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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급까지 ‘스프링클러 설치의무화’..."현장 이해못한 탁상공론"
의원급까지 ‘스프링클러 설치의무화’..."현장 이해못한 탁상공론"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8.07.16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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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현장과 현실에 맞는 효율적인 제도 필요"

밀양 세종병원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가 앞다퉈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등 소방설비 기준 강화에 나선 가운데 최근 소방청이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에까지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하자 의료계가 불만의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병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대부분 낮에만 병동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임대 건물에서 운영 중인 곳은 현실적으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의료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소방청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30병상 이상의 입원실을 갖춘 중소병원과 입원실이 있는 의원에도 스프링클러 설비 등 소방시설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소방청은 중·소규모의 병원이나 의원 등 모든 의료시설에 대해 스프링클러 설비와 자동화재속보 설비, 방염성능기준 이상의 실내장식물 설치 등을 의무화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이번 조치에 대해 '행정 위주의 편의적 발상에서 나온 악법'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간과한 채 마치 의료기관들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처럼 화제를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은 "의료기관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사고만 터지면 소방시설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극단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단어 하나만으로 법을 규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료기관에 ‘스프링클러’만 설치한다고 해서 소방대책이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마치 스프링클러만이 화재사고의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며 “이런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박 회장은 "의원급 의료기관 중 5개 미만의 병실을 갖춘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낮에만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만일 화재가 났을 경우 환자를 데리고 나오면 되는 문제"라며 "자기 건물이 아닌 임대건물에서 운영하는 회원들도 많은데 언제 이전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천만원~억단위의 비용을 들여 스프링클러 설치를 하라는 것은 결국 병원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기관들의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스크링클러 의무화는 비용상 어려움은 물론, 매일 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의 특성상 공사를 진행하려면 장기간의 환자진료에 차질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와 함께 박 회장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의 병실 운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몇 십 년이 됐다. 또한 의료인들은 병의원 개설 시 기존 소방법에 맞춰 시설을 갖췄고 화재예방을 위한 교육도 받아왔는데, 그동안 해왔던 소방훈련은 무엇이었냐”며 정부를 향해 되물었다.

그러면서 "대형건물이나 대형병원, 컨트롤하기 어려운 정신질환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는 곳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의원급까지 대상을 확대해 규정하는 것이 옳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사건사고의 예방이 아닌 행정 편의적으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면 결국 더 많은 불편과 부작용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며 "탁상공론이 철저히 지양돼야 하는데도 아직도 의료 현장을 모르는 상태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 답답할 따름"이라고도 했다.

의료기관과 아무런 논의 없이 탁상공론식 법령을 만든 뒤 ‘따라야 한다’라는 식으로 의료기관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 회장은 “최소한 제도를 만들고 공표하기 전에 의료계와 충분한 대화를 가진 뒤 현장탐방을 통해 예산을 구축하고, 의료기관 형태에 맞는 효과적인 대안을 계획한 후에 제대로 된 제도를 세워야 했다. 그리고 이것이 정부와 소방당국의 역할이지 않냐”며 “현장과 현실에 맞는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지 못한 소방정책이 아쉽다”는 뜻을 전했다.

한편, 현재 스프링클러는 종합병원 및 병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6층 이상 바닥면적 합계가 600㎡이상, 요양병원과 정신의료기관은 4층이상으로 바닥면적이 1000㎡이상일 경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단다. 단, 요양병원 및 정신의료기관의 경우 바닥면적 합계가 600㎡미만인 경우에는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도 인정해주고 있다. 

이번 법령 개정을 통해 바닥면적 합계가 600㎡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과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간이스프링클러를 갖추도록 해 입원실을 갖춘 의료기관은 무조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소방청은 기존 건축이 완료된 의료기관은 건물구조 및 안전성 등의 문제로 간이스프링클러설치를 인정하되 3년 유예기간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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