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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1번 G단조 `1905년' 작품번호 103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1번 G단조 `1905년' 작품번호 103
  • 의사신문
  • 승인 2018.01.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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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24〉 

■제1차 러시아 혁명에 바쳐진 음악적 기념비
1905년 1월 9일 일요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부에서 일군의 노동자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차르에게 제출할 탄원서를 들고 겨울궁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20세기 초 세계를 강타한 생산과잉 현상으로 자본가들은 고용한 인력을 대량 해고하였다. 게다가 러일전쟁으로 세금은 가중되었고 생필품 가격도 치솟는 등 당시 사회상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1904년 1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가 해고되자 불만이 폭발했고, 15만 노동자의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러시아 노동자협의회'를 이끌고 있던 가폰 신부는 노동자들에게 차르를 직접 찾아가서 탄원서를 제출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차르가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은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걱정하는 그것과 같다고 주장하던 가폰 신부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한 전날 밤, 니콜라이 2세에게 밀서를 올려 국민들 앞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다음 날 신부는 비무장 비폭력을 주장하며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전역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포함한 시위대의 숫자는 14만에 달했다. 마치 축제인 양 행렬의 선두는 교회의 깃발과 성상, 차르의 대형 초상화를 높이 들고 걸었고 사람들은 차르의 초상화를 보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궁전 앞 광장에 다다랐을 때 시위대가 행진을 멈추지 않자 차르의 군대와 경찰들은 무방비 상태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했다. 조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궁전을 향해서 계속 전진했다. 그러나 궁 앞 2만의 병력은 시위대를 짓밟고 총검을 휘둘러 댔다. `피의 일요일'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약 5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차르에 대한 민중의 신뢰를 산산조각 내버렸고, 러시아 전역에 노동자의 파업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날의 참사는 `제1차 러시아 혁명'을 촉발시켰다.

〈1905년〉이라는 부제를 가진 교향곡 제11번은 바로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을 테마로 삼았다. 1957년 9월 완성된 이 작품은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초연되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에 착수한 1956년은 흐루시초프가 `평화 공존론'을 제창하고 `스탈린 비판'이 시작된 해였다. 그해 9월 음악계가 그의 탄생 50주년을 축하했고 레닌 훈장도 수여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 역사의 중대한 사건을 평범한 음악어법으로 다룬 새 교향곡은 자칫 사회주의에 대한 전향적 태도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교향곡의 작곡 동기에 대해 “러시아 역사에서 반복되는 사건을 그려보고 싶었다”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수 세기 동안 독재에 신음한 역사를 가졌고, 러시아의 민중은 끊임없이 압제에 저항하고 탄압받았다. 레닌을 신봉했던 사회주의자였던 그가 암울했던 스탈린 시절의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꿈꾸던 시기에 쓴 이 작품은 소련 역사의 시발점을 돌아보는 의미를 지닌 동시에 그 상징적 사건에 바쳐진 `음악적 기념비'라 하겠다. 모든 악장은 중간에 쉼 없이 계속해서 연주되는데 마치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묘사한 `음악적 프레스코화'와도 같다.

△제1악장 Adagio (The Palace Square) 느린 템포로 진행되면서 첫 부분은 참사가 일어나기 전 겨울궁전 앞 광장의 싸늘한 정경을 그리고 있다. 하프를 배경으로 약음기를 낀 현악이 `광장의 테마'를 연주하자 음산한 팀파니와 불길한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구슬픈 혁명가에 이어 억제된 선율이 무능한 황제 밑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고통을 토로하는 듯하다.

△제2악장 Allegro (The 9th of January) 제1부에선 민중가 〈오 당신! 우리의 대부이신 황제여〉가 나오고 신호나팔소리와 함께 잦아들면, `모자를 벗자'의 슬픈 주제 선율이 금관 합주로 울려 퍼진다. 제2부에선 앞서 나왔던 선율들이 한층 격앙된 흐름을 보이면서 분노와 저항을 드러내고 군중의 외침과 울음 등이 떠오르는 듯하다. 돌연 폭풍 전야 같은 정적이 흐르며 `광장의 테마'가 들리고 잠시 후 갑작스런 작은북의 연타가 정적을 깬다. 군대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다. 격렬한 푸가토가 공포에 빠진 군중을 나타내고 타악기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군대의 모습이 그려진 후 다시 정적이 흐른다.

△제3악장 Adagio (Eternal Memory)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불멸의 희생자들이여, 그대들은 쓰러졌구나'의 선율이 엄숙하게 흐르는 음울한 분위기가 이어지다 그것을 딛고 일어나듯 `안녕, 자유여!'의 밝은 선율이 등장하며 감격적인 찬가로 고양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는 `모자를 벗자' 선율이 복수의 맹세처럼 울려 퍼진다. 마지막에는 처음의 주제가 다시 등장해서 자유롭게 변주되며 슬픔의 극복과 혁명의 결의를 다지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제4악장 Allegro non troppo (Tocsin) 비극을 극복하고 전진하는 민중의 모습을 묘사한다. `격노하라, 압제자들이여' 선율을 관악기가 힘차게 연주하면서 타오르는 혁명의 기운을 부각시킨다. 클라이맥스에서 다시 `모자를 벗자' 동기가 등장한 후 혁명가 `바르샤반카'의 선율이 결연하게 전진하는 군중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코다로 접어들면 실패로 막을 내린 `제1차 러시아 혁명'의 숙연한 흐름이 떠오른다. 잉글리시 호른이 `모자를 벗자'의 선율을 노래하고, 마지막에는 호른의 라이트모티브 연주와 함께 경종이 울리면서 장렬하게 마무리된다.

■들을 만한 음반
△키릴 콘드라신(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elodiya, 1973) △마리스 얀손스(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97)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지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Teldec, 1993) △세미온 비쉬코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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