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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 의사신문
  • 승인 2018.08.0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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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40〉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백발이 된 머리.
그 연세에도 물구나무를 계속 서시네요.
정말 괜찮으신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아들아! 내가 젊었을 때는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를 다칠까 겁이 났단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텅 비었으니
계속하고 또 하게 되는구나.”
아버지 윌리암이 아들에게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살도 많이 찌셨어요.
그런데 여전히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집에 들어오시니,
정말 왜 그러시는 건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아들아! 내가 젊었을 때는 팔다리가 무척 유연했지.
바로 이 연고를 써서 그랬단다. 한 상자에 1실링인 연고란다.
너도 한 상자 사 두겠니?”
현명한 아버지 윌리엄은 백발을 휘날리며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턱이 많이 약해져 비계보다 질긴 음식은 무리잖아요.
그런데 거위를 통째로 다 드셨더라고요.
세상에, 어떻게 그러신 건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내가 젊었을 때는 법을 공부해서
네 엄마와 매일 논쟁을 벌였지.
그 덕분에 턱 근육이 단단해져
이제껏 버티고 있는 것이란다.”
아버지 윌리엄이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눈도 예전 같지 않으실 텐데
콧등에 뱀장어를 세우고 균형을 잡으시다니
어쩌면 그렇게 재주가 좋으신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내가 벌써 세 가지 질문을 했으니, 이제 끝이야.
잘난 척은 그만하라고.
내가 하루 종일 네 얘기에 답을 해 주어야 하는 거니?
당장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계단 밑으로 걷어차 버릴 테다!”
아버지 윌리엄이 말했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베스트 트랜스 옮김, 더클래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5장 `애벌레의 충고'에서 앨리스가 애벌레의 요청에 따라 암송하는 시 `늙으셨군요 윌리암 신부님'이다. 이 시는 아동문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을 쓴 영국의 시인 로버트 사우디(Robert Southey)의 교훈시 `노인의 평안은 어떻게 얻었나 (The Old Man's Comforts and How He Gained Them)'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이 모방한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원본 시는 거의 잊혀지고 패러디한 시만 기억되고 있다. 캐럴의 패러디는 사우디의 원작이 담고 있는 경건한 교훈을 가볍게 했다. 그러나 엉뚱한 질문에 재치 있게 답하는 아버지 윌리암의 탄력 넘치는 재기발랄은 색다른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미국의 인기 작가 마틴 가드너 (Martin Gardner)는 그것을 `넌센스한 시구로 이루어진 의심할 나위 없는 걸작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텅 빈 머리와 물구나무, 1실링짜리 연고와 공중제비, 부부 논쟁과 튼튼한 저작능, 그리고 균형 잡기. 평범하여 사소하게 느껴지는 일상은 그 자체가 바로 활력의 늙을 힘이 아닌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처음 스무 해가 당신의 가장 긴 반생”이라고 말했던 로버트 사우디의 원작 시 마지막 두 연을 의역하며 맺는다.

“당신은 늙었습니다, 윌리엄 신부님, 젊은이는 소리쳤다 / 그리고 인생은 서둘러야 합니다. / 당신은 즐거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하시는군요! / 이제 제가 기도하는 이유를 말해주십시오 // 나는 즐겁네, 젊은이, 윌리엄 신부는 대답했다. / 주목하게 / 어렸을 적에 나는 나의 하나님을 기억했다! / 그리고 그는 내 나이를 잊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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