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소아 응급실 설치 '강제' 아닌 '선택' 통해 인센티브 부여해야
소아 응급실 설치 '강제' 아닌 '선택' 통해 인센티브 부여해야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8.08.01 0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의사회·중소병원협회, '현장 이해하지 못한 실효성 없는 제도' 비판

일정 규모 이상 응급의료기관에 '소아 응급환자 전용 응급실 설치'를 의무화하기 위한 입법이 추진되자 의료계가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실효성 없는 제도’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의료계는 '법을 이용한 강제적 규제'가 아닌 '선택을 통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로 가야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은 최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응급의료기관이 소아응급환자를 위한 응급실과 성인응급환자를 위한 응급실을 따로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응급의료기관의 경우에는 예외로 하되, 해당 의료기관은 소아환자에게 적합한 의료 환경의 조성을 위해 노력하도록 규정했다.

이 의원은 “현재 대부분의 응급실이 성인과 소아를 구분하지 않고 운영되다보니 소아환자가 중증의 교통사고 환자나 상해환자의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에 소아환자가 공포 또는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면역력이 약한 소아의 경우에는 응급실에서의 2차 감염도 우려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아는 원인진단과 치료방법, 장·단기 예후가 성인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응급실의 운영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서울시의사회와 대한중소병원협회는 응급의료기관이라는 대상의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시설이나 인력·장비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강제적으로 규제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은 "법안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응급실을 찾은 소아들이 공포와 정신적 충격을 겪은 케이스가 얼마나 되며, 소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수치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효율성 측면에서 의료계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로, 메르스 질병 확산에 따라 정부가 병의원의 병상 간격을 1.5m 늘리도록 한 정책과 이 법안이 다를 바 없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박 회장은 "응급실은 24시간 운영되는 시설로, 이 법안이 통과돼 소아·성인용 응급실로 분리하는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면 시설에 지출되는 비용과 장비, 환자들의 불편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이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응급실 인력 수급"이라며 "최근 응급실 의사 폭행으로 의사를 뽑기가 어려운데, 소아와 성인을 따로 만들게 되면 의료진 확보에 더욱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이와 함께 그는 "종별 의료기관의 현황을 살펴 본 후 병원 규모에 맞는 현실성을 갖춘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지 않냐"는 쓴소리도 했다.

국회의원들은 '좋은 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못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으면 죽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현장의 의견을 신중하게 듣고 법안을 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박 회장은 "소아응급실을 구축한 의료기관에 대해 소아 진료수가의 1.5배를 주는 등 격려를 위한 보상이 뒤따라야 소아응급실이 자연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선택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선 수가나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제도가 시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가 법으로 규제해 현장에 개입하는 것보다는 민간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며, 제도 자체에 경쟁력이 있다면 민간의료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소아응급실 신설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중소병원협회 역시 소아응급실을 특화시키는 곳에 한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이다.

중소병원협회 정영호 회장은 "중소병원의 응급실은 처치실이 오픈되지 않고 가려진 공간에서 처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소아환자가 정신적 충격을 받는 사례는 없다"며 "의료기관의 응급실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채 법안을 만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 회장은 "중소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는 성인 및 소아환자들은 중증보다 대부분 경증환자"라면서 "현재 의료기관에는 일반응급실도 있지만 응급의료기관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 외상센터, 어린이 응급센터 등이 운영되고 있는데, 중소병원까지 소아와 성인의 응급실을 나눠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보였다.

그러면서 "현재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달빛 어린이병원도 의료기관의 참여 저하 등으로 세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소아응급실 시설 확대를 강제로 할 수 있을 걱정이 앞선다"고도 했다.

정 회장은 "법안의 취지는 나쁘지 않지만 의료계 현실상 맞지 않는다"며 "차라리 소아 응급실을 특화하려는 의료기관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태규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의 취지를 잘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이 법안은 소아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발생되는 정신적 충격과 공포, 감염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소아응급실이 운영되고 있는 것을 확대해 소아들이 겪을 트라우마를 예방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안에 대상 기준과 인력·장비 등 필요한 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안이 나와 있지 않아 의료계에서 많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국회 보건복지위 및 복지부와 함께 예산을 마련해 의료기관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