어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정부와 법조계는 환자의 재판청구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가능성을 지적하였고, 결국 입법에는 실패하였다. 그 후 16년, 현재 양측의 입장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급변한 의료환경의 서글픈 단면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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