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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학대상 수상 이봉식 펜실바니아대 교수
연세의학대상 수상 이봉식 펜실바니아대 교수
  • 김기원 기자
  • 승인 2010.05.19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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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대는 지난 8일 연세대학교 창립기념일을 맞아 동창재상봉 행사를 갖고 올해 연세의학대상 학술부문 수상자인 노재윤 교수와 봉사부문 수상자인 이봉식 교수에게 각각 시상하고 공로를 치하했다.

1969년 연세의대를 졸업한 노재윤 교수는 현재 미국 코넬대학교 웨일 의과대학에 재직중이며 1964년 연세의대를 졸업한 이봉식 교수는 펜실베니아대학교에 재직중이다.

연세의학대상은 지난 1996년 처음 제정된 상으로 연세의료원의 창립이념인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고 국내외 의학을 선도하는 의학연구 활성화에 큰 공적을 남긴 사람에게 시상하고 있다. 다음은 수상자중 한사람인 이봉식 펜실바니아대 교수와의 인터뷰다.

[편집자 주]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 의대학생들의 모임인 V.V(Veneratio Vitae) 클럽이 있었다. V.V 클럽은 토요일에는 20세기의 성인인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 경외’ 사상을 공부하고 일요일에는 가나안 농장 등 무의촌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던 것이 봉사를 했던 계기가 됏다. 1964년 연세의대 졸업후 도미, 수련을 마친 직후 귀국해서 모교강단에 서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당시 때 마침 모 교수님으로부터 아이티에 알버트 슈바이처 병원을 소개받았고 이후 40년 동안 의료봉사, 재정적 지원 등의 활동을 펼쳐 왔다.

-봉사활동이 쉽지 않은데 원동력이라면?

정말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봉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간의 짧은 봉사활동은 봉사 활동을 통해 수혜를 받는 사람보다 봉사 활동자들의 만족과 행복이 더 큰 편이다. 반면 장기간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봉사활동은 진정으로 수혜를 받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봉사 활동의 의미는 학창 시절 공부했던 ‘생명 경외’사상이 많이 도움이 됐다. 실제 봉사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다.

-한국 사회에서도 기부, 봉사 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변화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에 살면서 미국 사회의 기부 문화에 대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에게 기부는 생활의 일부다. 예를 들어 이번 아이티 지진 사태가 났을 때, 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모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자기의 저금통 속에 있는 동전을 기부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이것은 교육의 효과다. 국 영 수 공부도 중요하겠지만 남을 위해 돕는다는 것, 이를 통해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다. 한국에서도 학교와 가정에서 이러한 봉사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봉사, 기부 등 가장 기억에 남고 중요했던 활동은?

제가 거주하는 필라델피아 지역에는 서재필 박사의 저택이 있었고 제 자신이 1980년대 서재필 기념재단의 회장,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었다. 서재필 기념재단은 당시 이민자들을 위해 의료 봉사 활동을 했던 곳이었다. 서재필 박사의 따님이 사망한 후 서재필 박사의 저택이 미국인 손에 넘어갈 뻔 했다. 특히 위치상으로 매우 좋아, 인근 몇 군에 부동산에서 강한 매입 의사가 있었다고 신탁은행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사실 신탁은행은 서재필 박사가 누군지도 몰랐고 오직 현금 확보가 중요해 높은 가격을 부르는 부동산에 팔려고 했었다. 은행에 가서 나는 이 부동산이 다른 곳에 팔리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고 은행에서는 2개월 내에 구입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다른 곳에 팔지 않았다. 은행은 먼저 20만불을 계약금으로 입금하라고 했다. 서재필 박사 저택의 상징적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기에 바로 저의 돈을 모두 모아 20만불을 입금했다. 이렇게 해서 서재필 박사의 저택은 미국인들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후 저택은 모금 운동을 통해 구입, 보완, 증축해 명실상부 미국에서 유일한 한국의 선조를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또한 유명한 유적지가 되었다. 또 서재필 기념재단은 지난 35년간 새로 미국에 오는 교포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미국 사회에 한인들의 모범 단체로 널리 알려졌다.

-필라델피아 박물관에 영구적인 한국관이 생기는데도 결정적이 역할을 했다는데.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Asian Art Committee의 고문을 역임하면서 Korean Heritage Group를 구성해 모금 활동과 선전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결과, 300여점에 이르는 한국의 예술품과 고적을 수집하게 되었다. 미국 내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LA나 샌프란시스코에도 없는 풀 타임 큐레이터가 미국 내에서 유일하고 생겼으며 조만간 고정 한국관이 완성된다.

-후학들이 지금보다 봉사 활동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은 약 120명 정도 되는 규모는 작지만 매우 유명한 대학이다. 이 대학에 근무하면서 한 가지 의미있는 일을 발견했다. 당시 졸업생들은 졸업할 때 15~20만불의 빚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빚으로 인해 졸업생들은 돈을 제일 많이 벌 수 있는 분야로 진출했다. 그런데 무명으로 한 기업이 한 학생의 전액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후 많은 장학금이 모여 1명에서 20여명으로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20여명의 졸업후 사회진출에 대해 조사했다. 그런데 이들은 돈을 제일 많이 벌 수 있는 분야가 아닌, WHO, 빈민가 의료 활동, 기초 연구 활동 등의 분야로 진출했다. 기존의 학생들과는 다른 진로를 선택한 것이었다. 졸업생은 자신의 이상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다. 연세의대를 이끌어가는 여러 보직자들에게 말했다. 우선 교수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석좌교수제도를 만들고 강화시키라고 했다. 그리고 전액 장학금 등 장학제도를 보완 강화해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고 이들이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의사들로 양성하라고 주문했다. 봉사는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제도적인 여러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향후 주변의 사람들, 나아가 전 인류에게 봉사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배출될 것이다. 

 김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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